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처럼 어두워도 양갱처럼 달아도 BIBI

입력 2024. 12. 04   15:50
업데이트 2024. 12. 0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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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페르소나 - 가수와 배우, 자유자재로 오가는 비비 혹은 김형서

달디단 밤양갱~ 노래하는 소녀부터
‘킬빌’ 여주인공 같은 액션까지
자신의 뮤비마다 천연덕스럽게 연기
‘최악의 악’ ‘강남 비-사이드’
도발적 눈빛으로 누아르 분위기 물씬
‘열혈사제2’선 만화 같은 코믹 연기도
영역의 한계 가뿐하게 넘는 MZ 대세

 

‘강남 비-사이드’의 한 장면. 사진=디즈니+
‘강남 비-사이드’의 한 장면. 사진=디즈니+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비비가 부른 ‘밤양갱’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가사와 멜로디가 특징이다. 헤어지는 남자가 너는 바라는 게 너무 많다고 말하지만, 비비는 바라는 게 하나뿐이라며 그건 바로 ‘달디단 밤양갱’이라고 노래한다. 

‘밤양갱’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비비의 소녀 같은 모습이 블링블링하게 이어지는 뮤직비디오를 보면 아마도 달콤한 사랑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장기하가 쓴 곡이라 그런지 ‘말놀이’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소박한 곡은 공개 이후 신드롬을 일으켰다. 갖가지 버전의 ‘밤양갱’ 패러디 영상이 나왔고,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가사는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그 ‘밤양갱’ 뮤직비디오에서 이 곡을 부른 비비는 장기하(떠나가는 남자 역할)와 출연해 풋풋하지만 이별에 가슴 아파하는 소녀를 연기한다. 말맛이 살아 있는 노래도 그 맛을 딱 살려 부르는 실력이 엿보이지만, 동시에 천연덕스러운 연기 또한 자연스럽다.

그러고 보면 비비가 노래를 발표할 때마다 냈던 뮤직비디오는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가 그의 또 다른 영역이란 걸 보여 준 바 있다. ‘가면무도회’ 같은 뮤직비디오를 떠올려 보라. 마치 영화 ‘킬빌’의 여주인공처럼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쏠 때마다 가면 쓴 이들이 죽어 나가는 액션이 압권이지 않았나. ‘나쁜X’ 뮤직비디오도 그렇다. 그건 한 편의 누아르라고 해도 될 법한 영상이고 액션 연기였다. 이들 곡에 보인 반응이 하나같이 노래가 아닌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는 평이 대부분인 이유다.

그러니 비비가 김형서라는 자신의 본명으로 지난해 영화 ‘화란’과 드라마 ‘최악의 악’으로 인상적 연기를 선보인 뒤 올해도 ‘강남 비-사이드’에 이어 ‘열혈사제2’로 연기자의 길을 걸어가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그건 가수가 연기 영역에도 도전해 ‘연기돌’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흐름과는 사뭇 다르다. 애초부터 가수와 연기 두 영역을 동시에 해 왔고, 그 양자에서 자기만의 존재감을 차곡차곡 쌓아 가고 있다고나 할까.




특히 그가 해 온 작품이 대부분 누아르나 범죄스릴러 같은 장르라는 점이 이색적이다. 보통의 신인 연기자가 시도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 ‘몸을 쓰는’ 액션 연기인데, 오히려 김형서는 이 분야에 더 독보적이다.

디즈니+ 드라마 ‘강남 비-사이드’에서 김형서는 강남클럽에서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 중 한 명으로, 친구가 위험해지자 자신이 대신 희생하는 인물 김재희를 연기했다. 만만치 않게 가해자들과 맞서다가 끝내 그들에게 당할 처지가 되자 스스로 끝을 내는 결기를 보여 주는 인물이다.

아직 20대 중반의 나이지만 쓰디쓴 인생 밑바닥 연기를 했다. 이 작품에서 김재희라는 인물이 중요한 건, 그를 사랑했던 윤길호(지창욱)와 그의 절친이었던 강예서(오예주)를 행동하게 만들어 작품에 동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에 김형서가 캐스팅된 건 그의 전작이었던 ‘최악의 악’ 영향이 컸다. 김형서는 ‘최악의 악’에서 중국의 거대 마약조직 두목의 딸 이해련 역할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이를 제작한 사나이픽처스가 또다시 디즈니+의 투자를 받아 내놓은 ‘강남 비-사이드’에 김형서가 지창욱과 함께 출연하게 됐다. 연기 영역에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워낙 도발적인 눈빛으로 누아르적 분위기를 보여 주는 범죄스릴러에 자주 등장했던 탓에 김형서의 연기가 그런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새로운 역할을 선보일 기회가 없어 생겨난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걸 김형서는 SBS 드라마 ‘열혈사제2’로 증명한다.

‘열혈사제’는 사제의 신분이지만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열혈 신부 김해일(김남길)의 활극이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2에선 부산으로 내려와 그곳에서 마약 카르텔과의 한판 승부를 벌인다. 김형서가 맡은 역할은 부산에서 새롭게 조력자로 등장한 마약수사대 구자영 형사다. ‘강남 비-사이드’ ‘최악의 악’과 달리 한층 발랄한 액션 활극이어서 이 작품은 다소 과장된 액션과 서사가 특징이다. 김형서는 시원시원한 액션 연기와 더불어 만화 같은 코믹한 연기를 선보이는데, 할리퀸으로 분장하고 나쁜 놈들을 때려잡는 액션은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본래 부산 출신이어서 이 역할에 딱 어울리는 구수한 사투리 구사로 캐릭터를 잘 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비 혹은 김형서를 보고 있노라면 여러 맛의 연기가 느껴진다. ‘밤양갱’ 뮤직비디오의 순하고 달달한 맛도 있지만 ‘최악의 악’ ‘강남 비-사이드’ ‘열혈사제2’에서의 신맛과 짠맛, 쓴맛도 담겨 있다. 그의 연기에서 일관적으로 보이는 건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면모다. 흔히들 ‘MZ 대세’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건 아마도 타고난 아티스트의 끼가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남으로써 생겨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연기와 노래의 영역이 성역처럼 구분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연기돌이란 표현도 이제는 낯선 과거의 유물처럼 여겨진다. 노래를 하는 것과 연기를 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다를 수 있지만 어떤 감성을 전한다는 본질은 통하는 면이 있다. 조금 낯설어도 과감하고 솔직하게 도전함으로써 그것이 통할 수 있음을 비비는 김형서를 오가며 보여 주고 있다.

영역의 한계란 어쩌면 우리 스스로 그어 놓은 선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해 보지 않아 처음엔 낯설고 어려울 수 있지만, 일단 뛰어들고 보면 어디선가 경험했던 것이 새로운 영역에서도 여전히 도움이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주저할 이유가 뭔가. 비비처럼.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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