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는 대로, 닿는 대로 - 감성 가득한 봄날의 보령 나들이
연분홍 치마를 흩날리며…
새파란 풀잎을 입에 물고…
드넓고 완만한 구릉지 따라 목장들
자연·미술관·산책로 갖춘 예술공원
상화원 2㎞ 회랑 따라 평온함에 젖고
충청수영성서 천수만 노을에 물들고
카페·체험 프로그램 즐기다 보면
감성·감각 모두 충족…“봄이로구나”
따스한 볕이 온 세상을 물들이는 계절, 이번에도 어김없이 봄이 돌아왔다. 예년에 비해 늦나 싶었던 벚꽃은 전국 동시 개장을 선보이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들판에도 초록빛 새싹이 움트고 있다.
이번 봄 충남 보령으로 주말 나들이를 다녀오는 건 어떨까. 한여름 머드축제의 활기찬 이미지로만 소개되는 곳이지만, 완연해진 봄기운을 한껏 느끼기에 최적의 여행지다. 구릉지를 뒤덮는 청보리 군락, 고즈넉한 분위기의 어촌, 바다를 바라보며 거닐어 볼 만한 한국식 정원 등이 보령 곳곳에 자리한다. 감성적인 풍경과 감각적인 공간이 공존하는 보령의 색다른 매력을 한데 모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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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창고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는 목장이 많다. 완만한 구릉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어 가축을 방목하기에 좋은 지형을 갖춘 덕분이다. 이곳에 ‘바른우유연구소’라는 브랜드로 유기농 유제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보령우유’가 있다. 몇 년 전부터 우유팩 모양의 대형 조형물, 건축물 등으로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우유창고’도 보령우유가 운영하는 공간이다.
우유창고는 크게 2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하나는 카페, 하나는 체험장이다. 보령우유가 젖소를 키울 때 활용했던 창고, 축사 등을 리모델링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우유를 짤 때 사용했던 통, 착유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축사 내부 공간 등을 오롯이 보존해 카페 테이블로 바꿔 손님을 맞이하기도 한다.
우유창고 카페는 갓 생산한 유기농 우유를 가장 신선한 순간에 제공한다. 보령우유의 가장 깊은 맛을 느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우유 한 잔’을 권하는 이유다. 물론 카페로 운영하는 만큼 각종 유가공품을 활용한 음료, 디저트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목장크림라떼’를 시그니처로 내세우고 있다. 에스프레소를 넣은 플랫 화이트, 아이스크림 등도 인기 메뉴다.
아이들과 함께 즐길 만한 체험 프로그램도 다수 준비돼 있다. 목장을 둘러보고 건초를 주며 젖소들과 교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부터 스트링 치즈, 우유 아이스크림, 버터, 젖소 컵케이크 등을 만들어 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모든 체험 프로그램은 2인 이상이어야 진행하며, 우유창고 홈페이지(milkstorehouse.kr)에서 예약 가능하다.
# 청보리창고
천북면에는 유명한 폐목장도 하나 있다. 이른바 ‘천북폐목장’으로 불렸던 공간이다. 천북폐목장이 유명해지게 된 데는 주변 풍경이 한몫했다. 봄마다 목장 주변으로 청보리가 가득 올라오며 연초록색 물결로 감성적인 순간을 연출한 덕분이다. 2021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그해 우리는’에서 두 주인공의 키스신 배경으로 소개되며, 이제는 보령 최고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천북폐목장의 청보리밭은 SNS 인플루언서나 사진가들에게도, 인생샷을 남기려는 여행자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여행객의 관심에 힘입어 2년 전에는 낡고 부서진 채 방치돼 있었던 목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카페가 들어서기도 했다. ‘청보리목장’이 그곳이다.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 두면서도 내부와 외관을 깔끔하게 다듬어 오가는 이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게 특징이다.
‘청보리창고’의 시그니처 음료는 ‘청보리라떼’다. 보리를 넣어 만든 미숫가루를 우유에 풀어 고소함을 더하고, 아이스크림을 얹어 청량감과 달콤함까지 선사한다. 보리를 넣은 빵이나 디저트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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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수영성
천수만은 충남 서해안의 대표적인 어장이다. 보령과 서산, 홍성 땅이 감싸고 바다 쪽으로는 태안의 안면도가 가로막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특유의 지형적 특성 덕분에 이 일대에는 수십 개의 항구가 즐비하게 이어진다. 보령 지역에서는 오천항이 가장 유명하다.
오천항은 천수만 입구 쪽에 자리한 항구다. 천수만은 당연하고, 안면도 너머 서해 구석구석까지 누비며 활발한 어업 활동을 할 수 있다. 대천항이나 천북굴단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여러 어종의 해산물을 신선하게 맛보고 싶다면 오천항을 찾을 만하다.
천수만과 오천항이 가진 지형적 특성은 군사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했다. 조선시대엔 서해안을 방어하는 중심 기지였던 충청수영성이 자리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옛 충청수영성의 위엄이 남아 있지는 않다.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노력 중이기는 하나 아직 부족하다. 충청수영성 꼭대기에서 천수만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영보정과 일부 전각을 복원한 수준이다. 뒷산으로 이어지는 성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영보정에 올라 보자. 오천항을 꽉 채운 어선, 입구를 제외한 삼면이 육지로 가로막힌 지형적 특징을 살피며 조선 수군이 군선을 어떻게 운용했는지를 상상해 보자. 그저 풍경을 즐기는 것도 괜찮다. 특히 노을이 아름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해 질 녘에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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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예술공원
2003년 개관한 모산조형미술관이 주변 자연환경을 더해 색다른 예술공간 ‘개화예술공원’으로 거듭났다. 개화예술공원은 자연을 벗 삼아 예술을 즐기고, 여유를 누리기에 좋은 공간이다. 미술관과 식물원, 산책로와 카페 등을 갖춘 채 휴식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짓한다.
가장 먼저 둘러봐야 할 곳은 미술관이다. 벼루를 만들 때 사용한다는 검은 돌 ‘오석’을 활용한 조형미술 작품이 주로 전시돼 있다. 지역 내 예술가, 세계 각지의 작가들이 빚어낸 작품도 다수 감상할 수 있다. 조형미술을 주제로 한 미술관인 만큼 조형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도 꾸준히 열린다.
미술관을 둘러봤다면 정원을 거닐어 보자. 계절에 걸맞은 꽃나무가 정원을 예쁘게 물들인다. 4월에는 벚꽃과 겹벚꽃이, 5월에는 철쭉이 방문객을 환영한다. 허브를 주제로 한 ‘허브랜드’도 눈에 띈다. 약 5000㎡ 규모의 허브랜드에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온실이어서 사계절 내내 초록빛 세상을 만나 보는 게 가능하다.
공원 한쪽에 자리한 감성카페 ‘리리스’도 그냥 지나치지 말자. 특수 보존 처리를 한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활용해 꽃 테마의 인테리어를 선보인다. 곳곳에 포토존이 있으며, 이색적인 분위기의 테이블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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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화원
한국식 정원을 좋아한다면 대천해수욕장 남쪽, 죽도 방문을 추천한다. 수십 년간 가꾼 한국식 정원 ‘상화원’이 이곳에 있다. 상화원은 바다와 숲, 우리의 전통이 어우러진 정원이다. 선조들이 정원을 조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 중 하나가 자연을 최대한 보전하는 것인데, 상화원 또한 이 원칙을 기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섬의 가장자리를 따라 회랑이 이어진다. 상화원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긴 회랑으로, 그 길이가 무려 2㎞에 달한다. 입구에서 출발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둘러볼 수 있도록 조성해 뒀다.
바다를 바라보며 쉬어 갈 만한 의자, 책을 읽거나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된 정자 등이 있다. 포토존과 같이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도 많다. 바다와 소나무가 어우러지는 풍경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하나씩, 천천히 누리길 바란다. 상화원의 자연이 건네는 평온한 공기에 몸을 맡기는 거다.
상화원 내에는 한옥마을도 있다. 역사와 전통이 깃들어 있는 고택을 전국 각지에서 찾은 뒤 이곳으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실내를 개방해 둔 곳이 많아 내부 구조까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하룻밤 묵어 보는 건 어떨까. 서쪽 바다로 해가 저물고 난 뒤의 고요함을 오롯이 경험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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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역
‘폭싹 속았수다’로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복고풍 감성에 심취해 있다면 청소역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보령의 작은 간이역으로, 충남 천안과 전북 익산을 연결하는 장항선이 지나는 곳이다. 하루에 8대의 무궁화호 열차가 오가는 곳이지만, 조만간 폐역될 위기에 놓여 있기도 하다.
청소역 일대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온 적이 있다. 간이역의 풍경, 1~2층 높이의 작은 건물이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모습이 198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닮아서다. 영화가 인기를 끈 이후부터 여행객이 찾아왔고, 이제는 역사 주변이 ‘택시운전사’를 테마로 한 공원이 됐다.
열차를 테마로 한 포토존, 영화에 등장했던 택시도 이곳에 전시돼 있다. 울타리 너머로 역 내부의 풍경도 만나 볼 수 있으나 무단으로 선로에 들어서지는 말 것. 작은 간이역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철도가 운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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