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in 국방일보 - 1974년 12월 3일 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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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경제성장사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성공사례에 속합니다. 6·25전쟁 이후 잿더미가 됐던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죠. 이처럼 전 세계에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하기까지는 국가의 수출 주도형 성장정책과 온 국민의 하나 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생사를 걸 만큼 절실했던 그 시절, 국민은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산업화에 힘썼습니다. 우리 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엄중한 안보 상황 속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뿐 아니라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도 앞장섰는데요.
1974년 12월 3일 자 국방일보 1면을 보면 물류 수송을 위한 산업도로를 건설한 군의 사례가 실려 눈길을 끕니다. 바로 육군5629부대 장병들의 도로 건설, 터널 개통 등 활약상을 실은 기사입니다.
기사를 살펴보면 “싸우며 건설하는 육군5629부대는 강원도 양구에서 인제, 홍천을 잇는 국가 주요 산업 접속도로를 건설하는 한편 ○○지점에 위치한 산을 뚫고 터널을 구축, 그 개통 마무리작업에 여념이 없다”며 “군에서 처음 시도되는 이 터널공사는 장비 및 기술적으로 많은 애로점이 뒤따랐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오직 이 도로와 터널을 개통해 조국 번영을 가져온다는 일념으로 작업에 임한 부대장 이하 전 장병은 스스로 난관을 극복, 자체의 힘과 기술만으로 개통의 개가를 올린 것”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해 3월 시작된 터널공사는 해발 455m에 위치한 험준한 산악을 뚫은 것인데요. 평소 산세가 험준한 데다 급커브길이 많아 교통사고가 빈번한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터널이 뚫리면서 한 시간에 가까운 이동시간이 단축되고, 안전사고를 방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공사를 추진한 부대장은 “터널공사 중 상단의 굴착 및 콘크리트 복공작업이 무척 힘들었다”며 “양쪽 산벽을 뚫어 나가기를 30여 일, 마침내 방향이 정확히 들어맞아 도갱이 엇갈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관통됐을 때의 그 기쁨을 잊을 수 없다”며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특히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아 부대의 군기·단결력을 입증했는데요. 공사 시작부터 반드시 중대장급이 입회하고, 작업 중에는 소대장급으로 임명한 안전장교와 안전부사관의 감독 아래 폭파신호·낙반신호 등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작업에 앞서 철저한 안전교육도 실시했고요.
이처럼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성장 뒤에는 우리 장병들의 값진 땀이 있었습니다. 경제부흥기에 철통같은 대비태세를 갖춘 가운데 조국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던 선배 전우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노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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