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찾는 항해 “갈 데까지 가보자”

입력 2025. 03. 24   16:32
업데이트 2025. 03. 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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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스타를 만나다 - 한계 돌파 선언한 엔믹스

상식 뛰어넘는 데뷔곡 ‘O.O’부터
과감한 ‘믹스팝’으로 다른 길 걸어와
‘Fe3O4’ 3부작 시리즈 막 내리는
미니앨범 ‘포워드’서도 “타협 없다”
힙합에 다양한 장르 ‘믹스 & 매치’
‘믹스토피아’ 향한 돛 힘차게 펼쳐

 

엔믹스 콘셉트 사진.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엔믹스 콘셉트 사진. 사진=JYP엔터테인먼트



“갈 수 있는 가장 끝까지.”

선공개 싱글 ‘하이 호스(High Horse)’ 속 이 한 줄의 가사가 엔믹스의 세계를 선언한다. 나날이 새로운 결과물을 내놨다는 홍보가 범람하는 가운데 실상 창조라고 부를 건 많지 않은 K팝 시장에서 엔믹스는 정말로 낯선 길을 걸어왔다. 세계관의 시대가 저물고 대중성을 강조하는 ‘이지 리스닝’ 용어가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르는 중에도 이들은 시작부터 품어 온 이야기를 놓지 않으며 서사를 기획의 중심에 두고 굳건히 지켜 왔다. K팝이 자주 활용하는 작법, 다양한 장르를 하나의 노래에 엮어 내던 창작방식을 더욱 과감하고 과격하게 정립한 ‘믹스팝’ 음악 노선에도 타협은 없었다.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세계관을 더욱 난해하게 표현하는 음악은 분명 생경했다. 상식을 뛰어넘은 데뷔곡 ‘O.O’와 ‘탱크’부터 지금까지 꺾지 않은 고집이다.

가창력 논란도 엔믹스는 자유로웠다. 데뷔 이전부터 범상치 않은 실력으로 화제를 모았던 탁월한 보컬과 랩 실력을 멤버 전원이 갈고닦으며 연습 영상만으로도 대중의 관심과 인정을 받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믿고 듣는 메인 보컬로 자리 잡은 릴리와 전설의 연습생으로 불렸던 해원, 허스키한 보컬 톤이 인상적인 배이와 맑고 힘찬 가창을 들려주는 설윤, 독특한 랩 톤으로 확실한 지분을 차지하는 지우와 규진은 목소리만으로 자신을 알릴 능력을 갖춘 멤버들이다. 미지의 존재, 특이한 팀, 별난 그룹. 평범하지 않은 엔믹스다움이 마치 자기력(磁氣力)처럼 대중을 끌어당겼다. 느릴지언정 신중하고 확실한 전략이다.

지난해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했던 ‘Fe3O4: 브레이크(BREAK)’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줬던 엔믹스는 지난 17일 발표한 4번째 미니앨범 ‘Fe3O4: 포워드(FORWARD)’로 마침내 한계를 돌파했다. 자철석의 화학식을 뜻하는 ‘Fe3O4’ 3부작 ‘브레이크’ ‘스틱 아웃(STICK OUT)’의 바통을 넘겨받아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이 앨범은 ‘믹스토피아’로 불리는 그들만의 낙원으로 가기 전 잠시 현실세계 ‘필드’에 머무르며 얻은 깨달음을 통해 고정관념 너머 광활한 가능성의 무한한 공간을 꿈꾼다.

추진방식은 불확실성이다. 강렬한 후렴과 절정부 고음을 군무 대형으로 소화하는 K팝 공식을 거부한다. 심지어 믹스팝이란 단어조차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자철석 시리즈에서 핵심 전략으로 채택한 힙합과 함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음악은 K팝이라기보다 장르 음악에 가깝게 들린다. 서사와 음악의 결합 역시 환상적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 항해는 어떤 극한 상황이라도 능숙하게 해내는 멤버들의 출중한 실력에 무한한 신뢰가 있어 가능한 결정이다.

엔믹스 콘셉트 사진.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엔믹스 콘셉트 사진. 사진=JYP엔터테인먼트



‘포워드’는 재즈의 베이스 리프와 소울풀한 보컬, 힙합 비트를 결합한 트립합 장르의 ‘하이 호스’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독특한 코드 진행 아래 거듭 새롭게 변주되는 소리, 래퍼 pH-1이 작사에 참여해 차분함을 넘어 초월한 듯 냉정하게 들리는 랩부터 극적인 순간을 인도하는 드라마틱한 보컬의 구조가 한 편의 뮤지컬을 연상케 한다. ‘내려다보는 따가운 시선 뛰어넘어’라는 반항적 자세와 함께 ‘익숙한 곳을 벗어나 너와 있을게, 꿈꾼 적 없는 곳까지’라고 약속하는 거대한 이상의 유기적 표현이다. 타이틀곡 ‘노 어바웃 미(KNOW ABOUT ME)’는 긍정적으로 기대를 배반한다. 지난 앨범의 대표곡 ‘대시’(DASH)와 ‘별별별’처럼 힙합, 그중에서도 트랩 비트 위 조곤조곤 의지를 담은 싱잉 랩과 보컬을 물 흐르듯 이어가다가 후반부 댄스 브레이크에서 완전히 장르를 뒤집어 반전을 선사한다.

데뷔곡 ‘O.O’에서 선보였던 브라질리언 펑크의 속도를 줄여 래칫 비트와 하우스를 결합한 ‘슬링샷’, 808 베이스의 적극적 활용, 현악기 샘플을 활용한 프로듀서 뎀 조인츠의 활약이 비욘세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골든 레시피(Golden Recipe)’는 이들이 공고한 가치관으로부터 받는 오해와 달리 음악적으로 가장 최신의 유행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곡이다.

아이돌 연습생 출신 프로듀서 신시아와 엔즈가 작곡한 ‘빠삐용’은 놀랍다. 인상적인 보컬 샘플로 곡을 열며 변칙적 리듬 파트 운용과 함께 고난도의 가창을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는 멤버들의 퍼포먼스는 자유를 향한 갈망과 투쟁의 가치를 드높인다. 파도 소리를 닮은 서정적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 마지막 곡 ‘오션(Ocean)’은 또 어떤가. 부드럽고 편안한 해안 풍경을 악기 연주와 보컬로 밀고 당기며, 후반부 키 조절로 2분50초 내로 상상하기 어려운 다이내믹을 심는다. 6곡 17분 가운데 허투루 넘길 시간이 단 1초도 없다.

 

엔믹스 콘셉트 사진.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엔믹스 콘셉트 사진.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엔믹스의 ‘포워드’로 그들의 음악 항로를 둘러싼 공존지대를 목격한다. 거창하고 대중성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세계관이 엔믹스의 경우 그룹을 이끌어 가는 공고한 철학이다. 기획사와 기획자의 협업·존중도 돋보인다. 회사 내 본부를 나눠 창작 주체를 확실히 구분하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탄탄히 육성한 멤버들은 4본부 스쿼드(SQU4D) 이지영 본부장의 지휘 아래 뚝심 있게 기획을 밀어붙인다. K팝의 자본력과 고도화한 기획으로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어 대중을 팬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기술이 분명하다.

동시에 열린 자세로 음악을 대한다. 처음엔 단일 싱글에 적용되는 마케팅 전략으로 보였던 믹스팝은 이제 그룹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조화롭게 적용하는 바람직한 창작 태도를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키드밀리, 오메가 사피엔, 머드 더 스튜던트 등 한국 래퍼들을 초빙해 가사를 맡기고 국내외 작곡가들을 폭넓게 기용해 최선의 선택을 끌어낸다.

분명 시행착오도 있었다. 초기 그룹 이미지 확립 실패 및 히트곡 부재, 간혹 너무 과감해 당황스러웠던 결정은 오늘날 엔믹스가 높은 음악적 완성도와 비례하지 못하는 인지도를 고민하게끔 했다. ‘포워드’는 그런 의심의 시선을 거둬들일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장르 음악의 매력과 K팝 시스템, 엔믹스의 실력이 구축한 완벽한 안정성의 트러스 구조다. 실험, 도전, 안정을 아우르며 동료를 모아 온 엔믹스는 정답이 없어진 세계에서 정답이라고 믿는 방향을 향해 돌진한다.

다 함께 가 보자. 갈 수 있는 가장 끝까지.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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