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뒤흔드는 줄다리기…우크라이나·미국, 러시아 비밀정보 공유하며 윈윈

입력 2025. 01. 03   17:14
업데이트 2025. 01. 0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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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우크라이나의 그림자전쟁

우크라 vs 러시아
러 군사력 우세에도 3년째 일진일퇴
정보기관 활약 덕분

미→우크라
첨단 감청장비 지원 러군 위성정보 제공
CIA, 합동 공작 수행

우크라→미
인종·언어 유사하고 풍부한 휴민트 내세워
방첩활동 가치입증


지난달 17일 러시아군의 화생방 사령관 이고르 키릴로프 중장이 모스크바에서 폭발 사고로 사망했다. 아파트 건물을 나서는 순간 근처에 있던 전기스쿠터에 설치된 폭발물이 원격으로 격발됐는데, AFP와 로이터 통신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SBU(보안국)의 특수작전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SBU는 금지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며 키릴로프 중장을 비난했고, 미국과 영국도 이를 인정하여 제재 명단에 올렸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핵심 역할을 한 러시아군 고위 간부들이 각종 사고로 사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6일에는 러시아 점령지의 포로수용소장이 차량 폭발로 숨졌고, 12일에는 미사일 개발 전문가 미하일 샤츠키가 총에 맞아 사망했으며, 앞서 11월에는 해군 미사일부대 사령관 발레스 트란콥스키가 차량 폭발로 사망했다. 지난해 9월에는 드론 인력 양성 업무를 맡았던 알렉세이 콜로메이체프 대령이 살해됐고, 국영방송 러시아1의 전쟁 특파원 알렉산드르 코로보프는 두개골이 부서져 숨진 채 발견됐다. 정보기관의 요인 암살은 적의 핵심인물을 제거해 정보목표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공포심을 조장하는 심리전에 활용된다. 평시에는 비난 여론을 의식해 쉽게 실행하지 못하지만, 전시에는 적극 활용될 수 있는 수단이다.


정보기관 쇄신 및 CIA와 협력 강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을 때는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의 승리로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3년이 다 되도록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잘 버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나라를 지키겠다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굳은 의지와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도력, 서방의 무기 지원도 큰 몫을 했겠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을 수행하는 정보기관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고 한다. 지난해 2월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와 미국의 정보 당국자들을 심층 취재한 결과, 우크라이나 방어력의 핵심은 양국 정보기관의 성공적 정보 협력이라면서 그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국내 정보기관인 SBU와 군 정보기관인 HUR 등이 CIA 등 미국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군의 통신을 감청해 작전계획을 알아내고, 러시아 점령지역 내 스파이망 운용으로 암살과 사보타지(파괴) 공작을 수행하며, 위성정보를 통해 러시아군의 이동 상황을 파악하는 등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협력은 전쟁 8년 전인 2014년 2월 시민 혁명으로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는 위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정보 지원을 요청했고 당시 CIA 국장이던 존 브레넌은 키이우를 방문, 정보기관 내부의 친러 인물 축출과 러시아 관련 유가치 정보 제공을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SBU는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1991년 이후 출생자만으로 준 군사 조직인 ‘제5국’을 설립했으며, 그해 7월 ‘제5국’은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공중폭발했을 때 몇 시간 만에 통신감청 첩보를 바탕으로 러시아가 지원하는 분리주의자들의 미사일에 피격됐음을 알아냈다. 또한 2015년에는 군사정보기관 HUR이 러시아 북극함대와 핵 잠수함 설계도 등 핵심 정보들을 CIA에 제공하면서 신뢰를 확보했다. CIA가 외국 정보기관과 합동 공작을 수행할 정도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는 보통 수년이 걸리지만, 우크라이나는 파격적인 정보 제공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하고, 강력한 협력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신뢰를 구축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2022년 2월 전쟁 발발 직전 모든 미국인이 철수할 때도 CIA 요원들은 그대로 남아 구체적인 정보를 지속 지원함으로써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초기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암살계획을 미리 알려줘 위기를 모면하도록 돕기도 했다고 한다.


오퍼레이션 골드피시

CIA는 전쟁 개시 6년 전인 2016년부터 러시아의 통신을 감청할 수 있는 첨단 장비들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유럽 내 두 개 도시에서 골드피시 공작(Operation Goldfish)으로 명명된 우크라이나 정보요원 교육 프로그램을 운용했다고 한다. 골드피시 수료자들은 러시아와의 국경 인근에 CIA의 지원으로 새로 설치된 12개 기지에 배치돼 러시아 내부에 스파이망을 구축, 첩보를 수집할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영토에 잠복 공작원을 양성해 두고 러시아에 점령당할 경우 적 후방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도 했다. 또한 CIA가 훈련시킨 특수부대인 2245부대는 러시아의 드론과 통신장비를 입수해 CIA가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을 통해 러시아의 암호를 풀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관련 정보 입수를 최우선으로 하던 CIA는 우크라이나의 도움으로 러시아 정보기관 컴퓨터망에 침투해 관련 정보를 찾아냈고, 여러 나라 선거에 개입한 ‘팬시베어’라는 해킹그룹이 러시아 정부와 연계되었다는 정보를 확보한 것도 우크라이나 HUR의 러시아군사정보기관 대상 기만 공작의 성과였다. 우크라이나 정보요원들이 러시아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인종과 언어의 유사성뿐 아니라 과거 소련 KGB의 경험을 통해 러시아 방첩활동의 이해도가 높고, 러시아 내에 활용이 가능한 자국민 인적 자원(HUMINT)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역량 갖춰야 정보협력 가능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정보협력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성공적 사례지만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일방적 필요만으로는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없다. 스스로 가치 있는 협력자로 인정받아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미국에 제공하는 러시아 관련 정보가 가치 있다고 여겨졌을 때 비로소 미국과 정보 협력이 가능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편 철저한 감시로 러시아 내 활동이 어려운 CIA로서는 우크라이나의 지원이 절실했을 것이다. “러시아인 입장에서 미국인을 만나 정보를 주는 것은 반역죄에 해당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과는 맥주 한잔 마시며 나누는 얘기일 뿐”이라는 HUR 수장 콘드라티욱 장군의 말은 정보협력의 필요성을 대변해 준다. 또한 우호적인 관계에서도 결정적 이익이 상충하는 지점이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체적인 정보력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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