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과 ‘약속’이 있기 전… 빛나는 ‘십자성’을 어둠서 건져내다
베트남 교민 극비 탈출 ‘십자성 작전’
국민 보호 위한 해외 철수 첫 사례
해군 군함으로 1902명 구했지만
30년 넘도록 군사기밀로 분류
“더 늦기 전에 참전장병에 감사를”
산증인 이문학 옹 만나 저술 결정
긴박했던 그날의 생생함 담아
국가 책무·군인 사명감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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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하기 직전 대한민국 정부는 베트남에 거주하던 교민들을 해군 군함 2척으로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일명 ‘십자성 작전’. 처음 계획과 달리 예기치 못한 여러 돌발상황으로 이 작전은 성공할 확률이 희박했으나 남베트남 교민과 현지 피란민 1902명을 단 한 명의 피해 없이 대한민국으로 무사히 귀국시키는 기적적인 성공을 거뒀다.
십자성 작전은 그 후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2006년 해제될 때까지 30년이 넘도록 군사기밀로 철저히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십자성 작전의 전모(全貌)가 전직 국방일보 기자이자 군사전문가인 정호영 작가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예비역 중령 이문학(88·해사 14기) 옹을 만나게 된 것이 책을 쓰게 된 계기였죠. 사실 그때까지 십자성 작전에 관해 들어는 봤지만 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이옹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저술하게 됐습니다.”
이옹은 당시 해군 작전과장으로 작전을 기획하고 수행한 핵심 관계자 중 한 명. 대사관과 해군 수송분대 사이의 연락장교로 작전현장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문제는 자료였다. 작전 자체가 50년 전 일이라 일일이 관련 자료를 찾고 대조하는 게 매우 지난한 일이었다. 다행히 이옹의 집에는 관련 자료가 여러 개의 상자에 가득 차 있었다. 당시 주베트남 한국대사관과 우리 외무부 사이에 오갔던 텔렉스, 해군본부와의 전문, 미국과 교신 내용, 참전 해군 장병들의 대외 매체 인터뷰·수기 등등. 이옹이 자서전으로 쓰려고 기록해 놨던 원고도 도움이 됐다.
“처음엔 이옹의 계획처럼 자서전 식으로 책을 집필하려 했죠. 하지만 그 방식으로는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게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각종 자료를 취합해 작전 전말을 검증하고, 또 그것을 이옹의 시점에서 상황·요일·시간대별로 스토리를 재구성함으로써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나온 『1975 사이공 대탈출』은 단순한 전쟁사가 아니라 국가의 책무와 군인의 사명감, 대한민국 해군의 작전 능력을 재조명한다.
책에는 긴박했던 작전 전개뿐만 아니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 한국 해군의 출항 결정, 사이공(현 호찌민) 현지 대사관의 긴급대응, 미군 측과의 협력·충돌상황 등이 상세히 담겨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의 활동과 그 외교·경제적 파급까지 총체적으로 다룬다.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와 군이 전시상황에서 자국민 보호를 위해 펼친 최초의 해외 철수작전으로 이후 진행된 ‘미라클 작전’(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과 ‘프라미스 작전’(2023년 수단 철수)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선례를 제공한다. 당시 대한민국 해군은 적의 포위망 속에서 절망에 빠진 교민과 난민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정 작가는 글을 써 내려가면서 안타까운 게 하나 있었다고 한다. 이 자랑스러운 작전을 기밀로 지정, 무수한 세월 동안 수면 아래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작전은 교민과 남베트남 피란민을 태우고 무사히 부산항에 돌아온 순간, 잠깐 언론의 환대를 받았지만 곧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사이공을 미처 탈출하지 못한 이대용 공사를 비롯한 여러 공관원과 교민들 때문이었죠. 이들이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이 작전의 성공을 오랫동안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베트남전에서 사실상 패배하고 물러난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우리 정부의 배려도 있었습니다.”
이들 참전장병의 명예를 선양하고 보훈으로 보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 작가는 그보다 잊지 말고 감사의 마음이 우선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파병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외교 등 안보적으로나 한국의 국가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베트남 파병 60주년을 맞은 지금, 참전장병의 나이가 대부분 80세 이상의 고령이 됐습니다. 더 늦기 전 이들에게 ‘당신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영웅이었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한마디를 전하고, 감사의 마음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메아리로 울려 퍼지기를 염원해 봅니다.” 글=이주형/사진=조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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