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80주년 다시 빛날, 그곳의 기억들]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

입력 2025. 04. 22   16:51
업데이트 2025. 04. 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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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 다시 빛날, 그곳의 기억들
세계속 독립운동 거점 ① 미국 동부지역

머나먼 이국 땅에 남아 있는 항일운동의 숨결…
‘아메리칸드림’ 넘어 ‘겨레의 꿈’ 이뤘다

미국 내 사적지 총 113곳 
워싱턴DC·뉴욕, 항거 가장 활발했던 곳
‘뉴욕한인교회’서 독립 의지 다지고
‘한인소년병학교’서 군사훈련 교육
서재필 박사 집 개조해 기념관 설립하기도

 

광복(光復)은 민족의 열망이 한데 모여 이룬 승리의 역사다. 우리는 일제의 폭압에 맞서 당당히 항거했고 세계만방에 대한독립의 정당성을 알렸다. 국방일보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미국·중국을 비롯해 아시아·유럽 등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독립운동 중심지를 소개하는 ‘세계 속 독립운동 거점’ 연재를 시작한다. 앞선 ‘전국 독립운동기념관 탐방’과 ‘독립운동 핫플이 궁금해?!’에 이은 세 번째 시리즈로, 첫 순례지는 미국 동부지역이다.
독립기념관 현황자료에 따르면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는 650곳에 달한다. 미국은 중국과 더불어 가장 많은 독립운동 사적지가 있는 나라로, 총 113곳에 이른다. 그중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와 최대 도시 뉴욕이 있는 동부는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히 벌어진 지역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활동해 미국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에 한반도 상황을 전했다. 미국에 임시정부의 승인과 군사·경제 지원을 촉구했으며, 전 세계에 대한독립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국 동부는 아시아 밖에서 전개된 대한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서현우 기자/사진·도움말=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워싱턴 사무소 터.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워싱턴 사무소 터.


워싱턴DC 

세계 곳곳에는 독립운동의 흔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 독립운동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가 소중히 보듬어야 할 정신적 자산이자 미래를 설계하는 자양분이다. 미국 워싱턴DC는 재미(在美) 한인 독립운동의 핵심 지역이다. 이곳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사무소 터 △현순 외교 활동지 △한인자유대회 개최지 터 △한미협회 △한국친우회 △중한민중동맹단 외교사무소 터 등이 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워싱턴사무소 터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1941년 4월 미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서 미주 한인의 독립운동을 위해 설립됐다. 독자적인 선전외교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1944년 6월 10일 워싱턴에 사무소를 열었다. 미주 한인사회에는 기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기관으로 활동하던 주미외교위원부가 있었지만, 독자적인 외교 활동을 하면서 워싱턴사무소를 세웠다. 각종 국제회의 참가와 언론 활동, 집회 개최 등을 이끌었다. 이를 통해 미국 정계 주요 인사를 상대로 한국의 독립 문제를 호소했다. 사무소가 있던 터에는 현재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현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미공사관 사무실 건물(가운데 흰색 건물).
현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미공사관 사무실 건물(가운데 흰색 건물).


현순 외교 활동지 


현순 외교 활동지는 독립운동가 현순(玄楯)이 미국 정부로부터 한국 독립을 승인받기 위해 설립한 공사관이 있던 곳이다. 1920년 8월 구미위원부 새 위원장으로 임명된 현순은 한국의 공식 외교대표부로 공사관 설립을 추진했다. 1921년 4월 14일 정식으로 공사관을 설립하고, 이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미공관’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공사관 설립 후 미국 정부에 한국의 독립 승인을 요구했으나 아무런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건물은 현재 미 항공관세사협회 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인자유대회 개최지 터 

한국의 독립 문제를 미국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한인자유대회가 개최됐던 장소다. 한인자유대회는 주미외교위원부, 한미협회,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1942년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워싱턴 라파예트호텔에서 열었다. 미주 각 지역에서 100여 명의 한인이 참석했다. 3·1운동 23주년을 기념해 열린 대회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과 군사적 지원을 촉구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라파예트호텔은 1971년 헐렸고, 현재 미국노동조합총연맹 본부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미협회 사무실이 있었던 건물.
한미협회 사무실이 있었던 건물.


한미협회 

한미협회는 친한(親韓) 미국인들이 1942년 1월 16일 워싱턴에서 창설했다. 목적은 한국의 독립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얻기 위해 미국인의 동정을 얻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각종 회보·통신문 발행과 언론 보도자료 배포, 대중강연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43년 한미협회는 이사와 위원으로 36명이 참여했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중국인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현재 뱅크오브아메리카 건물로 쓰인다.


한국친우회

한국친우회는 필라델피아에서 서재필 박사와 플로이드 톰킨스 목사 주도로 1919년 5월 16일 설립된 이후 미국 전역에 21개가 조직됐다. 일제의 학정에 시달리는 식민지의 한민족을 후원하고 한국의 독립 문제를 미국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한국친우회는 워싱턴을 중심으로 미국의 주요 지도자와 단체에 친한 여론을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현재 우드워드빌딩이라는 이름의 주상복합건물로 사용된다.


중한민중동맹단 외교사무소 터

중한민중동맹단 대표 한길수가 설립한 외교사무소가 있던 곳이다. 한길수는 1938년 워싱턴에 건너와 미국 의회와 정부를 상대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고 배일운동을 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예견한 게 적중하면서 미국 정가에서 유명 인사로 부상하기도 했다. 강력한 배일운동을 전개해 미국 정부로 하여금 하와이를 비롯한 미국 내 일본인을 적국인으로 분류시키는 데 일조했다.


뉴욕·필라델피아

뉴욕과 필라델피아도 미국 동부 거점 독립운동지다. 뉴욕은 미 경제의 중심 도시인 만큼 미 실권자와 유력 단체가 많고 다양한 인종·민족도 몰려 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의 흔적을 간직한 사적지가 여럿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뉴욕에는 △뉴욕한인교회 △고려경제회 터 △뉴욕 3·1운동 기념행사 개최지 △‘삼일신보’ 발행지 터 등이 있다. 또 미 동부의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 네브래스카, 콜로라도 등에도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뉴욕한인교회.
뉴욕한인교회.


뉴욕한인교회 

뉴욕한인교회는 1921년 4월 설립됐다. 뉴욕의 한인들은 애초 메디슨 애비뉴 감리교회를 빌려 사용하다가 감리교단의 재정 지원을 받아 독자적인 교회 건물을 마련했다. 이후 1927년 10월 컬럼비아대 인근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많은 민족 지도자가 이 교회에서 독립운동의 의지를 다졌다. 이승만, 안창호, 조병옥 등이 이곳을 거쳤을 정도로 미국 동부 한인 독립운동의 핵심이었다. 2023년에는 미국 동부 독립운동 역사를 정리한 전시관이 지어졌고, 황기환 애국지사의 유해 봉환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뉴욕 3·1운동 기념행사 개최지 

한인들이 중심이 돼 3·1운동 기념행사를 했던 타운홀 자리도 뉴욕에 있다. 1921년 3월 2일 뉴욕의 한인들은 미국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타운홀에서 기념행사를 했다. 참석자가 13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뉴욕 한인은 100여 명으로 추산되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미국인이었다. 독립운동 시기 3·1운동 기념행사의 옥내 집회로는 미주 한인사회뿐 아니라 전체 한인사회에서 가장 큰 규모로 평가된다. 이듬해인 1922년에도 기념행사가 개최됐고, 서재필 박사는 당시 행사를 주관하며 유명한 연설문을 남기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서재필기념관 내부모습
필라델피아 서재필기념관 내부모습

 

필라델피아 서재필기념관 한글안내서.
필라델피아 서재필기념관 한글안내서.


필라델피아 서재필기념관

서재필 박사의 역사와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 박사가 1925년부터 1984년까지 살았던 주택을 개조해 1990년 11월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사적지로 지정됐다. 그의 딸은 기념관 주변 소유 땅을 시에 기증했고, 시는 ‘서재필기념공원’으로 조성했다. 필라델피아에는 서 박사가 운영했던 병원 건물, 한국 정부와 재미 한인들의 성금으로 지어진 ‘서재필 박사 기념비’ 등도 있다.


제1차 한인회의가 개최된 필라델피아 리틀극장 건물.
제1차 한인회의가 개최된 필라델피아 리틀극장 건물.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 개최지(리틀극장)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서재필은 이승만·정한경 등과 1919년 4월 14~16일 필라델피아 리틀극장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했다. 미주지역의 3·1운동으로 불리는 이 대회에는 많은 한인이 참가해 한국 독립의 열망과 새로운 근대국가 건설방향을 전 세계에 알렸다. 현재 리틀극장은 원형이 보존돼 있고, 건물 벽면엔 제1차 한인회의 개최지를 표시하는 기념동판이 부착돼 있다.


한인소년병학교 대원들이 훈련받았던 곳(현 헤이스팅스대교내)
한인소년병학교 대원들이 훈련받았던 곳(현 헤이스팅스대교내)

 

헤이스팅스대 교내에서 훈련 중인 한인소년병 대원들(1910년대)
헤이스팅스대 교내에서 훈련 중인 한인소년병 대원들(1910년대)


시카고 지방회관 터와 한인소년병학교 훈련지 

시카고는 미 동부로 가는 중심지로, 애국지사가 많이 모인 도시였다.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관이 대표적이다. 시카고에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설립하자는 논의는 1910년 10월부터 있었고, 1918년 2월 정식 설립됐다. 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에 있는 한인소년병학교는 1910년 6월경부터 1914년 8월까지 운영되던 곳이다. 헤이스팅스대 구내에 있던 이곳은 1911~1912년 2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군사훈련과 함께 국어·영어교육 등을 해 민족의식·독립정신을 고취했다. 운영경비는 대학에서 제공한 땅을 경작해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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