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페르소나
‘귀궁’으로 돌아온 육성재, 이 정도면 1인2역 전문 배우
아이돌로 데뷔 중저음 목소리로 실력파 보컬 인정
눈에 띄는 예능감·갖가지 개인기…원조 ‘맑눈광’
‘도깨비·쌍갑포차·금수저’ 연기자로 빛나는 필모
균형잡힌 재능으로 이질감 없이 선 넘어 영역 확장
“어찌 나와 똑같은 이가 있단 말인가? 대체 네 놈이 누구길래 내 몸을 차지했단 말이냐?”
SBS 금토드라마 ‘귀궁’에서 윤갑(육성재)의 혼령은 자신의 몸을 차지해버린 이무기 강철이를 보며 충격에 빠진다. 윤갑의 몸을 가진 강철이는 그런 윤갑에게 귀찮다는 얼굴로 말한다.
“세상 억울한 듯 그리 볼 것 없다. 이 답답하고 역하기 짝이 없는 몸뚱아리. 내 쪽에서도 사양이니까.” 혼령으로만 남은 윤갑과, 그 몸을 차지해 육신만 윤갑인 강철이. 그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여리(김지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여리는 윤갑을 어려서부터 연모해 왔고, 강철이는 영혼이 맑고 그릇이 큰 여리의 몸주신이 되려 무려 13년이나 따라다닌 이무기다.
강철이가 윤갑의 몸에 빙의하게 되면서, 여리는 가장 연모해왔던 이의 몸을 차지한, 가장 증오하는 강철이와 함께 이 모험의 여정을 가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윤갑의 혼령을 찾아 그 몸을 되찾아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윤갑의 몸에 빙의된 강철이의 마음 또한 여리 앞에서 흔들린다. 윤갑의 육신이 만들어내는 강철이의 변화다. 이로써 강철이가 빙의한 윤갑과 여리의 혐관 로맨스가 시작된다.
‘귀궁’이 앞으로 그려갈 이야기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주목되는 건 육성재의 1인2역 연기다. 윤갑은 서얼 출신의 검서관(규장각에서 관료들을 보좌하고 서적을 검토, 필사하는 일을 하는 직책)으로 왕인 이정(김지훈)의 측근이다. 타고난 약골이지만 심성이 곧고 총명한 윤갑을 이정은 총애한다. 그를 전 좌의정 최원우(안내상)에게 보내 자신에게 힘을 실어 달라는 설득을 대신 시킬 정도다.
한마디로 윤갑은 바른 서생 그 자체지만, 이제 그의 몸에 빙의된 강철이는 윤갑과는 정반대다. 안하무인에 장난기도 가득한 데다 다크한 인물이고, 날아오는 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제압할 정도의 괴력을 지녔다. 그런데 혼령이 육신을 지배할 것 같았지만, 육신 또한 혼령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윤갑의 몸에 빙의된 강철이를 통해 드러난다.
인간의 오감을 경험하게 된 강철이는 끝없이 음식을 탐하는 등 인간 세상의 감각에 빠져든다. 또 여리와 어쩌다 스킨십이라도 하게 되면 볼이 빨개진다. 그래서 혼령으로 윤갑이 구천을 떠돌 때 윤갑의 몸에 깃든 강철이는 조금씩 변화해 간다. 육성재가 1인2역 빙의 연기로 보여줄 윤갑이라는 인물의 변화와 그래서 생겨나는 여리와의 모험과 로맨스가 사실상 이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이유다.
되돌려 보면 육성재는 1인2역 전문 배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런 역할을 자주 소화해 왔다. 예를 들어 육성재가 연기로 주목받게 된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도 그는 유덕화라는 인물을 연기했는데, 그의 몸에 깃든 창조신이 정체를 드러낼 때 깨발랄했던 유덕화와는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바 있다.
‘쌍갑포차’에서 그가 맡았던 한강배라는 인물도 마찬가지다. 낮에는 마트 고객센터 직원으로 근무하고, 밤이 되면 월주가 운영하는 쌍갑포차의 알바생으로 일하는 이 인물은 드라마 후반부에 500년 전 월주의 아들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또 ‘금수저’에서 육성재는 다이아 수저로 태어난 황태용(이종원)과 삶이 바뀌는 이승천 역할을 소화했다. 출연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두 인물이 겹쳐지는 ‘빙의 배역’을 1인2역으로 연기한 셈이다.
육성재의 다재다능함은 본래 가수로 시작해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물론 연기 영역까지 확장해온 그의 행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는 본래 비투비의 서브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아이돌 가수다. 작년에는 첫 번째 싱글앨범 ‘EXHIBITION: look closely’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매력적인 중저음을 지닌 아이돌 가수로 정평 나 있고, 여러 음악 예능에 출연해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나와 김동률의 ‘감사’를 불러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판타스틱 듀오2’ 거미편에 출연해서는 블랙핑크 로제와 뮤지컬 배우 손준호를 누르고 거미의 듀엣으로 선택되기도 했다. 예능 출연도 익숙해 ‘라디오 스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갖가지 개인기로 MC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아육대’에서는 주몽 의상을 입고 등장해 “육몽”이라고 자신을 소개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잘생긴 외모에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 ‘육잘또’라는 별명까지 가진 육성재는 최근 대중에게 주목받는 ‘맑은 눈의 광인’의 길을 앞서서 걸었던 인물이었다. ‘집사부일체’ 같은 레귤러 예능 프로그램에 막내로 참여해 그 다재다능하면서도 엉뚱한 면모로 사랑받았던 건 이러한 독특한 캐릭터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수로 활동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나아가 연기까지 영역을 확장해 가는 아티스트들이 더러 있지만, 육성재에게서 도드라지는 건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마치 순식간에 빙의돼 전혀 다른 캐릭터를 드러내는 1인2역을 보는 것만 같은 자연스러움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영역에서 이물감 없이 여러 매력을 드러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건 아마도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에 한계를 긋지 않는 자신감과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귀궁’을 함께 찍은 육성재의 16년 지기 김지연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성재는 뛰어난 능력이 많은 배우예요. 뭘 해도 다 잘하는 느낌? 현장에서 매일 감독님과 함께 성재가 너무 잘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 능력이 부러워요.”
육성재 같은 인물을 이른바 ‘육각형 인재’라고 부른다. 어떤 영역에서도 능력을 고루 발휘하는 인물이란 뜻이다.
매일매일 다양한 역할을 요구하는 현재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다양한 영역에 경계 없이 뛰어드는 자신감이 아닐까. 어떤 새로운 역할도 척척 삼켜내 그 인물에 빙의된 모습을 보여주는 육성재가 우리 시대의 페르소나로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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