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의 의미

입력 2024. 10. 17   15:39
업데이트 2024. 10. 1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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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르난 중위 육군21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이오르난 중위 육군21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임관 1년을 맞이해 소위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6·25전쟁 당시 소위가 많이 전사했기에 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소위 소위’ 같이 들렸다는 풍자보다, 작은 위관급 장교라는 사전적 정의보다 ‘소소한 것에도 위로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불러 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여느 날처럼 출근해 확인한 온나라 시스템에 사단 정훈부에서 발송한 메모보고가 눈에 띄었다. ‘곧 부대에 신임 소위들이 오니 업무 수행을 잘할 수 있도록 지도 바랍니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지난해 이맘때의 내가 떠올랐다.

부대원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도 마냥 두렵기만 했던 야전에서의 첫 달엔 그동안 그려 왔던 간부로서의 위엄·위상을 갖추겠다는 신념으로 바짝 긴장해 애를 태웠다. 주어진 현실이 막연하고 낯설게 느껴져 괜히 달력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연간 부대 운영계획 속 빼곡하게 채워진 하루하루를 뜯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 마주하는 현실 앞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내게 정훈과장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다 할 수 있는 거야. 뭐든 도와줄게”라며 열정으로 넉넉히 이겨 낼 힘을 주셨다. 고민에 빠져 인상을 쓰고 있던 날엔 4중대장님이 “잘하고 있으니 너무 인상 쓰지 마. 방긋방긋 웃으며 지금처럼만 지내면 그걸로도 충분해”라고 격려하며 잃었던 웃음을 찾아 주셨다.

그날은 뭐가 그렇게도 억울한 일이 많았는지 서러웠던 날, 2중대장님은 “주말에 다 같이 춘천으로 놀러 가자. 가끔은 코에 바람도 쐬어 줘야지”라며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기도 했다. 언제나 이성적인 판단으로 정신적 지주가 돼 주신 부모님은 “모든 일에 정직하고 거짓 없게,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1년 후 다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며 사랑으로 중심을 잡아 주셨다.

‘선한’ 장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임관 종합평가에 임하던 날, ‘11가지 군인정신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선정하라’는 문항에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합심해 선을 이루는 군대의 명예’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 함께라는 이유로 가능케 되는 전우애의 저력’을 생각하며 주저 없이 ‘단결’을 제시했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임관해 마주한 야전의 낯선 현실에 좌절하던 날, 진심이 묻어 있던 따뜻한 전우애를 실감하며 단결의 힘을 믿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던 소위 시절을 지나 “정말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라는 사실을 자부하게 된 오늘, 그 시간을 견뎌 낼 수 있게 해 줬던 따뜻함을 다시 한번 꺼내 본다. 이제는 내가 그런 따뜻한 사람이 돼 야전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소위의 시간이 막연하지 않게, 곁을 지키며 낯섦과 어려움을 물리쳐 주고 싶다. 어쩌면 이 글에 담아낸 소위의 의미가 모두에게 공감되지 않을 내용일지 몰라도 문득 사람으로서 벅차는 날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며 기도하는 진심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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