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강자 전유물 아닌 약자 전략적 공간으로 재해석

입력 2025. 04. 23   15:53
업데이트 2025. 04. 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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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군사명저를 찾아서
밀란 베고의 『해양 전략과 해양 거부: 이론과 실제』
Milan Vego. 2019. Maritime Strategy and Sea Denial: Theory and Practice. 348 pp. Routledge. 

강대국 중심의 ‘해양통제’ 편향 비판
약자 입장 ‘해양거부’ 대안 전면 제시
비대칭 전력과 통합전력 효과적 활용
전력상 열세 극복 전략적 선택 가능
첨단 기술 우위 중심 해군 전략 성찰


지금까지 해양 전략에 관한 문헌들은 대부분 강대국의 해양 패권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해군을 보유한 나라들은 대부분 해양 전력이 미국의 1개 함대 규모에도 미치지 않는 해양 약자들이다. 밀란 베고의 이 책은 바다를 강자의 전유물이 아닌, 약자의 전략적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기존 해양 전략 담론이 강대국 중심의 ‘해양통제(sea control)’에 지나치게 편향됐음을 비판하며, 약자의 입장에서 ‘해양거부(sea denial)’라는 대안을 전면에 제시한다.

 

러시아 순양함 모스크바함은 2022년 4월 14일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R-360 넵튠 대함미사일 2발이 명중돼 침몰했다. 모스크바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시 침몰한 가장 큰 군함으로, 우크라이나의 해양거부 성공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2012년 모스크바함이 항해하는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러시아 순양함 모스크바함은 2022년 4월 14일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R-360 넵튠 대함미사일 2발이 명중돼 침몰했다. 모스크바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시 침몰한 가장 큰 군함으로, 우크라이나의 해양거부 성공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2012년 모스크바함이 항해하는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저자 베고 교수는 해양 전략 및 군사작전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현재 미국 해군참모대학교 합동군사작전학과에 재직 중이다. 강대국 중심의 해양패권을 다루는 『Maritime Strategy and Sea Control: Theory and Practice』(2016)을 출판한 이후 해양 약소국의 해양 전략을 다루는 이 책을 저술했다. 


해양통제 대 해양거부

이 책은 총 12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은 약소 해군이 해상에서 어떻게 강대국의 해양 지배에 도전할 수 있는지를 이론과 역사 속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1장에서는 전략적 틀을 논의한다. 베고는 해양 전략을 “국가의 대전략 및 군사전략에 종속되며, 평시와 전시를 아우르는 총체적 개념”으로 규정한다. 전투력의 객관적 수치보다 지리적 이점, 전략 문화, 통합작전 능력 등이 전략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바다에서 ‘절대적 강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지리적 이점, 전술적 기동성, 연합전략, 비대칭 전력 등의 효과적 활용을 통해 약자도 해상에서 유의미한 저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해양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즉 해양통제를 추구하기보다는 강대국의 ‘해양통제’를 저지하고 견제하는 ‘해양거부’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해양거부는 “특정 해역에서 적의 해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저지하거나 상당한 비용을 발생시켜 그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해양거부를 단순한 방어로 보지 않았다. 그는 “해양거부는 본래 방어 전략이지만, 공격 정신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략적으로 방어적이되, 전술적·작전적 차원에서는 공세적 자세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는 약소 해군이 단순히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략적 공간을 창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우크라이나는 전력상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대함미사일이나 해상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해군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무력화했다. 2022년 4월 러시아 순양함 모스크바함 격침이 대표적 사례다. 그 이후에도 비대칭 전력을 이용해 러시아 해양 전력을 지속 약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2장에서 4장까지는 해양거부 전략의 개념적 기초와 방어전략의 구성 요소,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작전 조건들을 제시한다. 특히 강조하는 것이 육·해·공군의 통합작전 능력이다. “통합작전(Jointness) 능력이야말로 약자가 전략적 효과를 창출하는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연안방어가 중요한 해양거부에는 이러한 통합작전 능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밀란 베고의 『해양 전략과 해양 거부: 이론과 실제』
밀란 베고의 『해양 전략과 해양 거부: 이론과 실제』



실행을 위한 전술적 사례 

5장에서 12장까지는 이론을 실전에 연결하는 핵심 부분이다. 해양거부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여덟 가지 주요 전술 요소를 다룬다. 이는 결정적 전투의 회피 또는 유도(5장), 적의 전력의 점진적 약화(6장), 해양봉쇄에 대한 반격(7장), 적의 해양교역과 산업 기반 파괴(8장), 적 해안공격(9장) 및 자국 해안방어(10장), 전략 거점 확보(11장) 및 해협·요충지 장악(12장) 등을 포함한다. 장마다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실전적 감각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대표적 사례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해상 우위를 지속해서 괴롭혔던 북베트남 △좁은 수역과 섬을 활용해 소련 해군의 진압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던 핀란드 △흑해 전선에서 연안전투와 해안방어로 독일 해군을 견제했던 소련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해양봉쇄로 남부를 고갈시킨 북군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결전을 회피하면서도 항공전력을 통해 이라크 해군을 막아낸 이란 △말라카,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활용 등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론적 논의를 보강하고 있다.


해양 전략 담론의 전환점 

이 책의 가장 큰 학문적 기여는 강대국 중심의 해양 전략 담론에서 약자를 위한 전략으로 논의의 초점을 옮긴 것이다. 그는 해양거부를 실행하는 데 엄청난 전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대함미사일이나 해양드론과 같은 비대칭 전력, 육·해·공군의 통합전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전력상의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플랫폼 중심 사고에서 벗어난 실용적 사고이자, 비대칭 전력에 대한 전략적 정당화라 볼 수 있다.

또한 탈냉전 이후 부상한 ‘네트워크 중심전’이나 첨단기술 우위 중심 해군 전략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담고 있다. 그는 기술이 건전한 전략의 부족을 메워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올바른 판단과 지휘, 그리고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반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약자를 위한 바다의 전략서이자, 구체적 실행을 위한 전술적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전략 연구자뿐만 아니라 실제 정책 수립자와 작전 기획자에게도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특히 약소 해군을 보유한 국가, 연안방어를 전략 핵심으로 설정한 국가에는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전략 설계를 위한 이론적 기반이 될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해양드론과 같은 무인 수상체계나 사이버 공간을 포함한 현대 해상작전의 변화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는 2019년이라는 출판 시점의 한계로 이해할 수 있지만, 후속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필자 최영진은 국방전문가로 전쟁사, 전략론, 정신전력, 병력구조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필자 최영진은 국방전문가로 전쟁사, 전략론, 정신전력, 병력구조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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