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옥씨부인전’ 조선의 신분제 & 현대의 계급제
조선시대 최하위 여성 노비
신분 위조해 양반의 삶 사는 모습
‘욕망인가’ 혹은 ‘생존인가’…
신분제 사라졌지만
부와 권력 독점·불평등 여전한 지금
‘어떤 사회 만들 것인가’ 숙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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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노비가 양반가의 아씨로 살아간다면? 단 한 문장으로 호기심을 유발하는 JTBC 토·일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조선시대라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피라미드 최하위에 속한 여성 노비가 신분을 위조해 양반 부인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해당 작품은 단순한 극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의 모순된 질서를 예리하게 해부한다. 더 나아가 현대까지 잔존하는 불평등의 단면을 포착해 사회구조의 복합성을 성찰하게 이끈다.
‘옥씨부인전’의 주인공 구덕이(임지연)는 생존의 벼랑 끝에서 신분의 경계를 넘는 인물이다. 노비로 태어난 그녀는 주인댁의 가혹한 학대를 견디며 살아남기 위해 온갖 기술을 익혔고, 우연히 양반가의 딸 옥태영으로 신분을 바꿀 기회를 맞는다. 이는 단순한 욕망의 발로가 아닌 조선이라는 억압적 신분제가 그녀에게 강요한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결단에 가깝다.
시청자는 구덕이에게 공감한다. 그녀가 맞닥뜨린 가혹한 현실과 새로운 삶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인간적 연민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탓이다. 그러나 공감이 깊고 짙어질수록 우리는 그녀의 선택이 지닌 복합적 의미와 마주한다. 구덕이가 택한 거짓 신분이란 생존 전략은 조선시대라는 억압적 신분제 아래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간주될 수 있을까? 그러한 선택이 현대사회의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돼야 하는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구덕이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비극적 생존기를 넘어 우리가 직면한 구조적 불평등과 윤리적 딜레마를 성찰하게 만든다. 그녀의 선택은 특정 시대적 조건이 만들어 낸 필연의 결과지만,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비슷한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 이야기는 시청자의 공감을 딛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구조적 모순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신분 위조는 현대사회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다. 학력 위조나 경력 위조처럼 신분을 속이는 사건은 빈번히 뉴스에 오르내린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일탈을 넘어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범죄로 치부된다. 이러한 행위는 종종 사회구조의 불평등과 기회 격차에서 기인한다.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라기보다 특정한 사회적 환경이 만든 구조적 결과로 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동기가 아무리 절박하더라도 신분 위조를 정당화할 순 없다. 선택의 배경을 이해한다는 것과 그 행위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콘텐츠에서도 신분 위조는 인간 욕망과 윤리의 경계를 탐구하는 주요 서사로 활용돼 왔다. 프랑스 판사 장 드 코라스가 기록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마르탱 게르의 귀환’에서부터 영화 ‘화차’,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 이르기까지 해당 주제는 시대를 초월해 다양한 배경에서 변주돼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어 왔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은 신분 위조를 단순한 범죄로 규정하기보다 그 선택을 부추긴 사회적 압박과 인간적 욕망의 복합적 면모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도덕적 한계를 넘어 구조적 문제를 성찰하며 윤리적 논의를 확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옥씨부인전’이 구덕이의 선택을 다루는 방식은 작품의 메시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시청자는 구덕이의 선택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공감할 수 있지만, 그 이해가 동의로 이어지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작품이 이러한 간극을 얼마나 세밀하게 탐구하느냐에 따라 신분 위조라는 행위가 시대적 필연으로서 공감을 얻을지, 아니면 윤리적 논란으로 남을지가 결정된다.
구덕이의 선택은 분명 조선이란 억압적 신분제 아래서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동시에 이는 개인의 도덕적 선택 문제와 사회구조적 억압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깊은 윤리적 고민을 요구한다. ‘옥씨부인전’은 이 선택이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 결과임을 설득력 있게 그려야 할 과제를 안고 출발한다.
드라마는 구덕이의 삶을 보여 주며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구덕이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렇게 ‘옥씨부인전’은 조선시대 신분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불평등의 구조를 날카롭게 환기한다.
‘옥씨부인전’이 돋보이는 이유는 조선시대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현대사회와의 연결점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구덕이의 선택은 신분제라는 구조적 억압에서 비롯된 필연적 산물이지만, 이 이야기는 과거의 문제를 단순히 반복하거나 재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사라진 오늘날에도 부와 권력을 독점한 소수와 사회적 장벽에 갇힌 다수의 불평등은 여전히 공존한다. 구덕이의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계급구조의 심층적 모순과 불평등의 흔적을 생생히 담아낸다.
드라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극단적 선택조차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 구덕이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반추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이 작품은 오늘날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며, 사회적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강력한 촉매로 작용한다. ‘옥씨부인전’은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공감과 성찰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도록 이끄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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