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역사
무심한 듯, 가장 남성적인…예복으로 더 알려진 전투복 프록코트(frock coat)
클래식의 대명사 ‘정장·군복의 표준’
18세기 영·프 시작으로 기능성·품위 진화
19세기 아시아로 퍼져…조선에도 영향
20세기 들어 격식 있는 정장으로 안착
오늘날 결혼식이나 각종 시상식, 음악회나 미술전시, 그 외 중요한 미팅 등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옷이 있다. 단추가 두 줄로 내려오며 상체를 두 겹의 여밈으로 감싸는 더블 브레스티드 방식으로 된 이 옷, 바로 프록코트(frock coat)다.
프록코트가 인류사에 최초로 등장한 때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6세기, 아케메네스 왕조가 통치하던 페르시아 제국에서 귀족과 군인들은 겹섶(더블 브레스티드)으로 된 긴 외투를 걸치곤 했다. 활동성과 위엄을 동시에 갖춘 이 외투는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나갔고, 훗날 오스만튀르크가 선봉에 세운 기병대도 이에 영향을 받아 허리선을 강조한 이 외투를 입었다.
14세기 국제무역이 활발했던 남유럽에서 아라비아 문화권으로부터 유입된 고대 그리스 인본주의적 문물에 영감을 받아 훗날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난다. 이 시대 사회를 이끈 상류층은 해외 다양한 지역에서 특징적인 문물을 수집하여 감상하고는 했다. 오늘날 형식으로 잘 알려진 프록코트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다. 그러나 이 시기 많은 사람이 프록코트를 입고 활동하는 유행에 이르진 못했으며, 대부분은 고대 로마에서 유래한 튜닉과 바지를 입고 위에 망토를 걸친 복식이 여전히 주류를 이뤘다.
1453년 6월 7일, 이날은 서구 기독교 문명이 아라비아 이슬람 문명에 동방 육상무역로를 상실한 날이다. 이날 오스만 제국은 동로마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고, 이후 철저하게 동방 무역을 독점 및 중개하기 시작했다. 몽골·튀르크 문화에 강하게 영향받으며 자잘한 자수 장식을 한 프록코트가 이 시기 귀족 사이에서 유행했다.
이후 16세기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하던 스페인 제국이 유럽의 중심 세력으로 발돋움했고, 군복에서도 장식적인 요소가 강조됐다. 이 시기에는 안에 입는 더블릿(doublet, 몸에 딱 맞춰 디자인된 남성 재킷)과 바깥에 드러나는 허리선을 강조한 프록코트가 유행했다. 17세기에는 프랑스 루이 14세가 궁정 문화를 주도하면서 우리 눈에도 익숙한 프록코트의 기본 형태가 형성됐다. 루이 14세가 다스리던 시절 프랑스에선 길고 날씬한 실루엣이 우아함을 상징했다. 이 시대 패션이 허리선을 강조하며 뒤로 길게 퍼지는 디자인이 많은 이유다. 앞섶은 단추로 여미는 방식이었으며, 품위와 실용성을 모두 고려한 구조였다. 길이가 길면서도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앞이 갈라졌고, 소매는 몸에 밀착됐다. 바로 이 시기, 이웃 나라 영국은 내전에 휩싸여 있었다. 그 내전에서 두각을 드러낸 영웅 크롬웰이 조직한 신식 군대 신모범군(New Model Army) 소속 병사들이 바로 이 프록코트를 붉은색으로 염색하여 착용하기 시작해, 훗날 프록코트 복식이 유라시아 일부 지역을 넘어 ‘지구 전역에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군복 개량이 이뤄지면서 기능성과 품위를 동시에 갖춘 디자인이 등장했다. 영국군은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프록코트의 허리선을 위로 올리고, 단추를 추가해 착용이 편리하도록 했다. 혁명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기를 지나고 있던 프랑스군은 화려한 장식을 가미해 장병의 위엄을 강조했다. 본격적으로 장식적인 견장과 눈에 띄는 금속 단추가 이때 도입됐고, 컬러 대비를 통해 계급과 부대, 병과 등을 구별했다. 이러한 변화는 프록코트를 단순한 외투 복식에서 군복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했고, 역으로 민간에는 군복에 대한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군사 강국으로 떠오르며 프록코트가 장교들의 필수 복장이 됐다. 프로이센군은 기강을 강조하며 장교들에게 몸에 꼭 맞는 프록코트를 입혔다. 단추를 추가해 앞섶을 완전히 여밀 수 있도록 했고, 뒷자락을 길게 유지해 위엄을 더했다. 오스트리아군은 기능성을 중시해 기동성을 고려한 재단을 도입했다. 프랑스군은 기존 프록코트에 장식적인 요소를 한 층 더 추가해 군부의 권위를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19세기 유럽 군대에서 프록코트를 장교의 표준 복장으로 자리 잡게 했고, 이 시기 서구와 대대적으로 접촉하게 된 중국과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일본에 영향을 받던 조선에도 프록코트 복식이 전파됐다. 이 흐름이 20세기에 들어 중요한 예식 때 차려입는 격식 있는 정장 문화로 자리 잡았다.
군복으로 두각을 드러낸 옷이었던 만큼, 프록코트는 본래 실용성을 바탕으로 고안됐다. 길게 내려오는 옷자락은 사람이 말에 오를 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갈라졌다. 앞섶은 단단히 여며 몸을 보호했다. 이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군복에 도입돼 프로이센과 영국군은 장교용 코트로서 프록코트를 선택했다. 직선적인 실루엣은 군인의 위엄을 드러냈고, 단추와 견장은 계급을 나타냈다. 19세기 후반이 되자 유럽 전역에서 정장과 군복 모두 프록코트를 군복의 표준으로 삼았다.
군복에서 프록코트가 갖는 의미는 컸다. 장교들은 이를 입고 전장을 지휘했다. 앞단이 갈라진 구조는 칼을 뽑기 용이하도록 설계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프록코트는 권위를 상징했다. 유럽 왕실과 관료 사회는 이를 예복으로 사용했다. 비록 전투복으로 쓰일 때만큼 자주 볼 순 없지만, 오늘날에도 군대와 경찰의 정복, 법복, 대례복에서 여전히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영국의 근위대와 세계에 많은 해군장병들은 여전히 프록코트에서 발전한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현재 프록코트 스타일을 적용한 정장과 외투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브랜드 몇 개를 꼽아보자면 우선 ‘스펜서 하트’는 전통 군복의 직선적인 실루엣을 현대적으로 변형했다. 구조적인 어깨선과 슬림한 허리 라인을 강조하며, 단추 장식과 높은 칼라 디자인을 통해 강인한 인상을 준다. ‘폴 스미스’는 클래식한 프록코트 실루엣을 유지하면서도 소재와 패턴에 변화를 주고 있다. 전통적인 울 원단뿐만 아니라 벨벳과 트위드 소재를 활용해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하는 모습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브룩스 브라더스’는 정통적인 프록코트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일상에서 활용하기 쉽도록 약간의 캐주얼한 요소를 가미했다. 부드러운 곡선 형태의 라펠과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핏을 적용해 격식과 실용성을 모두 충족시킨다.
프록코트는 격식 높은 자리에서만 입는다는 인상이 있지만 일상에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슬림한 팬츠와 앵클부츠를 매치하여 실루엣을 강조하면서도 균형을 맞춘 레이어링을 시도해 본다거나, 터틀넥과 함께 입어 보온성과 세련미를 동시에 갖추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이에 더블 브레스티드 베스트를 매치해 클래식하면서도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프록코트는 클래식 복식의 중요한 아이템으로 단순한 유행을 넘어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을 지닌다. 군복에서도 여전히 그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복식으로서, 앞으로도 그 의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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