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어 마인드셋 / 전투의 뇌과학을 들여다보다
① 현대전, 마음을 향한 전투가 시작됐다
② 인지전, 우리는 왜 뇌를 알아야 하는가?
③ 전장, 총알보다 무서운 정신적 압박
④ 군인 내면의 힘! 정신적 강인함
⑤ 인지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⑥ 내면의 힘을 끌어올리는 방법
⑦ 최강의 전사를 만드는 워리어 마인드셋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젤렌스키 대통령이 도망쳤다”
허위 정보 유포로 여론 흔들어…
전쟁 내내 엄청난 양의 보도 쏟아졌다
실제 전장은 컴퓨터게임과 달라
장병들, 극한 공포·거부감 느낄 수도
화력·전력 압도→심리·인식 압박
승리를 쟁취하는 방식 완전히 변했다
현대전 전장(戰場) 범위가 기존 지상, 해상, 공중을 넘어 사이버 영역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전쟁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다양해지면서, 주요국은 상대 지도부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인지·심리영역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장병들이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고민하는 현역 해군장교의 연구 결과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미국 수송기에 매달린 난민들”
2021년 8월 17일, 무장단체 ‘탈레반’을 피해 필사적으로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을 떠나려는 난민들이 미군 수송기에 매달린 사진이 전 세계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이륙한 비행기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이 추락하는 영상이 퍼졌다. 미군의 명예는 순식간에 실추됐다. 아프간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가족들은 그동안의 희생이 헛된 것처럼 느껴진다며 정신적인 충격을 호소했다.
다음 날, 미군은 수송기 안에 빼곡히 앉아 있는 난민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은 “미군이 화물 대신 난민을 선택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한 이 사진은 미군이 작전상 보안을 이유로 정보를 통제하는 대신 신속하게 미디어전을 수행하며 장병들의 자부심을 지켜준 사례가 됐다.
이제 전쟁의 승패는 총칼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미디어가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현대전은 물리적 공격뿐만 아니라 심리전과 정보전을 통해 적의 전투 의지를 약화하고, 대중의 인식을 조작해 전쟁의 흐름을 바꾼다. 이제 총성 없는 전쟁의 시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자가 전장을 장악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총성 없는 전쟁의 시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미디어 보도가 쏟아진 전쟁이었다. 러시아는 전쟁 초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수도 키이우에서 도망쳤다” “우크라이나가 먼저 러시아를 공격했다”는 허위 정보를 유포했다. 러시아 관영매체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생물무기 연구를 은밀히 후원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biological’이라는 단어를 일주일 동안 600회 이상 트윗했다. 이는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를 활용해 국제사회의 여론을 흔들려는 러시아의 전략적 시도였다.
이에 대응해 우크라이나와 서방 여러 나라들은 공세적으로 진실검증 메시지를 전파했다. 메타와 구글 등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은 러시아 관영매체 웹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수상한 채널을 삭제함으로써 심리전 활동을 기술적으로 원천 차단했다.
디지털 플랫폼과 허위조작정보가 새로운 전쟁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허위조작정보’는 2016년 미국 대선과 브렉시트 사태를 계기로 개념이 정립된 용어다. 소셜미디어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정보 전파 속도가 빨라졌고,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달로 허위정보 생산과 확산이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허위조작정보는 전통적인 선전선동(프로파간다·Propaganda)을 넘어 이제는 정교한 심리 작전의 도구가 되고 있다.
적의 관점에서 볼 때 개방된 미디어 환경은 우리 군의 약한 고리로 분석될 수 있다. 장병들의 SNS 이용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허위정보를 유포하고, 점진적으로 가치관과 신념체계를 훼손시킬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 기반의 자동화된 허위정보 생성은 무제한적이며, 도박·마약·유흥 등의 콘텐츠를 지속해서 노출해 군 기강을 해이하게 만들 수도 있게 됐다. 더욱이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신상털이나 협박은 군사 정책 결정을 방해하고 군에 대한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훼손을 넘어 군사 안보 전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전장에서의 심리적 압박
컴퓨터 게임처럼 클릭 한 번에 “고! 고! 고!”를 외치며 아무런 심리적 충격 없이 싸우는 군인은 없다. 군인들은 왜 싸워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고, 공포로 인해 전장에서 총을 쏘지 못할 수도 있다. 전쟁터는 인간이 견디기 힘든 극한의 공간이다. 폭발음과 총성, 전우의 비명이 뒤섞인 혼돈 속에서 군인들은 극도의 심리적 압박을 경험한다.
정신의학자 리처드 가브리엘의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미군이 참전한 전쟁에서 적과 싸우다 죽을 확률보다 정신적 사상자가 될 확률이 훨씬 높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50만4000여 명의 미군이 심리적으로 무너지며 전투력을 상실했다. 50개 사단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는 단순한 신체적 피해를 넘어, 전쟁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장병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여러 층위에서 발생한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죽음의 공포다. 하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는 정체성의 혼란이 자리 잡고 있다. 문명사회에서 ‘폭력은 나쁘다’고 배우며 자란 이들이 갑자기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임무를 받아들이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2차 대전 당시 미군 소총수 중 실제로 적군을 향해 사격한 비율은 15~20%에 불과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베트남전쟁에서는 적 한 명을 살해하는 데 평균 5만 발의 총알을 소모했다.
이는 단순한 사격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동족을 죽이는 데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병은 로봇이 아니다. ‘올바른 신념’이라는 데이터를 주입한다고 해도,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장병들이 잘 싸워 주길 바라는 막연한 ‘믿음’을 ‘확신’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심리역량이라는 새로운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향한 전투
현대전은 단순한 무기와 병력의 충돌이 아니다. 전쟁은 이제 인간의 마음을 겨냥한 새로운 차원의 전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화력과 전술의 대결이었다면, 오늘날의 전쟁은 심리와 인식의 싸움이다.
나토가 2020년 3월에 발표한 ‘2040 전투수행기획 연구 보고서(Innovation Hub Warfighting 2040 Project Report)’는 우리가 마주할 미래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이버 공간과 정보기술을 활용한 내러티브 전투가 전쟁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 각국 군사 전문가들이 인지전(Cognitive Warfare)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늘날 적은 우리의 신체가 아닌, 사고와 신념을 겨냥한다. 그들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가치관과 신념을 무너뜨리려 시도한다. 마치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고 도시를 함락시키는 것과 같다.
전쟁의 본질은 여전히 승리를 향한 투쟁이지만, 그 승리를 쟁취하는 방식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전쟁은 인간의 마음을 향한 전투로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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