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전’ 14년…해병대 연평부대를 가다
과거 머금은 현장서 오늘을 지킨다
포탄 흔적·수백 개 파편 자국 여전히 선명
“적 도발 징후 포착” 알리기 무섭게 전력 질주
일사불란하게 전투배치 완료 보고 ‘실전 방불’
가슴속 그날의 기억을 꺼내다
연극 ‘연평’ 특별 공연…장비·시설 그대로 무대 구성
“목숨 바쳐 나라 구한 군인들…묵직한 메시지 던져”
“내가 보는 곳이 곧 국경선” 굳센 각오로 작전 임해
14년이 흘렀다. 평화롭던 섬이 시뻘겋게 불타오른 그날로부터. 대한민국 영토를 무차별 공격한 적의 만행을, 기습도발에 맞서다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두 해병을 우리는 또렷이 기억한다. 잊어선 안 되는, 잊을 수 없는 그날을 반추하기 위해 11월의 연평도로 향했다. 글=이원준/사진=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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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것들, 바뀌지 않은 것들
20일 여객선을 타고 도착한 연평도 당섬선착장엔 해무가 짙게 끼어 있었다. 방파제 너머 뿌연 연평도는 색을 뺀 수채화처럼 보였다. 14년 전처럼 꽃게잡이가 한창인 시기. 어선들이 대부분 출항해 텅 빈 항만을 채운 것은 중장비 소리였다. 방파제를 새로 짓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해병대 연평부대 정훈과장 김민성 대위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포7중대. 13분 만에 대응사격을 하며 연평도 포격전의 ‘선봉’ 역할을 한 부대다. 주둔지 위로 넓게 펼쳐진 포상에는 K9A1 자주포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포신은 북쪽을 향해 있었다.
자주포를 확인하던 중 비어 있는 포상에 눈길이 갔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구동 케이블 손상에도 불구하고 수동으로 전환해 대응사격한 삼(3)포가 있던 자리다. 연평부대는 이곳 구(舊) 3포상에 안보전시관을 조성했다. 포상 바닥에는 적 포탄이 떨어진 흔적, 수m 높이 진지에는 수백 개 파편이 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과거를 그대로 머금은 현장을 떠나, K9A1 자주포가 있는 새로운 3포상으로 이동했다. 현장에선 포7중대 전투배치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적 포격도발 징후 포착! 전투배치! 훈련!”
포7중대에 적 포격도발 상황을 가정한 비사격 전투배치 훈련 명령이 하달됐다. 3포반원을 비롯한 장병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포진지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포진지에 도착한 자주포 조종수는 주전원을 올리고, 부사수는 포탑 전원분배기를 가동하고 뇌관집을 결합했다.
포반장은 사격지휘소에 전투배치 완료를 보고했다. 지휘소가 하달한 사격 제원을 바탕으로 관성항법장치가 포의 위치와 포신 각도 등을 스스로 측정, 사격통제장치에 제공하자 8m 포신이 목표물을 정조준했다. 전투배치훈련은 물 흐르듯 매끄러웠다.
“전투배치훈련은 하루에 한 번 이상 실시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발생하면 5분 내로 초탄을 발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난해 5월 포7중대장으로 부임하며 어깨가 정말 무거웠습니다. 선배 해병이 이룬 승전의 역사를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적 도발에 맞서 싸운 포7중대 일원이란 자부심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포격전이 벌어졌을 때, 이성환(대위) 포7중대장은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저녁 뉴스에서 본 불타는 연평도를 또렷이 기억한다. 소년은 성장해 해병대 장교로 임관했다. TV 속 모습을 기억하며 포병 병과를 선택했다.
이 중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올해 6월과 9월 실시한 해상사격훈련을 꼽았다. 적 도발 행위에 맞서 7년 만에 재개한 실훈련을 통해 ‘싸우면 승리한다’는 자신감을 배양했다고 한다.
“훈련장이 아닌 주둔지에서 자주포 실사격을 하는 부대는 연평부대가 유일할 겁니다. 실전을 방불케 훈련하며 14년 전 선배 전우만큼 잘 대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훈련하고 나면 장병들의 눈빛부터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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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평’ 현지 공연…그날의 연평도는
이날 오후 연평도에선 특별한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연평도 포격전을 소재로 한 연극 ‘연평’이 연평도 장병과 주민을 만나는 자리였다. ‘연평’은 연평도 포격전 수기집을 바탕으로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가 기획·제작했다. 연평부대 일원으로 포격전에 참전한 예비역 해병병장 이한 씨가 주연을 맡았다.
이번 공연은 연평도 포격전 14주년을 앞두고 배우 이영애 씨의 후원으로 특별히 성사됐다. 배우와 연출진은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연평도를 찾았다. 무거운 무대 장비·시설까지 통째로 옮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연평도를 직접 찾아간다는 데 큰 의미를 담았다.
공연 시작을 30분 앞두고 연평면 주민체육센터에 주민과 장병들이 모여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를 관람하는 어르신들, 부모님 손을 꼭 잡고 온 아이들 모습도 보였다.
이야기는 주인공 기훈이 해병대에 입대하며 시작됐다. 천자봉 고지정복훈련을 통해 해병으로 거듭난 기훈은 연평부대에서 군 생활을 이어간다. 첫 휴가를 앞두고 일어난 포격전에서 가족과 전우, 주민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연평도 주민들의 이야기도 연극은 풀이한다. 평화로운 섬에서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은 포격전이 벌어지자 부상자 대피를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선다.
“연극은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군인들에 대한 처우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사실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2주 남짓한 기간 무대를 준비해야 했고, 기상이 악화돼 공연이 연기되기도 했죠. 그래도 연평도에 직접 와서 공연하며 저를 비롯한 스텝들의 소감이 남다릅니다. 포격전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감회가 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주은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 실장은 이날 공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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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가 있는 한 서북도서 이상 없다
마지막 일정으로 연평부대 백로중대본부를 찾았다. 일몰 시각에 이뤄지는 해안정밀탐색 작전에 동행하기 위해서다. “내가 보는 곳이 곧 국경선이다!” 작전 투입 전 장병들은 굳센 구호를 외쳤다.
고지에 있는 중대본부에서 해안선까지 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금세 호흡이 가빠졌다. 자물쇠가 굳게 걸린 해안 통문을 지나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북방한계선(NLL) 너머에 있는 무인도 석도가 가깝게 느껴졌다.
연평부대는 최첨단 감시장비에 더해 24시간 고정초소를 섬 곳곳에 운용하고 있다. 사람의 ‘오감’을 이용한 경계작전을 위해서다. 상황 발생 시 고정초소를 중심으로 즉각 조치도 이뤄진다.
NLL과 마주한 연평도의 긴장 상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적은 쓰레기풍선, GPS 교란 등 도발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해병대가 있는 한 서북도서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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