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트럼프 2.0 시대’ 베트남의 대응전략 전망과 시사점
희토류 매장량 세계 2위 '믿는 구석'
공급망 등 취약한 미국과 협상 계획
과학·기술 혁신 기반 경제발전 모색
국제통합 과정 참여·소다자 협력 활용
글로벌 사우스 진영 역할 강화 나서
트럼프 대통령이 쏘아 올린 ‘상호관세’ 이후 베트남의 ‘헤징(hedging)’ 전략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헤징 전략이란 어떠한 국가가 ‘안보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두 강대국을 상대로 미래의 제휴 가능성에 대해 모호성을 보이는 전략’이다. 국가의 대외전략을 편승과 균형의 스펙트럼에서 본다면 헤징 전략은 그 중간에서 미묘하게 움직인다. 베트남은 1945년 독립 선언 이래 인도차이나반도 영향력권을 두고 경쟁하는 강대국(미국·중국·소련) 사이에서 줄타기해 왔다.
베트남의 헤징 원칙은 “최고의 국가이익(안전보장)을 우선시하며, 변수에 대응해 불변성(독립과 자주)을 활용”하는 것이다. 강대국의 요구가 안보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한 베트남은 타협하고 순응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로부터 상호관세 46%를 청구받은 베트남은 즉각 정상 간 통화를 가진 데 이어 미국과 협상 중이다. 베트남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중국의 우회 수출 단속, 미국산 제품에 적용하는 관세 인하)하고, 선물(군 수송기·비행기·원유·LNG 구매 등)을 제시했다.
그런 한편 지난 3년간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은 중국 주도의 세계질서 구축 담론인 인류운명 공동체에 대해 ‘중국-베트남 미래 공유 공동체’ ‘운명이 서로 연관된’ ‘적절하게 협력을 촉진한다’ 등의 표현 방식으로 동반자 정신을 선언했다. 이렇듯 베트남의 헤징은 실용적인 이익 조정과 경제협력이 돋보인다.
헤징 행태가 요동치는 경우는 안전보장이 위협받을 때다. 베트남은 안전보장을 국가 생존과 사회주의 체제 안보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본다. 베트남은 체제안보가 불안정하면 중국과, 국가안보가 불안정하면 미국과 제휴 가능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 2기 임기 동안 반미연대 결집을 위한 중국의 미소외교(smile diplomacy)가 예상되는 가운데 베트남은 국내 정치 요인으로 공산당 집단지도체제의 안정을 다지는 데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당장 2026년 초 베트남은 향후 5년을 계획하는 전당대회와 중앙위원회 위원 선출을 앞두고 있다. 토람 공산당 서기장의 임기는 2024년 서거한 응우옌푸쫑 서기장의 잔여 임기를 이어받은 2026년까지다. 이러한 배경에서 베트남과 중국 간 당 대 당 협력과 전략대화가 부각될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트럼프 2기 임기 동안 베트남의 헤징은 어떠한 특성과 양태를 보일 것인가. 우선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베트남이 반드시 불리하지만 않다는 점을 짚고자 한다.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베트남의 국가 발전 목표에 제동이 걸린 것은 사실이다.
베트남은 2030년까지 중상위 소득 수준의 개발도상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의 최초 우려보다 지난 보름간의 국제정세는 헤징에 익숙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첫째, 글로벌 공급망에서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취약성(정책 변화로 치러야 할 대가)이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둘째, 제조업 재건과 첨단전력 증강이 긴요한 미국으로서는 희토류 매장량 세계 2위인 베트남의 협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베트남은 향상된 입지를 바탕으로 △국가 발전을 위한 경제외교 △자강에 의한 국방 △베트남의 역할을 보장하는 국제통합 협력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세 가지는 2024년 초 미국의 대선 경선이 시작된 이후 국가전략을 관장하는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사안이다.
첫째, 베트남은 미국과의 협상을 ‘다각화 혁신의 계기’로 삼아 중동과 유럽으로 제품·시장·공급망을 다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공급망 가치사슬에서 주요 행위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미국이 취약성을 인식하고 관세를 조정하기를 꾀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트남 지도부는 경제외교의 ‘선봉적인 역할(vanguard)’을 강조한다. 중장기 국가 발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베트남은 과학·기술·혁신을 기반으로 한 경제구조로 개혁해야 하고, 외교는 국가 발전을 위한 기회를 창출하고 자원을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은 『2021-2030 국가기본계획』에서 국가 발전을 위한 기술·에너지 인프라 협력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기술·에너지 협력을 발전시킬 방침이다. 우선 미국과는 항공·에너지·국방·첨단기술 분야에서 수입을 확대하고자 한다. 베트남은 기술이전과 공동생산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설계기업인 엔비디아가 베트남에 연구센터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베트남은 4차 산업혁명 기술 공급망에서 입지를 다지고자 한다.
중국과는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북부지역 고속철도사업 협력을 진척할 계획이다. 중국 윈난성 쿤밍과 접한 이 경제회랑은 결국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과 연결된다. 5G, 인공지능(AI), 탄소중립 기술 협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새로운 의제다. 러시아와는 2025년 정부 간 합의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정보통신기술과 원자력 발전 분야에서 협력사업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둘째, 국방에 있어 베트남은 ‘4불 정책’에 기반한 자강을 추구한다. 베트남은 인도와는 브라모스 극초음속미사일, 한국과는 K9 자주포 계약을 마무리하고 있다. 본토 방위 능력 증강과 더불어 베트남은 2021년부터 남중국해 분쟁지역인 스프래틀리군도에서 인공섬(활주로) 군사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다음으로 큰 규모의 인공섬에 베트남이 군사자산을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2019년 『국방백서』에서 베트남은 “특정 상황에 따라 적절한 수준에서 다른 국가와 필요한 방위 및 군사관계를 발전시킬 것을 고려한다”고 상황변수를 뒀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계기로 베트남 정부가 일론 머스크와 체결한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서비스 시범사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저 케이블을 둘러싼 지정학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통신 중단 위험을 해소하고, 외곽 섬에서도 통신 인프라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성 기반의 통신은 해양영역인식(MDA)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필요시 베트남은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안보자산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은 국제통합 과정에 더욱 적극 참여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 진영으로서 베트남은 ‘공정하고 공평한 국제질서를 구축’하고, ‘새로운 책임을 맡는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은 베트남-유럽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소다자 협력을 적극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중국, 북한과 함께 사회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이념 외교를 강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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