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맥 먹고 술게임...K며드는 세계인

입력 2025. 01. 08   15:36
업데이트 2025. 01. 0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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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에서 만나는 2025 트렌드 - 그라데이션 K 

전통문화 호기심 넘어 지극히 일상적인 K 인기
한류 더 다양한 분야 국가로 자연스럽게 번져
등산 템플스테이 인기에 장기체류 비자 신설
외국인 인구 늘며 타깃서비스 등 국내서도 변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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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TEU.”

대체 무슨 언어인가 싶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파트’를 외국인들이 발음한 것이다. 원래 영단어 ‘아파트먼트(apartment)’에서 유래했으나 일종의 고유명사가 돼 버린 아파트가 전 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부른 곡 ‘아파트’ 때문이다. 음원 발매 7일 만에 세계 최대 음원사이트인 스포티파이에서 스트리밍 횟수 1억 이상을, 뮤직비디오의 경우 단 5일 만에 1억 뷰를 넘겼다고 한다. 덕분에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주거문화까지 새롭게 조명받게 됐다.

아파트의 급부상은 요즘 ‘K’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여전히 ‘K’ 하면 대중매체에서는 김치, 불고기, 한복 등 전통문화를 내세우지만 사실 글로벌 시장을 휩쓸고 있는 ‘한국적인’ 것은 전통문화를 훨씬 넘어선다. 내국인으로선 ‘이런 것까지?’라는 말이 나올 만큼 아파트·라면·치맥·술게임 등 지극히 일상적인 한국의 모습이 ‘K’로 통한다. 다시 말해 K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지고 있다. 색깔이 명확히 나뉘지 않고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그라데이션(gradation)’이라고 부른다. 이제 ‘K’ 역시 여러 단계 색이 펼쳐지는 그라데이션으로 이해해야 할 때다.

먼저 주목받는 것은 대한민국 바깥에서 벌어지는 그라데이션이다. K가 위세를 떨치면서 ‘한국산’ 자체가 브랜드로 작용한다. 이는 수출을 꾀하는 국내 기업에는 호재다. 예를 들어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외국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치킨’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구에서 들여온 메뉴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고등학교에선 ‘가장 맛보고 싶은 K푸드’를 투표한 결과 ‘치킨’이 선정돼 일일 급식행사로 한국식 치킨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K푸드, K방산, K콘텐츠 외에 K수출의 영역 또한 넓어지고 있다. 한국문학의 위상이 높아진 것도 확실한 변화다. 국내 첫 노벨문학상이 탄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최근 부커상 최종 후보에 소설가 황석영의 작품이 올랐고, 중국의 공상과학(SF) 문학상인 중국성운상에서 소설가 김초엽의 작품이 수상하기도 했다. 언어의 한계로 한국문학이 전 세계인의 인정을 받긴 어려울 것이라던 평가가 불과 몇 년 전인데, 빠르게 판도가 바뀌었다.

 

 

서울 경복궁에서 대만 관광객들이 눈을 던지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경복궁에서 대만 관광객들이 눈을 던지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로 나타나는 그라데이션 K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변화다. 과거에는 한복을 입고 예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서울 북촌이나 강남스타일로 유명해진 강남 일대가 주요 관광지였다면, 최근엔 SNS로 접하는 한국인의 일상이 곧 관광코스다. 가령 등산도 인기가 높다. 초고층 빌딩과 험준한 바위산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것이 서울의 매력으로 통하면서 도심 관광과 등산을 연계하는 코스도 만들어졌다. 북한산·북악산·관악산에 위치한 ‘서울 도심 등산관광센터’에서는 관광객이 쉽게 산을 찾을 수 있도록 등산용품 대여는 물론 짐보관 서비스와 탈의실도 운영한다. 이 밖에 등산과 국궁 체험, 템플스테이를 연계하는 관광코스도 제안한다.

여성 관광객 사이에선 ‘뷰티코스 체험’이 필수 코스로 꼽힌다. 한 해외 인플루언서가 ‘서울 뷰티여정’이란 이름으로 3박4일 코스를 제안해 많이 공유됐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퍼스널 컬러 진단, 두피클리닉, 헤어숍, 피부과, 경락마사지 등 국내 소비자도 많이 찾는 곳이다.

이러한 미용 서비스는 적게는 수십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지만 관광객들은 기꺼이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부산대 '서머 스쿨'에 참가한 9개국 37명의 해외 대학생들이 K팝 댄스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부산대 '서머 스쿨'에 참가한 9개국 37명의 해외 대학생들이 K팝 댄스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살펴볼 그라데이션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변화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심각한 저출생 상황에서 2023년 대한민국 총인구는 증가했다. 3개월 이상 상주하는 외국인이 늘어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충북 음성군과 전남 영암군으로, 16.1%로 집계됐다. 뒤이어 경기 안산시와 포천시가 12~13%대로 10명 중 1명 이상이 외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상 풍경도 바뀌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 많아지면서 대학가 일대엔 외국어 메뉴판·안내문이 필수가 됐고, 지역 주민센터 민원실에는 최신 인공지능(AI)을 도입했다. 외국인 거주민이 주민센터에서 업무를 보려 할 때 국적과 언어가 너무 다양헤 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챗GPT의 도입으로 베트남어, 캄보디아어 등 대부분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게 가능해졌다. 또한 외국인이 국내에 체류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비자였는데, 지난해에는 원격근무자들이 국내에서 관광을 즐기면서 장기체류할 수 있도록 ‘워케이션(Work+vacation) 비자’를 신설하기도 했다.

시장도 생겨난다. 국내 거주 외국인 소비자를 타기팅하는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다.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돕는 ‘글로우’라는 플랫폼은 비자 발급, 보험, 송금, 휴대전화 가입 등 여러 업무를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이끈다. 해당 플랫폼은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TIPS’에도 선정됐다. 국내 채용 플랫폼들은 외국인 전용 채용 서비스를 출시했다. 사람인은 ‘코메이트’를, 잡코리아는 ‘클릭’이라는 서비스를 만들어 빠르게 증가하는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다인종·다문화국가’는 총인구에서 이주 배경 인구가 5% 이상인 경우를 지칭한다. 2024년 기준 한국에 장기체류하는 외국인 및 이주 배경 인구는 246만 명에 달하며 대한민국 인구의 4.8%에 이른다. 2025년이 지나면 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구성의 변화는 조용하지만 확실한 파장을 낳는다. 최근 다문화 배경 학생 비율이 높은 경기도 일부 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도 여러 언어로 만든다고 한다. 회사 임직원에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구내식당에서 할랄 인증 식단을 제공하는 기업도 늘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글로벌 대기업 현대자동차는 올 1월 최고경영자(CEO)에 스페인 국적의 호세 무뇨스 사장이 올랐다. 이미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우리도 준비해야 할 때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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