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군편소 공동기획] 죽음 각오한 용기… 임무완수 의지와 만나 시너지 폭발

입력 2024. 11. 12   17:07
업데이트 2024. 11. 12   17:20
0 댓글

국방일보-군사편찬연구소 공동기획 - 군인다운 군인 군인기본자세 캠페인
⑥ 전장에서 빛난 군인정신 : 필승의 신념과 임전무퇴의 기상 

6·25 당시 장교 임관한 김만술 소위

중공군 공격 맞서 베티고지 지켜내
행동으로 입증된 임전무퇴 기상
군, 장병 정신교육 자료로 활용
전술 지식·공감·팀워크 더욱 빛나

 

군인정신과 공동의 전술관의 상관관계
군인정신과 공동의 전술관의 상관관계

 


6·25전쟁 당시 김만술 소위는 ‘베티고지전투’에서 탁월한 무훈을 세워 미국과 대한민국의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임전무퇴의 기상’ ‘필승의 신념’을 행동으로 입증한 전쟁 영웅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오래 남을 김만술 소위와 소대원들의 활약을 알아본다.


1953년 7월의 치열했던 전장 환경

6·25전쟁 말기인 1953년 7월의 전선에서는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한창이었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이 조인되기 전에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 경기도 연천 일대에서 국군 제1사단 장병들은 피로써 땅을 지키는 이른바 ‘혈전’을 치르고 있었다.

1953년 7월 13일, 공산군은 마지막 총공세를 퍼부었다. 중공군 제1군은 임진강 굴곡부의 노리고지와 베티고지를 주요 공격 목표로 예하의 제1사단을 보냈다. 국군의 전초기지인 베티고지 일대의 경우 적과 아군의 병력 비율은 평균 7대 1로 중공군이 양적 전투력에서 크게 앞서 있었다. 이때 베티고지를 방어하고 있는 부대는 국군 제1사단 11연대 7중대 1소대였다. 국군 제1소대는 중공군의 공격을 이틀간 막아낸 후에 무력화됐다. 이에 7월 15일에 제6중대 2소대 선발대가 투입되어 공동 근무 후 7월 16일에 방어임무를 교대하기로 했다. 제2소대장은 특무상사로 전장을 두루 경험한 후 7월 6일부로 장교 임관한 김만술 소위였다.

 

베티고지 전투의 영웅 김만술 소위
베티고지 전투의 영웅 김만술 소위

 


‘베티고지전투(7월 15~16일)’의 교전 상황 

김만술 소위와 소대원들은 7월 15일 15시30분경 진지에 투입됐다. 아군의 임무 교대 낌새를 눈치챘던 것인지 중공군은 돌연 공격 강도를 높였다. 중공군은 처음 약 2개 소대 규모를 보내 탐색전을 하다가 이어서 1개 중대, 거기에서 또 1개 대대로 부대를 계속 증원했다. 이때가 7월 16일 오전 2시30분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군 제2소대(김만술 소대)는 중공군에게 삼면이 포위됐고, 적의 규모는 증강된 2개 대대로 늘었다. 이때가 오전 4시경이었다. 중공군은 끊이지 않는 파도처럼 연속으로 공격했다.

김 소위는 7월 16일 오전 4시30분경 다섯 번째 포병 진내 사격을 요청했다. 진내 사격은 적에게 목표를 빼앗기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실시하는 최후의 보루이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전투 의지의 최고봉이다. 우세한 적을 나의 진지 안으로 끌어들여 백병전을 벌여야 하므로 임전무퇴의 각오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또한 곧 내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질 것을 알고 싸우는 것이므로 죽음을 각오한 필승의 신념이 없으면 두려움에 지배되기 쉽다. 물론 정신적 측면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진내 사격 시기를 가늠하는 지휘자의 판단, 진내 사격을 요청하고 전파하는 통신과 의사소통 능력, 적을 진지로 끌어들이고 백병전으로 고착시킬 수 있는 부대원의 전술 전기, 아군 포탄이 떨어질 시기를 포착하여 일제히 적과 교전을 멈추고 엄폐를 실시할 수 있는 과감하고 정교한 전술 행동 등이 구비돼야 한다.

김 소위와 소대원들은 혹독하고 처절한 진내 사격을 5회나 실시함으로써 베티고지를 적으로부터 지켜냈다. 이후 김만술 소대는 제3소대와 임무를 교대했다. 추산해 보니 7월 15~16일의 ‘베티고지전투’에서 중공군 314명이 전사하고 45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김만술 소대의 피해도 컸다. 총 34명 중 22명이 전사했고 생환한 12명도 모두 큰 부상을 입었다.

 

 

베티고지 전투 상황도(1963. 7.12.)
베티고지 전투 상황도(1963. 7.12.)



김만술 소대의 ‘필승의 신념’ 

군인정신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전장 사례와 실존 인물을 들어 당시의 전장 환경 이미지를 떠올리고 교전 상황 속 감각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베티고지전투와 김만술 소위의 사례처럼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군인정신의 각 세부 요소에 관한 지식과 통찰이 ‘공동의 전술관’과 연계된다. 공동의 전술관은 ‘전장 환경, 교전 상황의 이론과 경험에 대한 구성원의 축적된 전술 지식과 공감’이다. 평소 상하가 같은 생각과 지식을 가지면 그 부대는 전시에 더 빨리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또한 각 전투원은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전술 행동을 할 수 있다. 적보다 의사결정의 속도가 빠르고 더 많은 행동의 자유를 가진 부대는 전장의 주도권을 가지고 승리로 나아간다.

이제 ‘베티고지전투’ 속 전장 환경을 들여다보자. 생사가 오가는 전투 도중에는 왜 결코 고지를 적에게 빼앗겨서는 안 되는지 일일이 설명하기 어렵다. 부대원을 둥글게 모아놓고 결의를 다지는 장면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베티고지전투 직전 갓 부임해 온 김만술 소위는 소대원의 신상도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 전투에 투입됐다. 이런 상황 아래 ‘임전무퇴의 기상’에 관한 사전 지식과 공감은, 김만술 소위가 진내 사격을 과감히 결정하고 진내 사격의 초탄이 떨어지기 전까지 소대원들이 사력을 다해 중공군과 육박전을 하게 만든 주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 국민은 ‘임전무퇴의 정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1931년 조선일보에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문화사’를 연재하면서 신라시대 화랑정신을 소개한 바 있다. 또한 우리 국군은 1949년 5월부터 전 장병에게 ‘임전무퇴의 각오’를 강조했는데, 이는 당시 분계선인 38도선 상에서 남북 간의 치열한 교전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만술 소위가 처했던 교전 상황을 떠올려보자. 우세한 전투력을 가진 적과 육박전을 벌여 한 치 앞 예측도 불가능한 상황 아래에서는 지휘통제가 크게 제한된다. “1분대장!! 너는 좌측으로 돌아 적의 측면을 공격하라! 기관총 사수!! 너는 현 위치에서 1분대의 측면 우회를 지원하라!”와 같은 단편명령 하달은 혼전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갓 부임한 김만술 소위에게는 부하의 절대적인 신뢰도 단결된 팀워크도 없었다. 이럴 때 ‘필승의 신념’은 군인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 자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죽음을 각오한 용기’와 같은 정신적 요소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7월 15일 오후, 진내 사격이 실시되는 동안 김만술 소대는 유개호에 들어가 엄폐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중공군이 유개호 진입을 시도했다. 포탄이 떨어지는 와중에 피해를 감수하고 접근하여 아군을 급습한 것이다. 이때 김만술 소위는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 총검으로 적을 찌르고 교통호 뒤편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자 소대원들도 함께 나와 싸워서 중공군을 일시적으로 밀어냈다. 김만술 소위는 대대에 재차 진내 사격을 요청했고, 포격을 견디지 못한 중공군이 퇴각함으로써 김만술 소대는 전멸의 위기를 넘겼다.


무공훈장, 전쟁 영웅 그리고 군인정신

후일 ‘베티고지전투’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김만술 소위는 미국 십자훈장, 대한민국 금성태극무공훈장을 수여 받았다. 우리는 통상 훈장이 한 개인의 영웅적인 공적, 탁월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수훈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김만술 소위 등 전쟁 영웅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은 그가 행동으로 입증한 ‘임전무퇴의 기상’ ‘필승의 신념’이 다음 세대에 전파할 표준과 교훈으로 충분하다고 국가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베티고지전투’ 사례는 국군 정신교육 교재뿐만 아니라 각군 야전교범과 교육 참고에도 등장한다. 이는 우리 군이 김만술 소위와 소대원들이 보여준 리더십과 전술행동을 ‘필승의 신념’ 함양을 위한 핵심 이미지로 선택했다는 뜻이다. 베티고지전투에서 싸워 이긴 김만술 소위와 소대원들의 공적은 계급을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디자인: 국방출판지원단 

‘군인다운 군인’ 군인기본자세 캠페인은 국방일보 창간 60주년을 맞아 ‘군, 기(紀) 세우기’ 일환으로 군사편찬연구소, 국방부 병영정책과와 함께 진행합니다. 본 캠페인은 각 부대의 군인기본자세 이해 목적으로 제작됐습니다. 

감수 : 박동휘 육군3사관학교 교수, 김영환 육군군사연구소 선임연구원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