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힙(Text-Hip)’. 책을 비롯한 인쇄물(Text)과 멋지다·개성 있다는 뜻의 ‘힙하다’란 신조어가 합쳐진 단어로, 최근 SNS상에서 특히 많이 볼 수 있다. 책이나 글을 읽는 모습이나 표지, 내용, 서점 사진 등을 찍어 올리는 경우가 많아진 것. 심지어 책 모양의 인테리어 소품도 잘 팔린다고 한다. “책 읽는 사람은 멋있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작 책 읽는 사람은 줄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불과 1.7권이다. 우리의 삶과 환경은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다. 미디어 환경도 그렇다. 종이책만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독서가 가능하다는 건 일종의 도그마(dogma·독단적 신념)다. 디지털 미디어로 다양한 콘텐츠(텍스트, 오디오, 동영상 등)가 활발히 소비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지난 7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스마트폰 사용자가 유튜브 시청에 쓰는 시간은 월평균 43시간에 이른다.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텍스트힙 현상일까. SNS보다 책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일까.
사실 그보다는 SNS에 올릴 ‘과시용’ 아이템으로 책이 재발견돼서라고 판단된다.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독서’랄까.
릴스나 쇼츠 등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야 너무 흔해 평범하고, 그야말로 ‘레어템(희귀해 보유하고 싶은 가치가 높고 특별함이 느껴지는 물건)’으로 책이 선택받은 것이다. 보여 주려고 베스트셀러 등의 책을 구매해 들고 다닌다든지, 빈티지하거나 독특한 특징이 있는 서점을 직접 방문하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듯한) 모습을 사진·동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가 유행한다. 인기 아이돌이 책을 읽었다고 SNS에 올리거나 알리면 팬으로서 그 책을 사는 경우도 꽤 많다.
만약 이들이 진짜 행위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 종이책을 열심히 사고 읽는다면 디지털화에 치여 온 출판업계의 숨통이 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직 출판업계가 피부로 느낄 만한 변화는 별로 없는 듯 보인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 계속된다는 얘기만 여전히 들린다.결국 최근의 텍스트힙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많은 이의 관심과 열렬함이 집중되는 미디어는 SNS임을 보여 주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학생·젊은이들의 문해력은 점점 더 우려되는 상황이다. 디지털 미디어로 정보를 빠르게 많이 접할 수 있지만, 그 정보의 진위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맥락을 깊이 이해하는 능력은 전반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비주얼 중심의 콘텐츠에 익숙해진 까닭에 전통적인 텍스트 문해력이 저하된다는 분석도 있다. 긴 문장을 이해하거나 추론하는 능력보다 요약된 정보 소비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정보·미디어 소비를 하려 해도 테크기업들은 우리의 주의(attention)를 계속 빼앗고 묶어 두기 위한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과 시스템이 점점 더 똑똑해질수록 우리는 안락해지겠지만, 그 대가로 자율인식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적지 않다.
우리는 힙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고, 가능한 한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길고 파편화하지 않은 글을 읽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노력이 줄어들면 공동체도 영향을 받는다.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의 저자 전병근은 이 책에서 개인의 주의 상실은 결국 공동체의 신경망까지 손상시켜 정체성마저 사분오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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