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스타를 만나다 -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송캠프 시스템…K팝 그 자체
국내 소비 넘어 해외 진출, 한류 시동
이수만과 이별…논란·사고 터널 지나
SM 3.0프로젝트로 새로운 시대 선언
노하우로 키운 NCT·에스파 승승장구
30년 기념공연서 SM 도시 장관 ‘연출’
지난달 12일 ‘SM타운 라이브 2025’가 열린 서울 고척스카이돔 앞은 인산인해였다. SM엔터테인먼트의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이 공연은 한국에서는 2021년 이후 4년 만에 현장 관객과 같이한 기획사 콘서트였다.
서로 다른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결집한 전 세계 SM엔터테인먼트의 열혈 팬 ‘핑크 블러드’가 들뜬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거리 가게는 이틀간의 대형 공연을 환영하는 문구를 내걸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고척 스카이돔 인근을 ‘SM의 도시’로 명명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 30주년이다. 1970년대 록밴드 4월과 5월, 샌드페블즈를 거친 음악가이자 가수 출신 MC로 종횡무진 활약한 이수만이 1980년대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연예기획자의 꿈을 품고 귀국해 SM기획에 이어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해가 1995년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역사는 곧 K팝의 역사다. 아무리 음악에 문외한이라도 SM 소속 가수들의 음악을 접하지 않은 이는 드물다. 각자 좋아하는 그룹과 멤버 이름을 댈 수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SM 가수가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30년은 긴 시간이다. SM의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에 가져온 변화가 지금도 이어지는 것처럼 SM의 음악을 접한 이도 세대를 이어간다. 1990년대 초 현진영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부상한 청소년 문화를 그대로 흡수해 아이돌체제를 선언한 H.O.T.와 K팝 걸그룹의 시작 S.E.S.는 세기말을 지배했다.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속 하얀 풍선을 들고 우상을 쫓던 수많은 성시원(정은지 분)은 어느덧 50대를 앞두고 있다. 새천년과 함께 SM은 날아올랐다. 신화와 플라이 투 더 스카이에 이어 SM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보아가 성공을 거뒀다.
SM엔터테인먼트는 연습생을 육성해 춤과 노래에 모두 능한 댄스그룹을 결성하는 K팝 시스템을 가요계에 장착시켰으며, 국내 소비를 넘어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시장에 적극 진출하며 NRG, 클론 등 가수들과 ‘한류’라는 단어를 보편화했다.
2000년대 초중반의 침체기는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 거대 그룹의 대성공과 함께 펼쳐진 전성기를 위한 도움닫기였다. SM의 음악이 울려 퍼지던 그 시기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 대학생이 됐다. 2025년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공감받는 음악이 K팝, 그중에서도 이 시기 SM의 음악이라는 점은 그들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작은 현상일 뿐이다.
수많은 성시원으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2010년대 샤이니와 에프엑스, 레드벨벳과 엑소의 전성기를 ‘직관’하지 못해 안타까울 터. 전 세계 작곡가를 불러 모아 합숙하며 노래를 만들고, 내부 평가와 심사를 거쳐 엄선한 곡을 선보이는 송캠프 시스템이 꽃을 피운 시기다. 대신 그들은 부모, 선배들과 함께 NCT와 ‘쇠맛’ 에스파가 이끌어 가는 오늘날 SM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일까. SM은 유독 가족, 핏줄, 우주, 세계 등 거대한 단어를 즐겨 사용해 왔다. 한국에서 SM만큼 독특한 동질감을 강조해 온 연예기획사는 드물다. SM타운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꾸준히 단체콘서트를 열고 기념앨범을 발표한다. 2012년 콘서트에서 가상국가를 선포한 사례는 너무도 유명하다.
SMP로 대표되는 SM의 독특한 음악양식과 그룹 멤버들에게 충성하는 팬은 같은 피를 가졌다고 ‘핑크 블러드’로 불린다. 가족은 언제나 화목할 수 없다. K팝 제작공정에 대한 비판, 여러 논란과 사건·사고, 세상을 떠난 음악가들은 SM의 치명적 약점이자 아픈 상처다. 그럼에도 함께한다. 직장 동료가 아닌 가족이니까.
무한개방과 무한확장을 기치로 내세웠던 NCT, SM 컬처 유니버스라는 대담한 세계관은 비록 지금은 퇴색됐으나 강력한 리더십과 성공적인 프로듀싱으로 자신을 증명한 이수만 총괄프로듀서 덕에 가능했던 실험이었다.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이 일군 도전의 역사다.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이수만이 더는 회사에 없다. 경영권 분쟁 끝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SM을 떠난 그는 미국에서 새로운 연예기획사 A2O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다국적 아이돌그룹을 육성 중이다. 빈자리를 채운 새 경영진은 SM 3.0으로 불리는 프로젝트로 기업 내부 조직을 개편하고 새로운 SM 시대를 선언했다. 긴 시간 탄탄하게 다져진 창작 노하우가 있기에 당장 개인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는 않으며, NCT와 에스파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오늘날 SM은 여전히 가족일까? 아니면 같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일까?
‘SM타운 라이브 2025’와 함께 지난 14일 발매된 30주년 기념앨범 ‘2025 SM타운: 더 컬처, 더 퓨처’에서 답을 들을 수 있다. 공연은 거대했다. 총 러닝타임이 5시간 반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차례로 등장해 자신의 대표곡은 물론 SM 역사를 장식하는 히트곡을 재해석했다. 그 무대에서 선보인 음원이 이 기념앨범에 담겨 있다. 에스파의 에프엑스 ‘첫 사랑니’, 동방신기의 레드벨벳 ‘싸이코’, 라이즈의 동방신기 ‘허그’ 등이다. 신선한 리메이크작도 있고, 상상만 해 보던 조합이 색다른 곡도 있다.
문제는 기획 방향이다. 과거의 유산을 활용해 제공하는 팬서비스는 30주년이라는 거대한 의미를 지탱하기엔 힘에 부친다. 유연하게 연결되지 못했던 공연 순서처럼 앨범도 리메이크 모음집 이상의 가치를 확보하지 못한다. 넓은 무대를 꽉 채운 연습생들과 영국 현지화 그룹 디어 앨리스, 에스파와 공명하는 버추얼 아티스트 나이비스는 미래의 SM 비전을 선언한다. 하지만 정작 역사를 장식한 일부 음악가는 회사로부터 외면받은 섭섭함을 토로했다.
“SM타운은 가족이죠?” 슈퍼주니어 멤버 은혁이 외쳤다. 안타깝게도 SM타운은 이제 ‘가족’이 아니라 ‘도시’처럼 느껴진다. 시대는 변한다. 사람도 변화한다. 역사에 남는 건 가치다. 보아가 노래한 고(故) 종현의 ‘하루의 끝’에 많은 이가 감동하는 이유다. 스쳐 지나가는 타인이 아니다. 가족이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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