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에서 대장까지 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군인에게는 누구든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군복에 새겨진 이름입니다. 이름이 군복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군인이라는 것을 증명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훈련소에서의 시간은 제 이름을 되찾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저는 스스로가 군인으로서 어떤 존재인지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복에 이름을 새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훈련병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대체할 교번을 부여받았습니다. 고백건대 훈련소에 입소한 처음 며칠간 제 몸은 훈련소에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많은 인원과 움직임을 맞춰야 하는 제식에서는 계속해서 실수가 나왔습니다. 내가 왜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 온통 의문으로 가득했습니다.
번잡한 마음으로 가득한 하루가 이어지던 중 저는 정신전력교육 시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매주 있는 정신전력교육은 그동안 머릿속을 채웠던 수많은 의문에 답을 해줬습니다.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이며 우리 선조들은 어떤 정신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켜내셨는지 알려줬습니다. 교육을 통해, 모든 국민이 편히 잠들고 안전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나라를 지키는 명예로운 존재가 바로 군인임을, 제가 바로 그 군인이 됐음을 알게 됐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면 이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훈련소 생활의 3분의 1이 체력단련이라고 할 만큼 체력은 우리에게 엄청난 과제로 다가왔습니다. 다리근육은 닳아 없어질 것 같고, 팔 근육은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습니다. 극복했습니다. 뜀걸음 도중 숨이 끊어질 것 같을 때 전우들은 제 등을 받쳐주고 밀어줬습니다. 근력 운동 중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전우들의 목소리는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장벽 앞에서 그렇게 우리는 멈춰 서지 않고 나아갔습니다. 이어지는 여러 훈련에서도 우리는 파죽지세 기세로 주어진 과제를 모두 완수해 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회에서의 우리와는 다른 존재가 됐습니다. 수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우리는 우리를 찾았고 스스로를 증명해냈습니다. 그 결과 그동안 교번 아래 맡겨놓았던 이름을 되찾아 군복에 새길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누구인지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육군이병 권준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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