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스타를 만나다 - 브브걸
‘위문열차’ 타고 쉴 새 없이 롤린~롤린~
흙먼지 먹으며 ‘군통령’ 된 브레이브걸스
3인조로 재정비해 선보인 댄스 팝 ‘러브2’
선정적이지도 마냥 신나지도 않지만
깨지더라도 계속해서 구르며 얻은 노련미
다듬어진 콘셉트, 역주행 이후 반응 최고
기획연재 이름을 정하며 고민이 많았다. 명색이 ‘K팝 스타를 만나다’니까 글을 쓰는 동안 한 번은 정말 그들을 만나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말과 글로 열심히 풀어 소개한다고 해도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에 견줄 수 있겠는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다행히 세 번째 원고에서 혼자만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운명의 장난처럼 이번 주 칼럼 주제로 삼지 않을 수 없는 그룹을 만나고 왔다. 2010년대 중후반 군 생활을 경험했다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군통령. 구 ‘브레이브걸스’, 현 ‘브브걸’이다.
지난주 소개했던 보이넥스트도어의 ‘오늘만 I LOVE YOU’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추억 팔아서 곡이나 쓰는 건 딱 죽기보다 싫은데’. 죄송하다. 브브걸을 소개하기 위해선 약간의 ‘추억팔이’가 필요하다. 마치 ‘롤린(Rollin’)’의 ‘그날을 잊지 못해 베이베’라는 노랫말처럼 말이다.
지금도 2017년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지친 일과를 마치고 생활관에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던 오후, 누군가가 틀어 놓은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브브걸의 ‘롤린’ 첫 무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브브걸은 2016년 ‘하이힐(HIGH HEELS)’이라는 노래로 군대 내에서 소소하게 인기를 누렸기에 당시 장병들에게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 하지만 7인조 그룹에서 5인조가 된 브브걸을 보며 역시 군에서의 인기가 사회에서의 지지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본 ‘롤린’은 희한한 노래였다. 장르는 밝고 신나는 트로피컬 하우스풍의 댄스곡인데, 멤버들은 뱀파이어를 연상케 하는 무대의상을 입고 치명적인 눈빛을 쏘아댔다. 하이라이트는 후렴부였다. ‘롤린 롤린 롤린’과 함께 동기 전원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얇은 플라스틱 의자 위에 이전 활동곡처럼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올라가 ‘허수아비 춤’을 췄다. 내려와서는 양손을 머리 위로 하고 무대를 돌며 ‘가오리 춤’을 선보였다.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노랫말과 섹시한 콘셉트, 형용하기 힘든 안무까지 모든 요소가 다 따로 놀았다.
‘롤린’은 그렇게 지상파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그 컬트한 매력과 ‘군통령’의 고정관념이 ‘위문열차’ 무대에는 무척 어울렸다. 무대가 없었던 브브걸은 전국 군부대를 돌고 돌며 쉴 새 없이 굴렀다. 육·해·공군 가리지 않고 군부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민영은 야외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수도 없이 벌레를 먹었다며 그때를 추억했고, 은지는 소품으로 사용한 의자를 진짜 의자인 줄 알고 누군가 치워 버렸을 때의 비상사태를 이야기하며 웃어 보였다. 반주가 멈추고 마이크가 꺼지는 등의 일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윽고 부대 곳곳에서 ‘롤린 롤린 롤린’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대할 때가 되자 ‘롤린’은 과장을 좀 보태 그 어떤 군가보다 힘이 센 노래가 됐다. 언제, 어디서나 ‘온통 너의 생각뿐이야’를 선창하면 ‘나도 미치겠어’와 함께 수십, 수백 번 봐서 외워 버린 안무가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때 열광했던 우리의 모습이 4년이나 지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유튜브 클립에서 해체 직전의 브브걸에게 기가 막힌 반전을 선사한 것이다.
무명의 브브걸은 긴 기다림 끝에 최고가 됐으나 ‘롤린’ 이후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운전만 해’가 사실상 해체를 암시하는 마지막 곡이었기에 급작스러운 성공 이후의 기획은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치맛바람’ ‘술버릇’은 물론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인기를 누렸음에도 새 전기를 마련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기획자들은 음악 역사상 셀 수 없이 등장하고 사라져 간 ‘원 히트 원더’들이 빠지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또 4년이 흘렀다. 아직도 ‘롤린’은 인기가 많을까? 인터뷰를 준비하며 유튜브에 노래를 검색해 봤다. 추억 속 위문열차가 아직도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먼저 놀랐다. 그리고 ‘롤린’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브레이브걸스, 아니 브브걸은 여전히 국군 장병들과 함께 허수아비 춤과 가오리 춤을 추며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신기했다. 거꾸로 매달아도 흘러가는 국방부 시계처럼 ‘롤린’도 여전히 힘차게 구르고 있었다. 4명이 3명이 되고, 기존 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되고, 다른 콘셉트를 채택했음에도 여전히 브브걸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 장병들과 함께 ‘롤린’을 열창했다.
아직도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브브걸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민영이 웃으며 답했다. “저희 매력은 노련함이죠.” 은지와 유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롤린’은 대단히 선정적이라거나 단순히 신나는 노래여서 다시 떠오른 곡이 아니었다.
전대미문의 팬데믹 시기를 지나던 우리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그룹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위문열차 무대에서 장병들과 함께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꿋꿋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모습에서 받은 감동이 역주행의 핵심이었다. 차분히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면서도 다가오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던 그들의 태도 속 단단하게 다져진 평정심을 확인했다.
브브걸의 경력이 새롭게 굴러간다. GL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팀을 재편한 뒤 지난 15일 발표한 새 노래 ‘러브(LOVE) 2’는 브레이브걸스가 아닌 브브걸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카라, 인피니트, 러블리즈 등 K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을 작곡한 한재호·김승수 작곡가가 ‘오랜 시간 같은 길을 걸어온 이들’을 위해 차가운 겨울의 조심스러운 새출발을 응원하는 섬세한 댄스 팝을 완성했다.
‘둘이 써 내려갈 얘기가 기대되지 않나요’ ‘살짝 긴장되지만 꼭 듣고 싶어’. 멤버들은 여느 녹음 과정에서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정을 고백하며 새 활동을 향한 두근거림을 숨기지 않았다. 말끔하게 다듬어진 콘셉트와 노선에 반응도 역주행 이후 가장 좋다.
추억의 한편에 머무르는 음악이 주는 감동은 분명하다. 고고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시간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바위 같은 음악이다. 부딪치고 깨지더라도 계속해 구르는 돌멩이들의 음악에 더 마음이 간다. 그런 브브걸과의 만남이 기뻤다. 사진=GL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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