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저 스쿨(Ranger School)은 소부대 전술 습득과 리더십 배양을 목표로 하는 미 육군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곳에 입교한 교육생은 산악·늪지대 등 혹독한 환경에서 62일간 이어지는 훈련을 이겨내야 한다.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극복하고, 모든 과정을 통과하면 최정예를 의미하는 레인저 탭(Tab)을 달 수 있다. 육군특수전사령부 흑표부대 양성모 상사의 전투복에도 황금색 ‘Ranger’ 글자가 빛난다. 한국군 부사관 최초로 레인저 스쿨을 수료한 그를 만나 봤다. 글=이원준/사진=양동욱 기자
강한 군인이 되기 위해 도전
“나 자신과 싸우기 위해 레인저 스쿨에 도전했습니다. 강한 군인이 되기 위해 더 극한 환경에 도전해야 한다 생각했고, 그 최전선이 바로 레인저 스쿨이었습니다.”
지난달 21일 부대에서 만난 양성모 상사는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이었다. 표정과 목소리는 온화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선 강하고 단단한 심지가 느껴졌다. 더 강해지기 위해 레인저 스쿨에 도전한 ‘대체불가 특전사’로서 자긍심 그 자체였다.
양 상사는 지난해 9월 미국으로 날아가 레인저 스쿨에 입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레인저 스쿨은 단순한 군사훈련이 아닌, 극한의 환경 속에서 강한 정신력과 리더십을 검증하는 과정이다. 입교와 동시에 남녀 가릴 것 없이 삭발해야 하고, 모든 전자기기를 압수당해 세상과 단절된다. 사용할 수 있는 기기는 GPS 기능이 없는 디지털시계뿐.
“레인저 스쿨 입교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수료율은 40%에 불과하고, 유급 없이 완주하는 사람은 한 기수에 10% 정도입니다. 입교 전날 머리를 밀며 14년 전 특전부사관으로 입대했을 때 마음가짐으로 재무장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웃기라도 하듯, 입교하자마자 매 순간이 도전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미국 조지아주 포트무어에서 문을 연 교육은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다. 입교하고 2주간은 하루 수면 시간이 2시간 남짓, 전투식량은 최대 2끼만 제공됐다. 실제 전장에 있는 것처럼 온갖 스트레스가 그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졌지만, 얼마 후 거짓말처럼 2시간 수면이 개운하게 느껴질 정도로 적응했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그 과정이 곧 도전과 성장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4단계 교육, 리더십·팀워크 중점 평가
레인저 스쿨 교육과정은 4단계로 나뉜다. 1단계에선 입교자격 평가가 이뤄진다. 교육생들은 1주일간 체력, 독도법, 수영, 전투기술 등을 검정받는다. 기준에 조금이라도 도달하지 못하면 바로 짐을 싸서 퇴교해야 한다. 교육생의 절반 이상이 이 단계에서 탈락한다고 양 상사는 설명했다.
구릉지대에서 진행되는 2단계 교육은 소대 단위 전술의 기초를 다진다. 3단계에선 산악지역 전투기술을 익히고, 마지막 4단계에선 플로리다주로 이동해 늪지대 전술을 숙달한다.
“각 단계에선 훈련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대지휘자 역할을 2~3차례 수행하며 리더십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최소 한 번의 통과를 받아야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는데, 통과하지 못하면 유급돼 한 달간 재훈련을 받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료 상호평가도 있습니다. 여기서 60% 이상의 점수를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유급 없이 퇴교해야 합니다. 전우애 없이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한 철저한 검증 과정입니다. 레인저 스쿨에서는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전우와 함께 살아남고, 이끄는 리더십과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의 말처럼 레인저 스쿨은 리더로서 자질과 정신력을 배양하는 과정이다. 모든 교육생은 레인저 신조인 ‘Rangers Lead The Way(레인저가 선봉에 선다)!’를 수백 번 되뇌며 고된 훈련을 이겨낸다. 레인저 스쿨을 완주하면 전장을 지휘할 수 있는 리더로 거듭난다.
양 상사에게는 교육 중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이 있었다. 미 육군을 대표하는 교육 과정이라기엔 지급되는 전투장비가 너무나도 부실했다는 것.
“훈련 내내 단안형 야간투시경 하나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월광이 적은 날이면 시야는 더 제한적이었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불평이 나왔습니다. 불평하는 저에게 미군 동료가 이야기했습니다. ‘단안형이라니 말도 안 되지? 하지만 장비가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잘 훈련된 군인이지. 장비는 그저 우리를 업그레이드 해 줄 뿐이야’. 불비한 야간에서도 긍정적 마인드와 고도의 정신력을 갖춘 군인이라면 전우들을 전장에서 살아 돌아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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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가슴에 달고 62일 만에 수료
놀랍게도 양 상사는 한 차례의 유급 없이, 62일이란 최단 기간에 모든 과정을 수료했다. 처음 입교할 땐 동료 교육생이 630여 명이었지만, 각 과정이 끝날 때마다 그 숫자는 빠르게 줄었다. 결국 수료식 날 같은 기수는 60여 명뿐이었다. 양 상사는 교육을 끝마치고 최종 결과를 기다리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다.
“수료인지, 유급인지 결과를 듣기 위해 야외 강의장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씩 교육중대장실로 들어갔는데, 나오는 이들의 표정이 극과 극이었습니다. ‘11612, Yang’. 드디어 제 교번과 이름이 불렸습니다. 긴장감 흐르던 끝에 중대장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Yang, You got a GO, You are a Ranger(양, 합격이야, 넌 레인저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힘들었던 모든 기억이 스쳐 가며 한국으로 자랑스럽게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레인저 탭은 포기하지 않는 정신, 전우와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는 각오, 그리고 더 강한 군인으로 거듭났다는 상징이었습니다.”
양 상사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훈련한 배경에는 한국을 대표한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훈련 때는 동료들처럼 미군 군복을 입었지만, 왼쪽 가슴에는 남들과 달리 ‘KOREA’ 글자가 선명했다.
“전투복에 새겨진 KOREA는 일반적인 글자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조국이자 가족이었으며, 반드시 지켜야 할 존재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군인이었습니다. 훈련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마다 왼쪽 가슴을 바라봤습니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였고, 한순간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양 상사는 레인저 스쿨에서 만난 전우들에게 깊이 감동했다. 고된 훈련 끝에 탈락하는 교육생도 있지만, 대다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교육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같은 분대에 있던 동료는 무려 9개월 만에 저와 함께 졸업했습니다. 그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지 물었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최고의 레인저는 포기하지 않는다. 재도전은 나를 성장시키고, 기술을 향상하며, 더 뛰어난 군인으로 만들어 준다’. 저에게 강한 인상과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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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 스쿨에서 느낀 것
양 상사는 62일간 훈련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생후 6개월 된 딸을 한국에 두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그였다. 밤에 눈을 감으면 아내와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가면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것들을 수첩에 적으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귀국할 때는 아내와 딸뿐만 아니라 장인어른·장모님이 공항까지 나와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특히 장인어른께선 평생 사본 적 없다는 꽃다발을 사위에게 건네며 반겨주셨죠(웃음). 가족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리더십, 정신력 차원에서도 크게 성장했다. 양 상사는 극한의 훈련을 버텨내며 포기하지 않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결단력 있는 리더십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레인저 스쿨을 통해 극한의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불가능한 점보다 가능한 점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수면 부족, 굶주림, 체력의 한계 속에서 불평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어진 여건 안에서 어떻게든 해낼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됐습니다. 또 한국군에서 강조하는 리더십은 부드럽게 독려하며 팀원들을 이끌어 가는 방식이 많습니다. 하지만 레인저 스쿨에서는 전장에서 때로는 강하게 밀어붙이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할 때는 강하게 밀어붙이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리더가 되고자 합니다.”
양 상사에게 황금색 레인저 탭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그는 ‘레인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각인하고, 대한민국 특수전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며 성장하겠다는 다짐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레인저 스쿨을 수료하며 극한의 환경에서 필요한 리더십과 인내, 그리고 전우애의 진정한 가치를 체득했습니다. 이 과정이 개인적인 성취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후배들에게도 도전의 길이 될 수 있도록, 대한민국 특수전 역량 강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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