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사람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전쟁의 ‘야누스적’ 두 얼굴? 파괴, 창조, 그리고 예술
전쟁과 깊이 관련된 세계적 유산 많아
문명 파괴 동시에 발전 촉매제 역할도
참상과 고통 경험 예술적 영감에 영향
정복 과정서 서로 다른 문화 교류·융합
새로운 경향의 사조나 양식 등장 계기
2025년부터 매주 목요일 전쟁 또는 전쟁과 연관돼 탄생한 동서양에 널리 퍼져 있는 세계적 수준의 문화유산을 엄선해 고찰하는 연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장병들이 전쟁역사와 문화예술사라는 두 분야를 접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장차 인류 역사에서 ‘전쟁의 해’로 기억되고 싶은지 요즘도 하루가 멀다고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장으로부터 전쟁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국제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도덕이나 정의가 아니라 힘”이라는 현실주의자의 주장만 진리인 양 인식될 기세다. 공간상 멀리 있는 덕분에 우리에게 직접적 피해는 없으나 이러한 지구촌의 연이은 사태는 결코 ‘강 건너 불구경’처럼 안이하게 관망할 상황이 아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는 자칫하면 실제로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불안정성을 항시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초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한민국의 안보 상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 기원에 시차는 존재하나 우리 조상들은 수렵인 시절 이래 쉼 없이 서로 생존투쟁을 해 왔다. 문명 발달로 인간의 삶이 도시를 중심으로 영위되면서는 충돌 규모와 파괴 정도가 더욱 커졌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상투적 표현이 여전히 유행하고 있듯, 인류 역사에서 문명이 출현한 이후 전쟁은 결코 그 존재감을 숨긴 적이 없었다. 전쟁이 끝난 평화의 시기는 사실상 곧 다시 터질지 모르는 또 다른 무력 대결의 준비기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惡)한 것인지’ 자유민주주의가 꽃피고 인권 중시 사상이 크게 향상된 21세기 오늘날에도 전쟁은 여전히 그 불가사의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의 역사와 이의 부산물인 문명은 전쟁과 평화가 엎치락뒤치락하며 교직(交織)해서 잉태한 ‘일란성 쌍둥이’란 평가가 적절한 듯하다.
사실상 흡사 동전의 양면처럼, 전쟁과 평화는 서로 뒤엉켜 있어 그 경계를 구분 짓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어느 현자(賢者)는 “전쟁과 평화는 같은 어머니를 가졌다”고 외쳤는지도 모르겠다. 본질상 전쟁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 충족과 이익 실현의 수단이기에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성향을 띤다. 동시에 전쟁은 “역사상 문명의 발흥과 몰락에서 산파인 동시에 장의사 역할도 해 왔다”는 표현처럼 문명 발전을 촉발 및 증진하는 촉매제 역할도 했다.
문명 건설자 또는 사회발전의 견인차라는 전쟁의 ‘예기치 않은’ 기여는 과학기술과 같은 실용적 측면에 주목할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실제로 문명과 이의 실현 요소인 과학기술은 전쟁 승리를 갈구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진전됐음을 역사 속 사례들은 말해 준다.
전쟁과 깊은 관련을 지닌 또 다른 분야는 바로 문화의 산물인 예술이다. 인류는 문명 발전을 이룩하며 삶을 영위해 왔다. 인간 집단이 함께 생활하는 와중에 문화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예술이라는 정신적 행위가 아울러 꽃을 피웠다. 그 과정에서 특히 전쟁은 문화유산의 탄생과 파괴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
전쟁은 종종 문명 발전의 동인(動因)으로 작용했지만, 동시에 많은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소멸시킨 주범으로도 지목된다. 전쟁의 영향을 받은 문화유산은 당연히 당대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쟁 및 문화유산 출현의 이면에는 인간, 즉 사람이 있다. 전쟁도 인간이 수행하는 일이고 새로운 문화유산을 창출하는 일도 바로 인간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와 관련, 직접적으로는 유물 건축물 등 해당 문화재를 제작한 예술가(장인, 화가, 또는 건축가 등)가, 간접적으로는 이를 추동한 유력자(정치권력자 또는 승리한 장군 등)나 물질적 후원자가 존재한다. 관련 행위자(actors)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실행자인 예술가일 것이다. 예술가들이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통해 영감을 받은 역사적 사례는 많다. 그 때문인지 특히 미술 분야는 전후(戰後) 새로운 사조 작품이 다수 선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내전(1936~1939) 중 벌어진 게르니카 폭격사건을 모티브로 전쟁의 비극적 현실을 입체파 형식으로 표현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를 꼽을 수 있다. 심지어 전쟁 포스터 및 르포 사진도 전쟁 중 사람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쟁은 간혹 기존 문화적 경향의 국제화와 직결되기도 했다. 전쟁과 정복을 통해 새로운 왕국과 제국이 등장하고, 그 과정에서 문화적 교류나 융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고대 제국은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필시 다른 민족과 문화를 접하게 됐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소아시아 정복으로 그가 점령한 땅에 그리스 문화가 소개되며 철학, 예술, 건축 등에서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출현했다. 그 영향을 인도 북부에서 출현한 간다라 미술품이나 조각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전쟁은 로마제국의 콜로세움이나 트라야누스 황제 원주(圓柱)처럼 거대 건축물이나 승전 기념비와 같은 문화재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을 통해 새로운 경향의 예술 사조나 창의적 문화유산이 나타나는 것일까? 전쟁, 특히 서로 대면해 다투는 전투는 인간 본성의 막장까지 이르는 행위이기에 그 수행 과정에서 새로운 경향의 예술작품, 예술사조가 배태된다. 즉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인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치르는 대결이 바로 전쟁이기에 양측은 서로 이기기 위해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묘책을 고안해 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쟁은 문화유산의 파괴와 창조를 동시에 가져다주는 ‘야누스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
|
전쟁의 이러한 양면적 속성은 가히 ‘전쟁의 세기’라고 단정할 수 있는 20세기 전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상 20세기는 무려 1000만 명의 전사자를 초래한 제1차 세계대전이나 이보다 몇 곱절 많은 생명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 외에 무수한 국지전, 내전, 게릴라전 및 테러 등이 유행한 절망과 야만의 시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자유, 인권, 그리고 생활여건 등이 크게 향상돼 세계 인구가 3배 이상 증가하고, 물질적 풍요와 긴 평화 속에서 항구적 평화 수립에 대한 열망과 노력이 한껏 고조된 희망의 세기기도 했다.
단적으로 역사를 통해 인류는 반복적으로 ‘자기 파괴’를 자행하고 동시에 ‘자기 재생’을 시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시리즈는 역사상 전쟁 중 또는 전후에 당대인이 남긴 중요한 문화유산의 탄생(간혹 소멸) 과정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파괴자로만 알려진 전쟁이 간혹 창조자이기도 했음을, 즉 군신(軍神)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자 한다. 시간상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공간상으로 주로 서양세계에 초점을 두겠지만 기본적으로 세계의 이름난 문화유산을 포괄해 격주별로 소개할 것이다. 장병 여러분의 성원을 바란다.
해당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