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찰나, 불멸의 위업

입력 2024. 10. 22   16:10
업데이트 2024. 10. 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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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공군1미사일방어여단 군종실 소령·법사
이성철 공군1미사일방어여단 군종실 소령·법사

 


귀 언저리를 배회하던 모기의 움직임이 더는 신경을 긁지 않던 지난 9월의 첫 월요일, 약간의 생필품과 옷가지, 수건을 챙겨 가방을 짊어진 나는 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고개를 내려다보니 거뭇하고 뭉뚝하던 평소의 전투화 끝과 달리 가볍고 산뜻한 운동화 코가 회색 승복 바짓단 아래에 보였다. 목탁과 키보드, 공무원증과 회색 승복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던 날들이 아득히 느껴졌다. 승려인데 승복이 생경하게 느껴진다는 말은 웃기게도 최근 나를 휘감은 화두였다. 그즈음 팔만대장경의 고향, 해인사에서 인경학교를 열어 전통적인 목판 인쇄 방법을 스님들에게 교육하고자 하니 응모를 바란다는 교계 신문의 기사는 이 웃기면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내게 희유한 소식이었다. 서둘러 떠난 해인사였지만 병영에서 산 세월이 적지 않아 낯섦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앞선 감정은 곧 반가움과 안온함으로 바뀌어 갔다. 정말이지 산은 산이었고, 나란 사람은 결국 승려였다. 

교육과정의 첫 일과는 장경판전 탐방이었다. 기어가듯 계단을 오르니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달았다. 출입이 녹록하지 않은 곳이었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판전 안은 울퉁불퉁한 돌바닥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환했다. 엇갈리게 배치된 크고 작은 통풍창을 따라 바람이 스쳐 흘러갔다. 긴장과 안온히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판전은 이상하리만치 서늘하면서도 안온했다.

소임자 스님의 안내로 경판들 사이를 누비기를 한 시간, 우리는 위패들 앞에 섰다. 행렬의 뒤축에 서 있던 나는 불단조차 없는 이 판전에 덩그러니 남겨진 이름들이 누구의 것인지 궁금했다. 얼핏 눈으로 세어 본 위패는 스무 위 남짓, 고려 후기의 문호 이규보를 필두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름들이 귀와 눈을 스쳤다. 그런데 마지막 현대인은 전혀 뜻밖의 인물이었다. ‘고 공군준장 김영환 장군.’ 찌릿한 전율은 그날도 어김없이 관사의 옷장에 빼곡하던 공군용 티셔츠를 승복 아래 받쳐 입고 나온 나의 온전한 몫이었다.

“여기, 화살같이 흐르는 짧은 생애에 불멸의 위업을 남기고 영원히 살아남은 영웅이 있다.” 2002년 여름 세워진 경판을 본뜬 이 김영환장군팔만대장경수호공덕비의 첫 문장은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몹시도 쑥스러워하는 스님들의 김영환 장군을 향한 수줍은 고백일지도 모르겠다. “능선 너머로 폭탄과 로켓탄을 투하하고 귀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김영환 장군의 찰나는 영원이었겠으나, 용기는 결연했고 결과는 찬란했다. 그 찰나를 공덕비의 문장을 쓴 당대의 학승 지관 스님은 “대장경판이 보존된 장엄한 역사적 순간”이라고 평했다. 그 순간이 있어 천년의 역사가 또 다른 천년, 그 이상을 대장경과 판전이 이어질 것을 생각한다면 불멸의 위업이란 찬사조차 가벼운 표현일지 모르겠다.

종이와 먹으로 경판에 쌓여 있던 시간의 더께를 걷어내며 수행을 쌓아나가던 며칠간 경판을 바라보며 나는 찰나의 순간과 영원의 관계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는 했다. 실습시간이 쌓여갈수록 결과물이 더 좋아지는 것을 바라보며 한 장 한 장 최선을 다해 온 과거의 나에게 고마워졌다. 온전한 하루와 의미 있는 어제, 그리고 기대되는 내일도 찰나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찰나가 쌓여 영원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멋쟁이 바론’ 고 김영환 장군을 비롯해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지켜낸 호국영령의 찰나들이다. 그들의 순간이 영원히 빛을 잃지 않도록 그들에게 빚을 진 우리는 찰나를 영원처럼 살아나가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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