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영에서 출발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제로베이스 예산(Zero-Based Budgeting)은 미국의 피터 파이흐에 의해 창안됐다. 1970년 파이흐가 민간회사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회계 관리자로 근무하면서 회사 재정 효율화를 위해 도입, 효과를 본 것이 그 시초다.
이를 1973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조지아주 주지사를 지낼 때 주정부 예산 편성에 적용했다. 1977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연방정부 예산 편성에 도입했다. 이는 과거 예산 운영 방식의 병폐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왔다.
각 부처는 기존 예산을 당연히 확보된 것으로 생각하고 여기에다 새로운 경상예산을 덧붙이는 데 신경을 쓴다. 이러다 보니 정부 예산은 절대 줄어들지 않고 날로 늘어날 뿐이었다. 그러나 제로베이스를 적용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완전히 무(無)에서부터 다시 예산을 짜면 기존 예산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제로베이스는 예산을 절감하는 혁신적인 방안으로 평가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1981년 마련돼 1982년 예산부터 부분적으로 제로베이스가 도입됐다. 그해 예산에서 부처 간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정부간행물을 통합하고, 공무원 출장을 억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660억 원을 줄일 수 있었다.
한편 군인복무규율의 법적 미비를 보완해 2015년 군인복무기본법이 제정된 지 꼭 10년이 됐다. 제정 당시 “군 내 기본권 침해가 근절되지 못하고 있어 군의 사기 및 전투력 저하와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한 것에 대해 제로베이스에서 우리 군 현실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군 인권업무 훈령과 인권업무 규정에 명시된 ‘인권영향평가’에 주목한다. 인권영향평가의 주요 기능인 장병 인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법령·제도 등이 인권침해, 차별행위 등의 요소가 있는지 평가해 인권 친화적 육군 문화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물론 법규상 인권영향평가는 행정규칙 제·개정 및 폐지, 제도·정책 평가 등에 대한 인권 적합성을 심사하는 것으로, 대체로 규정심사와 법령정비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육군 규정에 반영된 ‘인권영향평가 자체점검포인트’를 개인으로 확대해 적극 활용한다면 부서장·지휘관을 포함한 모든 장병과 군무원이 자신의 행동을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인권영향평가 자체점검포인트의 장병 및 군무원 인권과의 관련성 판단 요소는 군인복무기본법 관련 인권과 그 밖의 인권으로 나뉜다. 먼저 군인복무기본법 관련 인권은 평등권, 근무시간 보장,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과 자유, 종교의 자유, 의료권, 휴가권, 휴식권으로 구성된다. 그 밖의 인권은 개인정보 수집·이용, 표현의 자유, 병영생활과의 관련성 등이 있다.
2007년 제로베이스 금융규제개혁을 끝으로 이제 예산 분야에서는 제로베이스라는 단어의 쓰임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이미 적자예산에서 흑자예산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2025년 올 한 해 적자인권이 아닌 흑자인권의 원년이 되도록 전 장병이 제로베이스에서 스스로 인권영향평가를 해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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