Welcome to CHICAGO
인심 후한 팁
마냥 태평한 사람들
비겁한 맛 아닌
원초적 맛 피자, 매력
위엄 과시하듯
하늘 찌르는
대도시 빌딩숲의 야경
눈물 쏟게 하는, 마력
세계 최강국 미국엔 매력적인 도시가 참 많다. 뉴욕,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등등. 그렇다면 시카고는? 뮤지컬을 즐겨 보는 사람들은 공연 제목으로 ‘시카고’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미 명문 프로야구팀 ‘시카고 컵스’를 알고 있을 터. 건축에 해박한 이들에게 시카고는 그야말로 성지다. 현대건축의 뿌리인 시카고의 빌딩숲을 거닐다 보면 가장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된다. 또한 피자의 도시이기도 하다. 보통 피자의 두 배는 됨 직한 ‘시카고 피자’는 그 두툼함을 치즈로 가득 채운다. 미국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시카고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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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 촬영지
남미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굳이 시카고를 가 보기로 한다. 시카고는 나에겐 낭만적인 도시다.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이 인생 영화 중 하나였다. 그 영화를 촬영한 도시가 바로 시카고다. 줄거리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답게 전형적이다. “스물여덟까지 각자 싱글이면 그때 우리 결혼하자.” 이런 약속을 한 두 친구는 남자에게 약혼녀가 등장하며 위기를 맞는다. 남자는 젊고, 아름다운 약혼녀와 평생 함께하리라고 결심한다. 뒤늦게 사랑의 감정을 깨달은 여자 주인공은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둘의 결혼을 훼방 놓기로 한다. 결국 방해작전은 실패하고, 여자는 진심으로 둘의 행복을 빌어 준다. 뻔한 영화이기는 한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흐뭇한 웃음이 나오고, 짠해지기도 한다.
도미토리가 1박에 14만 원? 살인적인 시카고 물가
미국이란 나라는 어이없을 정도로 비싸다. 시카고의 한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에서 묵었는데 하루에 100달러, 14만 원을 냈다. 방이 아니라 침대 하나 가격이다. 더 황당한 건, 그 방들이 빈 침대 하나 없이 손님으로 가득하다는 거다. 마침 시카고 마라톤대회가 열려 잠잘 곳을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시카고는 미국에서도 4위권의 인기 도시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보이는 전기자전거를 30분 타고 15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2만 원이 넘는 돈이다. 음식을 먹으면 팁도 내야 한다. 미국인은 인심도 후해 음식값의 15%에서 20%를 팁으로 준다. 2만 원짜리 밥을 먹었다면 4000원을 따로 더 내야 한다는 얘기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보다 그나마 저렴하다고 들었는데, 막상 피부로 느껴지는 시카고 물가는 야박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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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많은 시카고 사람들
시카고의 첫인상은 특별하진 않았지만, 여유와 안정감이 느껴졌다. 주택가의 나무들은 울창하고 푸르렀고, 시카고 사람들도 순하고 느긋해 보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도시이지만, 뉴욕이나 보스턴보다 어딘지 모르게 인간적이란 느낌도 받았다. 버스기사에게 목적지를 대며 그곳에 가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기에 바로 탔다. 물가 비싼 시카고의 가장 큰 미덕은 교통카드다. 하루 5달러(약 7000원)에 버스와 전철을 무한정 탈 수 있다. 창밖 풍경을 보다 내릴 때를 놓쳤는데, 아니 거의 놓칠 뻔했는데 버스가 마냥 서 있는 거다. 왜 멈춰 있지? 신호 때문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버스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안 내려?” 이러는 거다. 내가 어디서 내리는지를 기억하고 있다가 ‘알아서 내리겠지’ 팔자 좋게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차가 오랫동안 안 가고 있으면 승객들이 화를 좀 낼 법도 한데, 다들 마냥 태평하기만 하다. 나만 깜짝 놀라 허둥지둥했다.
호수와 문화, 지식의 도시, 도시 중의 도시
시카고는 미국 중서부 미시간호숫가에 자리 잡은 도시다. 시카고는 과거 미국 산업화의 중심지였고, 노동운동과 범죄사(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마피아 알 카포네의 도시다)에도 깊이 연루된 곳이어서 도시 전체에 ‘어두운 서사’가 짙게 배어 있다. 시카고는 물류, 금융, 제조업, 교육, 보건의료 등 다양한 산업이 균형 있게 발달한 도시다. 경제학과 사회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카고학파’도 이 도시의 상징 중 하나인데, 자유시장 이론과 인간행위 분석을 중심으로 학문·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시카고는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재즈와 블루스가 골목에 울려 퍼지고, 심지어 한 도시 이름이 뮤지컬 제목이 돼 세계를 돌고 있다.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 재즈시대를 배경으로, 살인죄로 수감된 여성들이 언론을 이용해 스타가 되고자 하는 블랙코미디다. 시카고는 야구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시카고 컵스는 ‘염소의 저주’로 108년간 우승을 못 하다가 2016년 마침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해 전 세계 팬의 눈물을 쏟게 했다. 컵스를 향한 시카고 시민의 애정은 종교에 가깝다. 져도 좋고, 오래 기다려도 좋다. 계속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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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툼한 피자는 처음
여행 중 먹는 재미를 가장 우선시하는 내게 시카고의 피자와 핫도그는 가장 궁금하고 기대되는 음식이었다. 시카고의 딥디시피자는 모차렐라치즈를 넘치도록 채워 넣은 피자다. 일반 피자는 소스, 치즈, 토핑 순인데 시카고 피자는 치즈, 토핑, 소스 순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도 소개됐던 ‘피쿼드’란 곳을 갔다. 도우가 치즈와 함께 바싹 구워져 누룽지처럼 말라붙은 게 피쿼드 피자의 특징. 치즈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피자다. 뜨거움과 고소함으로 평생 잊지 못할 ‘한입’의 기억을 선사한다. 토마토케첩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으며, 생양파와 자르지 않은 기다린 피클이 들어가는 핫도그 역시 시카고의 명물. 재료만 보면 특이할 것도 없는데, 시카고식으로 조합되니 고집스러운 취향과 시카고만의 멋이 느껴졌다. 소스로 범벅 된 비겁한(?) 맛이 아닌 원재료의 싱싱함으로 원초적 맛을 중요시한달까? 미국이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보니 자기만의 전통이랄 게 없는데, 굳이 찾자면 핫도그다. 피자는 이탈리아가 원조니 시카고 피자가 아무리 독창적이라 한들 뿌리는 이탈리아다. 1963년 문을 연 시카고 대장 핫도그 ‘포틸로스’에서 소시지만큼이나 길쭉한 오이피클(이게 바로 시카고 스타일 핫도그다)을 아삭아삭 씹어 가며 아주 맛나게 먹었다.
눈물이 왈칵, 시카고 빌딩숲 여행
시카고에 온 또 다른 이유는 빌딩들을 제대로 보고 싶어서였다. 시카고는 살아 있는 건축의 역사다. 뉴욕도, 서울도, 두바이도 시카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없었다. 초고층빌딩의 시초는 시카고에서 시작됐다. 철골구조 기술이 시카고에서 처음 실험됐고, 세계로 퍼져 나가 오늘날 대도시 빌딩숲의 원형이 됐다. 크루즈를 타고 도시의 야경을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뉴욕을, 홍콩을, 상하이를 안 본 사람이 아닌데. 나조차 당혹스러웠다. 시카고의 빌딩들은 단순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윌리스타워(옛 시어스타워)는 여전히 시카고의 하늘을 찌르며 위엄을 과시했고, 또 다른 시카고의 상징 존행콕센터는 미시간호수를 배경으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둘 사이에 자리 잡은 이름 모를 건물들도 각자의 자존심으로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도시의 야경은 어디든 화려하다. 하지만 시카고는 화려함을 넘는 아름다움이 있다. 한 시대를 꿰뚫는 역사가 공존한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 승객들의 표정은 모두 나와 같았다. 날카로운 바람 탓에 30분 이상 갑판 위에 있기 힘들었지만, 낭만과 감동 역시 강풍과 함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대자연을 보는 것과 빌딩숲을 보는 것, 둘은 분명 다르지만 감동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도 대자연만큼이나 위대한 것임을 시카고의 빌딩들을 보며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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