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장관

입력 2025. 05. 01   16:30
업데이트 2025. 05. 0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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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갑하 시인
권갑하 시인



송아지랑 어미 소가 집으로 돌아가는 
갓길 없는 시골길 
짐 진 노인의 꽁무니엔 
경적도 
울리지 않고 
뒤 
따 
르 
는 
車 
車 
車 


<시 감상>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했을 듯싶다. 삶의 어떤 시·공간에서 문득 만난, 강렬한 인상으로 떠오른 풍경 하나(사진첩에서 툭 튀어나온 사진 한 장, 벽화마을이나 미술관 한편에 그려진 그림 한 점, 영화관에 발을 묶어 버린 영화의 엔딩 장면,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만든 소설의 한 문장)에 빠져 차마 눈과 발을 떼지 못하고 묘한 감흥(感興)에 젖어 바라만 본 경험 말이다. 권갑하 시인이 언어의 붓으로 그려 낸 이 시의 풍경이 그러하다.

얼핏 보면, 이 시는 들일을 마친 노인이 소를 몰며 ‘집으로 돌아가는’ 한적한 시골 저녁나절의 삽화(揷話)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를 단순히 목가적 삶을 지향하는 풍경만으로 볼 순 없다. 종장을 지나가는 ‘짐 진 노인의 꽁무니’를 ‘경적도/울리지 않고/뒤/따/르/는//車/車/ 車’의 시어 행렬 장면에 녹아 있는 소중한 가치(생명과 노동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어미 소와 송아지가 타자가 아니듯이, 소를 몰고 가는 노인과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이 따로가 아니다. 모두 생명의 연속성을 이루는 귀한 존재다. 소를 모는 노인과 차를 모는 사람이 하는 일은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일이 어떤 것이든, 어떤 형태로든 우리 모두의 삶에 이바지한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소를 몰며 ‘집으로 돌아가는’ ‘짐 진 노인’과 차를 몰며 돌아가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따로가 아니다. 그들은 서로 떠밀어 낼 타자가 아니라 끌어안아야 할 대상이다. 마땅히 존중과 이해, 배려의 연속성에서 살아갈 존재다.

한 시·공간에서 함께 실존하는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를 시인은 단 한 장면의 단시조 언술로 그려 보여 준다. 어떤가? ‘갓길 없는’ 삶의 시·공간에서 다투지 않고(‘경적도/ 울리지 않고’) 가만히 따라가는 저 행렬이 숙연하고 따사롭지 아니한가? 그야말로 이 시의 제목처럼 ‘장관’이 아닌가?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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