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 군사혁신’ 주창자가 본 승리의 기원과 조건

입력 2025. 01. 08   16:16
업데이트 2025. 01. 0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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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군사명저를 찾아서 
앤드루 크레피네비치의 『승리의 기원: 파괴적 군사혁신이 어떻게 강대국의 운명을 결정하는가』
The Origins of Victory: How Disruptive Military Innovation Determines the Fates of Great Powers. p. 549. Yale Univ. Press. by Andrew F. Krepinevich, Jr. 2023.

혁신, 창의적 개인·제도적 노력 결합

과학기술 발달 핵심 추동요인 작용
새 작전개념 개발 아낌없는 투자하고
새로운 환경·개념 부합 군사력 증진
혁신 주도 무기 불완전해 맹신 금물

 


전쟁을 연구하는 이들의 궁극적인 질문은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다. 군 지휘부의 고민도 다르지 않다. 현재 추진 중인 국방력 강화가 과연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갖는다. 『승리의 기원: 파괴적 군사혁신이 어떻게 강대국의 운명을 결정하는가』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책이다. 
저자 앤드루 크레피네비치(1950년생) 박사는 미국 국방부 총괄평가국(Office of Net Assessment)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미 국방정책의 실질적 브레인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1992년 집필한 『The Military-Technical Revolution: A Preliminary Assessment』는 이후 30년간 지속되고 있는 군사혁신(RMA) 담론의 출발점이었다. 이것 하나만으로 그의 역량과 명성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550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크게 2가지 문제를 다룬다. 하나는 최근 전쟁에서 확인된 파괴적 변화에 관한 평가다.

최근 역사에서 발견되는 4개의 파괴적 혁신사례를 살펴본다. 1890년대 존 피셔 제독은 당시 해군의 지배적 담론이었던 거함거포주의를 이겨 내고 속도와 장거리 항해 능력을 갖춘 함대를 건설했다. 1930년 독일의 한스 폰 젝트 장군은 베르사유조약의 제약 속에 참호전의 방어벽을 돌파할 전차군단의 기틀을 잡았다. 간전기 전함 위주의 사고가 지배하던 시기 윌리엄 심스와 모펫 제독은 항공모함(항모)의 작전적 유용성을 발견했다. 1980년대 크리치 장군은 대공방어막을 극복할 수 있는 비닉성(스텔스)과 정확성에 주목했다. 그 결과 최근 성숙한 수준에 이른 ‘정확성의 혁명(Precision-Warfare Revolution)’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혁신의 토대가 되는 개념은 당시 지배적인 작전적 사고와 질적으로 다른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이었다. 이런 질적 차이에 주목해 저자는 경영학에서 다루는 ‘파괴적’ 혁신이라는 용어를 차용하고 있다.


걸프전에서 가장 먼저 투입된 항공기는 미 공군의 F-117A 나이트호크 스텔스 전투기다. 이라크의 방공시스템과 지휘통제 기능을 무력화하기 위해선 이라크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 과업을 수행하는 데는 스텔스 기능이 있는 F-117A가 적격이었다. 스텔스 전투기가 처음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네바다 넬리스 공군기지를 비행 중인 F-117A 스텔스 전투기. 출처=위키피디아
걸프전에서 가장 먼저 투입된 항공기는 미 공군의 F-117A 나이트호크 스텔스 전투기다. 이라크의 방공시스템과 지휘통제 기능을 무력화하기 위해선 이라크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 과업을 수행하는 데는 스텔스 기능이 있는 F-117A가 적격이었다. 스텔스 전투기가 처음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네바다 넬리스 공군기지를 비행 중인 F-117A 스텔스 전투기. 출처=위키피디아



이러한 파괴적 혁신사례의 역사적 분석을 통해 어떤 요인이 이를 가능하게 했는지 살펴보는 게 이 책에서 다루는 두 번째 주제다. 전쟁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런 사례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중요한 점은 혁신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하는 것이다. 혁신적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그러한 과학기술을 전력화하기 위해선 창의적 개인과 제도적 노력이 결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가 강조하는 첫 번째 요소는 혁신을 주도할 비전(guiding vision)이다. “우리 군에 부과된 주요한 작전적 도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작전적 도전은 군대가 작전적 차원에서 갖는 문제의식이다. 문제의식이 분명해야 올바른 해결방안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크레피네비치의 생각이다. 이러한 비전이 구체적일수록 올바른 생각이 가능하고, 조직적 변화에 필요한 지지도 결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지도자의 임기가 어느 정도 보장돼야 한다. 성공사례를 보면 혁신을 주도한 인물들은 적어도 6년 이상 의사결정자의 자리를 지켰다.

혁신은 많은 제도적 장애를 극복해야 하므로 짧은 임기로 추진하기 어렵다. 혁신의 추종자와 동조자를 양성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1986년 이후 2001년까지 6명의 미 공군참모총장 모두 공군의 혁신을 이끌었던 크리치 장군의 절친이거나 참모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핵심 추동요인으로 작용한다. 기술적 발전이 무기체계 발전을 추동하기도 하지만, 작전적 필요에 의해 기술이 개발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혁신적 무기나 개념을 처음 도입하는 게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전차나 항모를 먼저 개발하고 전력화한 것은 영국이지만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곳은 독일군과 미 해군이었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에 후발국이 유리할 수 있다. 너무 늦지 않는다면 비전과 개념을 잘 세우고 전력 개발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새로운 작전개념이다. 미 해군에서 항모전단을 건설할 때 중요한 문제는 항모에서 발진한 항공기와의 교신 능력, 적기 공격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다였다. 독일의 전차군단은 무선 통신장치와 기동을 강조하는 전차, 항공기술의 발달로 전격전의 신화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작전개념이 달라지면 효과측정(MOE)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피셔에게 중요한 것은 화력이 아니라 속도였다. 독일 전차군단은 지휘통신체계, 미 공군이 추구한 목표는 은닉성과 정확도였다. 이런 게 MOE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많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다. 파괴적 혁신을 추구한 군대는 적은 양으로 결정적 효과를 거뒀다. 독일군에서 기계화된 부대는 12%에 불과했다. 미드웨이 해전 당시 미 해군 함정 352척 중 항모는 단 7척이었다. 걸프전(1991년)에 투입된 스텔스 전투기는 2.5%였고, 유도폭탄은 투하된 폭탄의 10%도 되지 않았다.

새로운 개념에 부합하는 전력을 개발하는 데 투기에 가까운 투자(wildcatting)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배적인 작전개념이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생각이 밀고 들어가기 어렵다. 일정 분량의 예산을 혁신적 시도를 위해 배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혁신을 주도한 무기나 개념이 만능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혁신은 늘 불완전한 것이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고 강조한다. 창과 방패의 싸움과 마찬가지다. 날카로운 창이 만들어지면, 이를 막을 수 있는 방패 개발도 요구되기 마련이다.

새로운 환경과 이에 부합하는 작전개념 전망을 갖고 군사력을 증진시키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첨단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황과 위협에 부합하는 작전개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군의 상황을 고려해 집필된 책이지만, 우리 군의 사정에 비춰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 것 같다. 군사혁신에 관심 있는 이라면 꼭 살펴봐야 할 명저다.

 

필자 최영진은 국방전문가로 전쟁사, 전략론, 정신전력, 병력구조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필자 최영진은 국방전문가로 전쟁사, 전략론, 정신전력, 병력구조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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