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38. 2015년 유라시아친선특급 <3>
러시아 이르쿠츠크
물 받아 머리감고 샤워는 언감생심
3일을 달려 도착한 세 번째 기착지
시베리아 유형지이자 동토 속 화원
이광수 작가 소설 ‘유정’ 무대이기도
바다 같은 바이칼호 풍광에 탄성 절로
한국인과 닮은 문화 간직한 부랴트족
특산물 어류요리 ‘오물’ 시식 후 배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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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이름 지은 곳. 가장 악명이 높은 시베리아 유형지이면서 귀족 유형자가 많이 모여 문학·미술·음악이 꽃을 피운 동토(凍土) 속 화원(花園). 2015년 7월 19일, 유라시아친선특급의 세 번째 기착지인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중간에 역에서 두 차례 잠깐 정차한 적은 있지만 3일이나 걸리다니. 넓디넓은 시베리아의 광활함에 감탄할 뿐이다.
사실 그간의 열차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일단 2×2m가량 되는 객실이 넉넉지 않았다. 이 공간에 2명 또는 4명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짐까지 풀고 나면 어떨지 상상이 갈 것이다. 다행히 높이는 2.5m 정도로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이런 객실이 차량마다 9개가 있다. 복도 폭도 약 50㎝에 불과하다. 두 사람이 함께 다니지 못한다. 한 사람이 지나갈 때 다른 사람은 벽과 밀착해야 한다.
무엇보다 힘든 일은 씻는 것이다. 특히 하바롭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62시간에 이르는 구간이 그랬다. 양치와 세수는 문제가 없다. 머리를 감으려면 각자 준비한 물병 등을 이용해 물을 받아놓고 감아야 한다. 감질나는 노릇이다. 샤워는 당연히 꿈도 못 꾼다. 그렇게 며칠씩 있으면 머리카락이 엉겨 붙고, 털보들이 즐비해진다.
이러한 사연을 안고 달려간 이르쿠츠크에서 우리는 완전체가 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떠난 본선과 중국·몽골을 거친 일행이 합류한 것.
그리고 외교부·코레일·경상북도 공동 주최로 이르쿠츠크 바이칼 축구경기장에서 ‘유라시아 대축제’를 개최했다. 양국이 어우러진 행사에서는 국악단 ‘소리개’의 퓨전국악 공연이 펼쳐졌다. 국민공모 참가자들은 합동공연을 했다. 답례 형식으로 이르쿠츠크 지역 소수민족 전통공연팀이 신명 나는 무대를 선보여 흥을 돋웠다. 가족·친구·연인과 함께 온 교민·현지인들은 제기차기, 윷놀이, 공기놀이, 투호놀이를 체험하는 등 우리 전통놀이에 큰 관심을 보였다. 행사 하이라이트는 친선 축구경기였다. 이르쿠츠크 주지사를 포함한 주정부 관계자와 친선특급 일행의 맞대결. 러시아는 전통의 축구 강호. 결과는 6 대 2 패배. 씁쓸하지만 실력 차이는 컸다.
유라시아 대축제를 마친 뒤 찾아간 저녁식사 장소는 조심스러운 곳이었다.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이었기 때문. 이동하기 전 가이드에게 주의사항을 들었다. 예민할 수 있으니 서로를 비교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라고. 또 사진을 같이 찍자고 요청하면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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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오히려 그쪽이 더 적극적이었다. 노래를 함께 하자며 나서고, 사진을 찍자고 먼저 제의했다. 경직된 것은 우리였다.
이르쿠츠크는 자유세계를 찾아 방황하던 이광수의 소설 『유정』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도 독립운동가의 체취를 맡을 수 있다. 레닌 거리 23번지 옛 극장이다. 1920년대 벽면에는 그러한 역사의 현장임을 전하는 동판이 여러 장 붙어 있다. 그나마 이는 보존이 잘 된 사례다. 1910년대 이범석·이범윤 등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유배된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다음 날인 20일 ‘시베리아의 진주’ ‘시베리아의 파란 눈’으로 불리는 바이칼호에 발을 디뎠다. 호수보다는 바다였다. 약 3만1000㎢로 대한민국의 3분의 1 정도 크기다. 맑디맑은 물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분단 70년을 맞아 ‘한민족의 시원(始原)’이라고도 여겨지는 땅을 밟은 기쁨은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했다는 논란이 있는 육당 최남선은 1925년 ‘불함문화론’에서 바이칼호 일대를 한민족의 기원으로 제시했다. 앞서 유라시아 대축제에서 만났던 부랴트(Buryaad)족 발렌티나 쇼도로바 씨도 “부랴트족과 한국인은 바이칼에서 난 하나의 민족”이라며 “외모뿐만 아니라 어른을 공경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정신도 똑같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인근 박물관에서는 부랴트족과 우리의 언어, 문화, 건축양식, 생활 모습 등이 상당히 많이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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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오물(Omul)도 시식해 봤다. 연어과에 속하는 오물은 바이칼호에 서식하는 어류로, 지역 특산물이자 주요 관광 수입원이다. 대부분 기름에 튀기거나 구운 상태로 판매하는데, 미안하지만 내 입맛은 아니다. 먹고 나니 배부른 게 아니라 배가 아프다. 약간 상한 것을 먹어 그런 듯하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는데.
세계 최대의 담수호이자 수심이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이 품고 있는 물(약 2만3000㎦)은 미국 5대호 전체 수량과 맞먹는다. 그런데 330여 개의 크고 작은 강이 모여든 이 호수의 물이 흘러나가는 곳은 단 하나, 안가라강뿐이라고 한다. 우리 민족은 지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바라는 건 한마음이다. 안가라강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모두가 합쳐져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면 통일은 어느새 우리에게 다가와 있지 않을까.
못다 한 이야기 하나. 이르쿠츠크에서 폭행(?)을 당했다. 그것도 수차례에 걸쳐. 주인공은 유라시아친선특급 참가단 대표인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다. 사연은 이렇다. ‘바냐’라는 러시아식 사우나가 있다. 통나무로 만든 집 벽난로에 불을 지펴 돌을 달구고, 여기서 나오는 열로 몸을 뜨겁게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자작나무나 참나무 가지를 빗자루 모양으로 묶은 ‘베니크’로 온몸을 부드럽게 두들겨준다. 이는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더워진 몸은 주위 호수나 강에 들어가 식히고, 다시 사우나에 가서 몸을 데운다. 그때 베니크로 나를 두들긴 분이 강 전 국회의장이다. 건강을 위해 신진대사를 촉진해 줬으니 가해자가 아니라 은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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