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돋보기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구상과 유럽 자강론
국익 우선 미 대외정책 국제 안보 긴장
다중분쟁 종식·중국과 경쟁 집중 의도
미 방위비 증액 압박 유럽엔 발등의 불
자강 주도할 역량·리더십도 제약 많아
우크라·나토 동맹국 배제된 협상 주목
한국 빠진 미·북 비핵화 논의 가능성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구상이 가시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동맹국들을 배제한 채 러시아와 종전협의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안전보장 방안을 둘러싼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의견 차가 조율되지 못하면서 양국의 정상회담도 파행됐다. 이러한 배경에서 유럽 자강론이 부상하며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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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종전구상과 논란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 과정에서 무한정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조속한 종전의지를 밝혔다. 취임 이후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를 하면서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 착수하기로 했다. 그 결과 양측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협상에 돌입하면서 전쟁 종식 방안을 다룰 고위급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양측의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제재 완화와 관계 정상화 등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미국의 협상 행보는 유럽·중동의 다중분쟁을 종식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 집중하려는 국가전략의 논리를 보여 준 것이다.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에 중국 견제 의도가 투영됐다는 점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옛 소련을 견제하고자 한 냉전기 닉슨 독트린의 역발상으로도 평가됐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유럽 동맹국을 배제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미국의 종전구상이 가시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안보 우려가 고조됐다. 우크라이나가 일관되게 주장한 영토 주권 회복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면서 배제했기 때문이다.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는 종전협상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러시아 측 입장에 동조하면서 불법적 침공을 사실상 용인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 국제주의 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 대외정책 기조의 전면적 부정으로 해석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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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미국과 광물협정 체결로 안전보장을 담보하고자 했다. 이 협정은 우크라이나 내 전략 광물 및 석유·천연가스의 공동개발과 인프라 운영 등에서 나오는 매출을 양국의 공동기금에 재투자하고, 미국이 이의 재정적 지분을 보유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 협정으로 창출될 미국의 이익을 기존 지원 대가로 규정했으며, 이러한 이익 자체가 러시아의 재침공을 억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미국의 이익을 침탈하지 못할 것이란 논리다. 전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미군 주둔 방안도 일축했다. 양측의 입장이 조율되지 못한 결과 광물협정 체결을 위해 진행된 2월 28일 백악관 정상회담이 설전으로 파행되기도 했다.
유럽 자강론과 제약요인
트럼프 집권 1기 시기, 미국은 유럽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트럼프 재집권에 따라 미국의 국방비 증액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이에 2023년 11월 개최된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 참석한 유럽연합(EU) 정상들은 유럽 안보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강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유럽의 안보 자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유럽 자강론은 미국과 러시아의 종전협상이 본격화하면서 재점화됐다. 미국이 유럽 방위를 위한 동맹국들의 역량 강화를 주문하면서 방위비 증액을 압박해서다. 이에 2월 17일과 19일 연이어 열린 긴급정상회의에서 유럽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모색됐다. 미국·우크라이나 백악관 정상회의 파행 직후인 3월 2일 회의에서는 유럽 안보책임 증대 및 방위비 증액과 함께 영국·프랑스 주도로 우크라이나 평화를 보장하는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발전시키기로 합의했다. ‘의지의 연합’은 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 결성된 미국과 동맹국 연합을 지칭하는 용어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전후 유럽 평화 보장에서 대서양동맹의 연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유럽의 자강을 주도할 역내 역량과 리더십의 제약이다. 무엇보다 유럽의 군사적 역량만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엔 역부족이다. 특히 미사일 방어와 우주 기반 위성 능력 등 핵심 분야에서 미국이 제공해 온 지원은 대체 불가능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유지군의 우크라이나 주둔 방안에 미국이 불참의사를 밝힌 가운데 역내 합의도 도출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전후 유럽 안보의 관점에서 영국·프랑스의 핵 억제력을 바탕으로 유럽의 자체 억제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유럽 자강론 실현의 경제·정치적 제약요인도 존재한다. 독일의 경제위기로 상징되는 유럽의 경제 상황이 근본적 문제로 지목된다. 유럽 자강론 실현에 필수적인 방위비 대폭 증액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와 올 2월 독일 총선에서 확인된 유럽 내 극우진영의 부상이 정치적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에 우호적이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인 이들 극우진영이 유럽 내부의 사회적 현안 해결을 강조하면서 안보 자강론의 논리에 호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한반도 안보와 대미협상 시사점
우크라이나가 배제된 종전협상을 계기로 6·25전쟁 정전협상이 주목받았다. 전쟁 당사국인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채 협상이 진행돼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 침략 재발 방지 방안으로 미국과 방위조약 체결을 강조했다. 반면 미국은 한국의 북침 의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에 한국이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하면서 미국과 갈등이 표출됐다. 하지만 미국이 협상에 응하면서 양국은 1953년 10월 1일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했다.
한반도 안보 관점에서도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한국이 배제된 방식의 미·북 비핵화 협상 재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 소외론 등 향후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북한 역시 우크라이나 종전협상에 주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사전 합의된 광물협정 체결을 결렬시킨 상황이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을 연상시킨다.
우크라이나는 광물협정 체결로 미국의 안전보장 조치를 담보하는 경제·안보 연계 협상을 추진했다. 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협상카드 부재를 지적하면서 호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협정 체결 결렬 직후 군사지원의 전면 중단 조치를 단행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광물협정에 서명할 준비가 됐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우리의 대미협상 전략 수립에 주는 함의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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