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무기의 세계
구형 헬기에 대체당하는 신형 헬기 ‘NH-90’
나토 벨 UH-1 대체 위해 개발 시작
기동·대잠 헬기 최초 저피탐 기술 적용
레이저 경고 수신기 등 첨단 장비 탑재
잇따른 일정 지연으로 비용 급상승
대당 가격 블랙호크보다 두 배 이상
사고도 잇따라…호주 등 운용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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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도 블랙호크’로 시작된 프로젝트
‘1990년대 북대서양조약기구 표준 헬리콥터(NATO Helicopter 90)’란 이름으로 시작된 NH-90의 개발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83 나토산업자문그룹(NATO Industrial Advisory Group) SG14의 초기 연구부터 시작됐다.
나토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벨(Bell) UH-1을 대체하기 위한 미국 시코르스키(Sikorsky)의 UH-60 블랙호크가 1974년 첫 비행 후 1979년부터 미국을 비롯한 나토 몇 개국에 판매됐으나 항공우주산업을 보유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1985년부터 새로운 나토 표준 헬기 제작이 결정됐다. 다만 처음 약속과는 달리 사업 진행 방향과 국가 간 일감 배분 문제, 영국의 사업 탈퇴 등으로 장기간 개발이 지연됐다.
1994년 5월부터 7월까지 비용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이 잠시 멈췄다. 가격 협상 문제로 실제 생산 계약도 1999년에서 2000년으로 1년 지연됐다. 결국 1990년대 헬리콥터였던 NH-90은 첫 번째 비행만 1996년 시행하고, 2004년 5월 양산이 시작된 ‘지각 프로젝트’가 됐다. 양산될 때는 이미 UH-60이 1000여 대 훌쩍 넘는 수량이 생산된 이후였다.
다양한 첨단 기능
NH-90은 경쟁 기종인 블랙호크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성능으로 완성된 것은 사실이다. NH-90은 블랙호크보다 케빈의 높이와 길이가 더 클 뿐 아니라 육군 버전인 NH-90 TTH(Tactical Transport Helicopter)의 경우 20명의 무장 병력 혹은 2.5톤의 보급품을 실을 수 있다. 외부에 장착한 화물을 옮기는 슬링으로 4톤의 화물을 탑재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기동헬기와 대잠헬기 사상 최초로 저피탐(Low Observability) 기술이 적용됐다. 제작사는 이에 대해 완전해지지는 않지만 소음, 적외선(IR) 신호, 레이다 반사 면적(RCS)을 경쟁 기종보다 낮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헬기 비행 조종에 플라이바이와이어(Fly-By-Wire)가 사용돼 기존 헬기보다 반응성이 빠르고 조종사가 초저공비행(NOE)을 더 쉽게 수행할 수 있다.
동체 전체는 알루미늄, 두랄루민이 아니라 탄소 복합섬유와 유리섬유로 이뤄져 있다. 승무원과 승객 좌석은 초속 11m의 수직 하강 충돌에도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모든 주요 시스템은 완전히 이중으로 돼 있어 엔진을 비롯한 주요 기관이 하나가 고장 나도 나머지 활동을 수행하고, 결빙 방지 공기 흡입구를 갖췄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도 충실하다. 처음부터 적 위협을 탐지하기 위한 레이저 경고 수신기(MWR), 미사일 발사 탐지 시스템(LFK AN/AAR-60 MILDS), 그리고 탈레스(Thales)사의 자체 전자전 시스템(EWS)을 갖춰 적이 헬기를 향해 미사일로 공격하면 채프(Chaff)와 플레어(Flare)가 자동으로 발사된다.
고장 감지 기능은 물론 영하 40도에서 영상 50도까지의 작전을 보장하며, 임무 신뢰성은 97.5%, 30년 동안 1만 시간의 비행 수명을 보장한다. 평균 무고장 시간(Mean Time Between Failures)은 4시간 이상을 설정했다. 처음부터 다목적 임무를 염두에 두고 개발된 점도 특별하다. 육군 버전인 NH-90 TTH(Tactical Transport Helicopter)는 전술 수송 및 수색구조 임무에 맞춰져 있다. 해군 버전인 NH-90 NFH(NATO Frigate Helicopter)에는 하부 탐색 레이다 및 디핑소나(Dipping sonar)와 소노부이(Sonobuoy) 장착 공간, 그리고 어뢰 탑재 무장 장착대를 갖췄다.
결정적 문제는 가격이다. 1988년 기준 NH-90의 총개발비 9억6000만 유로는 현재 가치로 30억 유로(약 4조5000억 원) 이상에 달한다. 호주 육군과 해군이 도입한 NH-90의 계열형인 MRH-90 타이판(Taipan)은 대당 가격이 블랙호크보다 두 배 이상 비싼 6500만 호주달러(약 589억 원)로 수출 경쟁력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계속된 문제 발생
가격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NH-90은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각지에서 말썽이 발생하고, 운용유지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호주 육군은 2021년 5월부터 부품 수급 및 안전 검증 미비를 핑계로 MRH-90(호주군 버전 NH-90) 비행을 금지하고, 2037년까지 운용할 예정이었던 MRH-90을 2024년까지만 운용하고 조기 퇴역시키기로 했다. 게다가 2023년 7월 호주군이 탈리스만 세이버 작전 중 1대의 MRH-90이 추락사고를 일으켜 4명의 승무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2024년 퇴역도 1년 앞당겨져 2023년 9월 즉각 퇴역이 시작됐다.
그 뒤 호주 정부는 2024년 1월부터 MRH-90의 퇴역이 이뤄져 ‘폐기’로 진행될 것이라 밝혔고, 실제 완전히 분해돼 땅에 묻히는 MRH-90헬기 잔해들이 공개됐다. 한때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군이 퇴역하는 MRH-90헬기를 인수하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이 역시 비용과 효율성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 호주군이 구매한 47대의 헬기 중 오직 한 대만 제작사인 NH인더스트리스에 반환됐다. 호주 정부 외에 스웨덴과 스페인 등 여러 국가가 NH-90의 지속적인 운용을 포기하거나 포기를 준비 중이다. 많은 나라가 NH-90을 대체하기 위해 미국 UH-60 블랙호크 헬기를 도입하거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최신 무기라고 무조건 좋을 수 없는 이유
무기라는 것이 대부분 최신 기술의 집약체다. 현대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이전 세대 무기보다 현세대 무기가 몇 배로 강력하거나 효율적이기 때문에 무기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NH-90 사례에서 보듯 아무리 최신 기술이 적용돼 우수한 성능과 효율성을 지닌 무기도 개발 사업관리의 실패에 의한 일정 지연, 단가 상승, 무엇보다 이전 세대 무기와 확고한 차별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기존 무기에 밀려 먼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기존 전 세대 무기라 하더라도 21세기 들어 유행하는 에비오닉스(Avionics) 기술 발전과 지속 업그레이드, 신형 고효율 엔진과 같은 주요 요소는 기존 헬기도 업그레이드를 통해 차세대 무기와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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