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서해수호의 날] 누군가 계속 상기시켜야죠, 북의 저열한 도발에 대해…

입력 2025. 03. 25   16:45
업데이트 2025. 03. 2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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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서해수호의 날
지켜낸 영웅들, 기억될 이름들

천안함 피격사건 15주기, 잊지 않겠습니다 

신형 천안함 승조원들이 해군2함대 안보공원에 전시된 천안함 선체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김병문 기자
신형 천안함 승조원들이 해군2함대 안보공원에 전시된 천안함 선체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김병문 기자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경계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1000톤급 초계함(PCC) 천안함이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격실 곳곳에 꽃처럼 피어 있던 46명의 청춘이 깊고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적의 기습적인 어뢰공격에서 살아남은 승조원들의 눈망울엔 ‘한솥밥 전우’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오늘도 이슬이 맺힌다.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가 전사한 46명의 영웅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5년이 흘렀다.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천안함 피격사건은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을까? 트라우마를 끌어안고도 뚜벅뚜벅 호국의 길을 걸어가는 참전 장병, 그리고 선배 전우들의 혼을 이어받아 신형 천안함을 운용하는 승조원들을 만나 가슴속 깊이 묻어놓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조수연/사진=김병문 기자

2010년 북한의 기습공격을 받은 천안함(PCC-772·왼쪽)과 2023년 12월 작전 배치된 2800톤급 호위함 천안함(FFG-826).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가 전사한 천안함 영웅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5년이 흘렀다. 신형 천안함 승조원은 영웅들의 호국정신을 이어받아 적과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를 불태우고 있다.
2010년 북한의 기습공격을 받은 천안함(PCC-772·왼쪽)과 2023년 12월 작전 배치된 2800톤급 호위함 천안함(FFG-826).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가 전사한 천안함 영웅들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5년이 흘렀다. 신형 천안함 승조원은 영웅들의 호국정신을 이어받아 적과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를 불태우고 있다.

 

참전 장병 정다운 소령
참전 장병 정다운 소령

 

시간 흐를수록 전사한 동료들 사무쳐
한때는 죄책감·자괴감 시달리기도 했지만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 한마디면 충분

2010년 3월 26일 밤. 천안함 전투정보관인 정다운 소령(당시 중위)은 다음 당직에 들어가기 전 근무복 차림으로 잠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별안간 굉음과 함께 전기가 끊겼다. 정 소령은 암흑 속 자신을 부르는 전우들의 목소리에 의지해 천장에 매달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배는 이미 두 동강 났고, 함미는 사라진 뒤였다. 폭발음이 난 지 불과 3분 만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25세. 함정이 곧 부대였는데 갈 곳이 없어져 버린 현실에 당혹했다. 갑자기 막을 내린 함정 승조원 인생의 상처를 부여안은 채 정훈장교라는 새 인생을 꿈꾸게 됐다. 요즘 삶은 어떨까. 지난 20일 해군잠수함사령부에서 정훈실장으로 근무 중인 그를 찾아갔다.


분리된 함수·함미 따라 생사도 나뉘어 

진해기지사령부(진기사) 해군의집에서 만난 정 소령은 종이 한 장을 꼭 쥐고 있었다. 그날을 잊지 않으려 기억을 수시로 기록해 왔다고 한다. 이날 인터뷰를 앞두고도 메모장을 들춰봤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꾸만 잊혀가는 그날의 기억을 건져 올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나?

“많은 이가 천안함을 언급하길 조심스러워한다. 하지만 참전 장병 중 누군가는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북한은 저열한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야 한다.”

- 당시 상황을 복기한다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누워 있던 몸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붕 떴다.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함미는 분리됐고, 함수도 오른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곧장 함대 지휘통제실에 연락하고, 통신망을 유지했다.”

- 직감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나?.

“‘무슨 큰일이 난 건 확실하다’고만 생각했다. 함장님은 ‘이거 어뢰다’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판단하셨고, 보고도 하셨다. 당시 저는 임관 2년 차 장교였고, 20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한 함장님은 알았던 것 같다. 적의 공격임을 직감한 함장님은 몸을 숙여 주변을 살필 것을 지시하고, 대원들을 안심시켰다. 살아서 모항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침착하게 구조작업을 지시했다.”

- 구조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시간이 없었다. 모두가 추위도 두려움도 잊고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 노력했다. 차디찬 바다에 뛰어들어 구명정을 끌어오고, 다친 전우를 업고 나와 구명조끼를 벗어줬다.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길 바라며 칠흑 같은 함 내부로 다시 들어갔다. 그 깜깜한 곳에 또 가다니 얼마나 두려웠겠나. 함수에 생존한 장병들을 구조해 이함시켰다. 그러나 비통하게도 우린 46명의 전우를 잃었다.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며 승조원의 생과 사도 나뉘었다.”

정 소령은 당시 전투정보관과 함께 행정관을 겸하고 있었다. 구조돼 옮겨 탄 고속정에서 통신실에 앉아 실종자 명단을 작성했다. 동료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할 때마다 모니터에 얼굴이 떴다.

- 구조 뒤 절차는?

“실종자 명단을 작성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함대 정문에 실종자 가족들이 와서 기다리는 상황이라 빨리 작성해야 했다. 동료 생사를 알 수도 없는 슬픔과 우리만 구조됐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하루아침 사라진 터전…‘패잔병 프레임’이 괴롭혀 

승조원에게 함정이라는 것은 먹고 자고 일하는 일터이자 쉼터다. 24시간을 다 같이 보내는 시간과 모든 기억이 함께 있는 공간이다. 함정이 침몰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정과 직장이 동시에 사라지는 그런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피격사건은 때아닌 가짜뉴스와 이념 논쟁으로 불필요한 갈등에 휩싸였다. 정 소령은 거듭 버텨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군의 무능을 이야기했다. 이들에게 가장 상처가 된 말은 다름 아닌 전쟁에서 지고 온 군인이라는 낙인이었다.

- 누군가는 함부로 말하고, 낙인찍는 일이 반복됐는데.

“‘잠수함 충돌설’ ‘좌초설’ 등 수많은 유언비어가 있었지만, 비방글 중 경계에 실패했다는 것과 패잔병이라는 프레임이 가장 힘들었다. ‘그냥 죽어야지, 무슨 낯으로 돌아왔냐?’ 같은 말들. 승조원들이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내가 지키려 했던 국민 대다수가 의구심을 제기하니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 가장 바로잡고 싶은 게 있다면.

“수중에서 미식별 물체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평시에는 피아식별 등에 장시간이 소요된다. 승조원들은 평시 대비태세 상황에서 그 누구보다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고 자부한다. 천안함 피격사건은 경계작전 실패가 아니라 정보작전의 문제였다. 대청해전 패배의 복수를 위한 적의 비열한 기습 공격이자 저열한 테러 행위였다.”

- 트라우마는 없는지.

“싸우면 이길 준비가 다 돼 있었는데, 포 한 번 못 쏴보고 전우를 잃으니 가만히 있질 못하겠더라. 복수를 꿈꿨다. ‘쏘는 척이라도 하면 격침시킨다”란 생각으로 다시 배를 탔는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잠을 못 자고 늘 깨어 있었다. 군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했고, 임관 5년 차에 정훈병과로 전과했다.”


충격 못 벗어난 15년 전…망각의 바다로 보내지 않도록


어느새 15년이 흘렀다. 정 소령은 그사이 결혼했고, 딸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시간이 갈수록 가족을 두고 전사한 동료들이 사무친다고 했다.

-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시간이 지나도 혼자 살아 돌아왔다는 자괴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고, 이제 마흔이다. 매년 나이가 한 살씩 들어가며 그분들의 나이가 돼 보니 또 다른 미안함이 밀려온다. ‘그때 결혼을 앞둔 보급장, 100일 남짓된 아기를 놔두고 온 의무장은 어떤 심정으로 눈을 감았을까.’ ‘유족들은 어떤 심정으로 버티며 살아왔을까’를 생각한다.”


그럼에도 해군의 역사 앞으로 나아가야

- 2010년과 비교해 우리 해군 대잠수함전 전력은 어떤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해군 전력은 ‘퀀텀 점프’했다. 최신예 전력이 도입됐고, 대잠전 교리와 능력도 몇 곱절 이상 발전했다. 특히 2023년 말 새롭게 태어난 신형 호위함 천안함이 2함대에 작전 배치됐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 정훈장교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장병과 국민에게 천안함 피격사건을 비롯한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을 알리겠다. 또 천안함 피격사건을 겪은 다음 국민들이 군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군인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어떻게 임무를 수행하는지 알리는 데 노력하겠다. 군에 신뢰가 있었으면 (천안함 사건만큼) 이렇게까지 갈등이 생기진 않았을 것이다. PTSD를 겪는 장병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다.”

- 국민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시 누군가 꼭 해줬으면 한 말이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였다. 그 한마디면 다 됐을 것 같다. 어뢰를 맞고도 이만큼 살아 돌아온 사례가 세계적으로 없다. 군인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고 있고 2010년 3월 26일 서해와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던 천안함 승조원들도 그중 하나였다. 천안함 피격사건을 바로 봐주시고,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면 고맙겠다.”

 

천안함 작전관 김재환 소령(진) 
천안함 작전관 김재환 소령(진) 

 

해군 함정에는 혼과 인격 담겨 있어 
선배들 피로 지킨 바다 ‘서해’ 수호
옛 승조원 자발적 근무 존경심 느껴

천안함은 강력한 대잠수함전 능력을 갖춰 부활했다. 2023년 12월 해군2함대에 작전 배치돼 서해를 누빈다. 이름만 같을 뿐 초계함에서 최신예 호위함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해상작전헬기를 탑재할 수 있고, 5인치 함포와 함대함유도탄, 함대지유도탄, 장거리 대잠어뢰, 유도탄방어유도탄 등 강력한 무기도 장착했다. 원거리에서도 잠수함 탐지가 가능하고, 엔진 소음을 줄여 대잠 성능 역시 향상됐다. 지난해엔 포술 최우수 전투함 사격대회에서 ‘바다의 탑건’이라 불리는 ‘해군 포술 전투함’의 영예를 차지했다.

15년 전 천안함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단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옛 천안함 승조원들도 새 천안함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천안함 피격 당시 대위였던 작전관 박연수 중령(당시 대위)이 함장을 맡았고, 서보성 상사(당시 하사)와 류지욱 중사(당시 하사)는 각각 전투체계 운용과 정보통신 분야를 맡고 있다.

24일 신형 천안함의 작전관 김재환 소령(진)을 통해 선배들의 영혼이 담긴 함정에 근무하는 마음가짐을 들어봤다. 그는 때마침 긴 작전을 마치고 2함대 군항에 정박한 참이었다. 15년 전, 김 소령(진)은 해군사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이었다. 천안함 피격사건을 뉴스로 접했을 때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임관 후 망설임 없이 함정 근무를 결심한 것도 이때였다.

김 소령(진)은 “해군 군함은 단순히 무기체계나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라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 작전관의 임무는 무엇인가.

“함정의 전반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교육훈련을 전담한다. 상황 발생 시 평가관 임무를 수행한다.”

- 대잠전 대비는 어떻게 이뤄지나.

“실제 해상에 나가는 해상기동훈련과 정박 중 시뮬레이션 훈련이 있다. 가상의 어뢰가 우리 함을 공격하는 상황을 묘사해 탐지·식별하고, 우리 무기체계로 방호하는 훈련을 한다. 모의 어뢰를 삽입해 쏘는 어뢰발사훈련으로 공격 능력을 강화하기도 한다.”

- 천안함 승조원으로 근무하는 마음가짐은.

“해군은 함정에 혼과 인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아픈 과거와 원한이 깃든 천안함에 탄 만큼 또다시 도발한다면 철저히 응징하겠다.”

- 서해를 지킨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2함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구호가 ‘싸우면 박살 낸다’이다. 서해는 말 그대로 선배들이 피로 지킨 바다다. 지금도 여러 차례 경고사격이 이어지고 있다. 죽음이 언제든 눈앞에 있다. 말로만 ‘죽어서도 사수하자’는 것이 아니라 적의 기습을 허용하지 않고, 기회가 있다면 완벽히 복수하겠다.”

- 옛 천안함 승조원들도 함께라고 들었다.

“천안함에 또다시 타셨다는 건 부담스럽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거다. 자발적으로 천안함 근무에 나선 것에 대해 존경심을 느낀다.”

- 천안함 피격사건을 국민이, 장병들이 잊지 않아야 할 이유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군인을 선택한 게 아니다. 하지만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영혼들을 국민이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

- 우리 해군에게 특별히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면.

“청해부대, 림팩(환태평양)훈련, 순항훈련 등 외국에 나가 보면 대한민국 해군에 대한 전 세계의 신뢰도가 상당히 높다. 묵묵히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해군에게 사랑과 신뢰를 보내주면 좋겠다.”

- 군 생활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 어떤 근무지에서, 무슨 임무를 수행하더라도 천안함에서의 각오와 마음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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