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광야서 길 잃은 자들에 신성한 고전 록 세례

입력 2024. 11. 19   16:55
업데이트 2024. 11. 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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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스테이지-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1971년 ‘발칙한’ 해석
이제야 ‘건강하게’ 받아들여져
앤드루 로이드 웨버·팀 라이스
젊은 거장들 손에
더 입체적으로 재창조
지저스 박은태-유다 백형훈
사제 관계 제대로 표현
명곡의 향연
관객 만족 100%
“ 다 이루었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록 음악의 광야에서 길을 잃은 자들을 위한 구원의 손길과 같다. ‘뮤지컬 음악의 연금술사’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들어낸 초기 선율은 모세가 받은 십계명처럼 강렬하고 아름다우며, 권위를 갖고 있다.

1971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이 뮤지컬은 고전 록의 향연을 베풀어 왔다. 예수를 2000년 전 예루살렘의 수퍼스타, 그의 추종자들을 히피처럼 그린 파격적이고 발칙한 해석은 40여 년이 지난 요즘 관객에게 비로소 ‘건강하게’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기나긴 ‘시간의 심판’을 거쳐 오면서 ‘지크수’(이 뮤지컬의 별칭)도 변화했다. 해석의 무게를 덜어내고 나니 지크수는 고전 록을 재해석한 근사한 록 콘서트처럼 보인다.

지크수 속 인물은 모두 신약성경 4대 복음서의 캐릭터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라는 젊은 거장들에 의해 입체적이고 인간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게 입혀진 인물로 재창조됐다. 예수를 향한 유다의 복잡한 감정은 셰익스피어 ‘오셀로’ 속 이아고의 질투처럼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믿음과 의심, 사랑과 배신. 인간 본성의 이중성은 록 음악의 강렬한 혈관을 타고 돌며 힘을 얻는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한 장면. 사진=블루스테이지

 

 

유다 역의 백형훈
유다 역의 백형훈



“진정한 수퍼스타는 유다가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다가 돋보이는 것도 지크수의 특징이다. 지저스 못지않게 유다 캐스팅에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기도 하다. 

정평이 난 박은태의 ‘지저스’와 함께 백형훈의 ‘유다’로 봤는데, 둘은 꽤 합이 좋았다. 기존의 유다들은 지저스와 사제지간이라기보다 친구 같은 느낌이 짙었다면, 확실히 박은태와 백형훈은 제 자리를 찾은 분위기다. 백형훈은 이른바 록 보컬리스트의 필수 미덕인 ‘기타를 이기는 소리’를 갖고 있다. 기타의 거친 디스토션 사운드를 찢고 솟구치는 백형훈의 샤우팅은 순도 100%의 철성(鐵聲)이다.

제사장들에게 은화를 받고 스승을 배신한 유다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그를 멀리서 응시하는 예수 사이에 거대한 장막이 내려오며 1막이 문을 닫는다. 만약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꽤 인상적인 장면일 것이다. 신약성경의 복음서에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자 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길게 찢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예수의 희생을 통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장벽이 사라졌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지크수의 넘버들은 단 한 개의 멜로디, 한 줄의 가사도 버릴 게 없는 명곡으로 가득하다. 고전 록 마니아라면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들었던 ‘신성한 록’의 세례를 받는 기분일 것이다. 유다의 절규가 담긴 ‘마음속 천국’, 예수의 고뇌가 폭발하는 ‘겟세마네’, 군중의 열광이 휘몰아치는 ‘수퍼스타’, 마리아가 부르는 애절한 사랑의 고백 ‘어떻게 그를 사랑해야 하나’는 이 뮤지컬을 보지 않았어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표곡이다.

요즘 각종 대형 뮤지컬 작품에서 주연에 자주 캐스팅되고 있는 정유지는 부러질 듯 가녀린 몸에 기품 있는 음색을 갖고 있다. 뮤지컬계에서 ‘기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가 김소현인데, 정유지의 기품은 결이 다르다. 정유지의 소리가 지닌 기품은 전성기 시절 옥주현을 떠올리게 한다.

앙상블의 군무는 매우 놀랍다. 이들의 테크닉과 합이 대단해 눈이 떼어지지 않는다. 지크수에서는 무대 위의 주인공(물론 지저스다)을 둘러싼 앙상블 배우들이 그를 향해 손바닥을 활짝 펼쳐 거대한 해바라기를 연상케 하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곤 한다. 이 안무는 ‘시카고’의 안무만큼이나 유명하며, 많은 작품에서 차용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박은태는 ‘지저스’ 역에 정평이 나 있는 배우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지저스’에서는 그의 또 다른 대표 배역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폐에 구멍이 난 듯한 고통스러운 숨소리가 그러하고, 유다와 앙상블의 화려한 예수 조롱쇼 너머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의 몸부림이 또한 그러하다. 지저스와 괴물을 모두 연기한 경험이 있는 박은태의 해석이 신선하다.

이번 시즌의 지크수는 확실히 편하게 봤다. 예수와 유다에 관한, 낡았지만 여전히 삼키기 쉽지 않은 해석의 파편들을 줍느라 정신이 없었다면 이번 지크수는 객석에서 안도의 숨을 쉬며 콘서트장에 온 듯 즐길 수 있었다.

“다 이루었다.” 예수의 마지막 말은 관객들의 말이기도 했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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