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세상을 진보하게 만드는 주요 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기술 결정론자들은 앨런 튜링의 말을 요즘 다시 곱씹어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계가 사고하기 시작하면, 기계가 인간의 미약한 능력을 능가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지능을 기계가 설정한 수준까지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기계는 대화하면서 자신들의 지혜를 갈고닦을 것이고, 어느 순간에는 기계가 통제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해야 한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이 이 말을 했던 건 지금으로부터 무려 70여 년 전인 1951년이었다.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이 되면 인공지능(AI)이 인류 전체의 지능을 초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정한 문제 해결을 하는 정도(챗GPT나 바드 등은 아직 여기에 속한다)에서 벗어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처럼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할 수 있는 범용 AI, 즉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시대가 코앞에 와 있다고 본다.
반면 위험성에 방점을 두고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워런 버핏은 AI의 잠재력을 우려, 원자폭탄에 비유했다. 영국 정부는 국가안보와 공공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성을 평가하고 대비하기 위해 마련하는 공식 문서인 국가위험기록부(NPR)에 AI를 처음으로 포함시켰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AI 레벨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이미 비숙련된 사람과 비슷하거나 나은 수준에 와 있다.
뉴스룸에도 본격적으로 AI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자체적으로 개발한 AI ‘에코(Echo)’를 공식 도입했다. 기사 편집과 정보 요약은 물론 코딩, 검색 최적화(SEO) 제목 작성, SNS 홍보 콘텐츠 생성 등의 특정 작업을 AI가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 인터뷰에서 기자가 활용할 질문도 추천해 준다.
다만 금지사항도 분명히 했는데 △AI가 기사 초안을 작성하거나 핵심 내용을 대폭 수정하는 것 △AI 시스템에 타사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입력하는 행위 △AI를 이용한 페이월(Paywall·유료 구독자만이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장치) 우회 등이 그것이다. AI가 생성한 이미지 및 영상은 반드시 출처를 명확하게 표시하도록 했다.
AI는 일단 저널리즘이 본질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 줄 도구로 보인다. 날씨나 경기 결과, 주식시장 동향 등 단순한 속보 뉴스는 현재도 AI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으며,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능력은 AI가 단연 우월해 데이터 저널리즘이 발전할 수도 있다. 탁월한 번역기술로 전 세계 뉴스 소비도 촉진할 것이다. 눈에 띄는 제목도 SEO 기능을 활용해 AI가 다채롭게 제안할 수 있다. AI는 이렇듯 뉴스룸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탐사나 해석, 윤리적 판단 등 저널리즘의 본질적 요소는 인간이 주도·장악해야 하는 부분이다. 전쟁 보도를 하더라도 AI는 사망자 수를 알려 주는 데는 유능하겠지만 어떠한 윤리로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해야 할지는 인간만이 판단·실행할 수 있는 영역이다.
저작권 침탈, 오류 발생 시 책임 소재 등의 부분도 우려된다. 하지만 더 걱정되는 건 편향된 학습을 한 AI가 왜곡된 시각으로 뉴스를 다량 생산, 유통하게 될 때다. 이미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 어려워진 시대, AI가 혼란의 증폭기가 될 수 있어서다. NYT의 가이드라인은 그런 면에서 의미 있어 보인다. 선제적이고 자발적인 언론의 가이드라인 제시와 준수 같은 준비작업이 바로 지금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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