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

입력 2025. 01. 03   17:21
업데이트 2025. 01. 0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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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제 상병 공군군악의장대대
송민제 상병 공군군악의장대대



오랜 기간 준비한 공연이 마무리됐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경험 덕에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벨기에에서 통역 및 브뤼셀 교민 연주 관련 프랑스어 MC를 담당하게 됐다. 

브뤼셀에 오니 플랑드르 양식 건물이 우릴 반긴다. 마치 체스 말을 올려놓은 것 같은 지붕과 계단형 지붕, 예스러운 대문이 방문객을 150년 전으로 안내한다. 긴 비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았더라도 오래된 건물 벽돌이 방문객 가슴에 생긴 균열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우리는 귀에 엉겨 붙은 가을바람을, 햇살 한 줌을, 브뤼셀에서 울리는 한국의 멋을, 갈맷빛과 아마빛으로 일렁이는 나뭇잎을 다시 그리워할 것이다. 우리는 브뤼셀의 싱그러움에 태극을 덧칠했다.

벨기에 국제 군악제에 참가하기 위해 방문한 오스텐더는 황량하다. 거친 암석이나 멋들어진 절벽 없이 공허한 바닷가가 눈에 들어온다. 모래사장에는 갈매기와 사모예드가 당차게 찍어놓은 발 도장과 많은 조개껍데기가 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한국 팀 공연은 다른 나라와 수준이 달랐다. 복잡하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대형과 아름다운 무용의 선, 무용수들의 의상, 판소리 음색과 서양 악기와의 조합이 세련된 질감을 만들어냈다. 먼 나라인 한국의 무대는 다소 냉담하고 아리송한 반응으로 시작했다. 한국의 색과 소리에 크게 매혹돼 네 가지 구성이 차례로 끝날 때마다 놀라움과 환호성으로 공연자들에게 힘을 안겨줬다.

한 여성은 첫째 날 공연이 인상 깊고 감동적이었다며 둘째 날 한국어가 적힌 옷을 입고 선물을 주기 위해 장장 5시간 기차를 타고 인사하러 오기도 했다. 주최 측을 통해 가수들의 이름과 다른 공연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문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공연 이후 고요한 오스텐더의 풍경은 삼삼한 위로가 된다. 첫인상의 허전함은 이제 편안하게 느껴진다. 마음속 욕심을 내려놓자 시가 풍경도 달라진다. 모든 거리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찾아들 공간이 있다. 다시 찾은 폭신한 모래사장에 우리 노고가 한 걸음마다 푹푹 빠진다. 바닷바람에 익숙한 냄새가 실려 와 코끝에 맴돈다.

이번 공연은 단순히 신나고 멋진 무대를 올린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유럽인이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한국 전통의 리듬과 선율을 연주해 한국인의 재치, 총명함과 단합력을 보여줬다. 한국 드라마·영화 열풍과 함께 한국어를 구사하거나, 동양인에게 먼저 한국인인지 묻는 등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나날이 높아지는 한국 위상에 걸맞게 앞으로도 대한민국 군악대는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지니고, 품격 있는 모습으로 전 세계에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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