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마니아’ 이시바 시게루 총리

입력 2024. 10. 17   16:39
업데이트 2024. 10. 1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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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룡 월간조선 군사전문기자
오동룡 월간조선 군사전문기자



지난 1일 일본의 102대 총리로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는 ‘오타쿠(おたく) 총리’로 불린다. 오타쿠는 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을 말한다. 일본 아이돌 가수의 계보를 훤히 꿰고 있고, 그룹 ‘캔디즈’의 멤버 후지무라 미키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항공기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철도 오타쿠’로, 지역구인 돗토리현에 갈 때도 도쿄~돗토리 구간의 침대 특급열차를 이용한다.

그의 진정한 오타쿠 기질은 밀리터리 분야에서 발현된다. 군사·전쟁·국방 관련 ‘프라모델’ 제작이 취미다. 국회 업무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직행해 군함 프라모델을 조립해야 해 동료 의원들과 식사도 뒷전이다. 그런 그는 방위청 장관을 2번이나 역임했고, 방위성으로 승격된 이후엔 방위상도 지냈을 정도로 군사 전문가다.

기자가 일본 시즈오카 특파원 시절, 방위청 장관으로 TV 프로그램에 나와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출연자들에게 “일본과 같은 섬나라에 해병대가 없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논리를 또박또박 설명하는 것을 봤다. 평화헌법에 따라 ‘공격성 전력’인 해병대 전력 보유는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그의 주장대로 2010년 ‘일본판 해병대’라는 ‘수륙기동단’이 창설됐다.

이시바 총리와 친분이 깊은 군사 저널리스트 기요타니 신이치(淸谷信一)는 “이시바 총리는 안전보장과 무기체계, 2가지 지식을 모두 갖춘 정치가”라며 “방위예산의 상한과 우선순위를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방위청 장관 시절부터 방위예산의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하는 ‘시어머니’ 이시바는 방위성이나 자위대에는 성가신 존재였다. 내공이 부족한 자민당 내 국방족이나 국방부회 소속 의원들은 ‘방위 문제는 이시바에게 맡기자’며 ‘예산 검증’ 문제를 떠넘겼을 정도다.

역설적이게도 이시바 총리는 밀리터리 오타쿠들에게 인기가 없다. 방위청 장관 시절, 저성능과 높은 비용을 들어 P-1 초계기 개발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P-8처럼 보잉737 기반의 쌍발엔진을 주장했으나 조종사의 생존성을 내세워 4발엔진을 주장한 방위청 내국과 해상막료감부에 밀리고 말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4발엔진을 택한 P-1은 개발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갔고, 설상가상으로 P-1의 플랫폼으로 C-2 수송기를 동시에 개발해 비용을 줄이려던 방위성의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두 기종의 조달단가를 100억 엔 이하로 예상했으나 P-1의 경우 2025년의 예산 요구에선 421억 엔으로 애초의 4배 이상 부풀어 올랐고, 가동률은 30% 이하로 저조한 상태다. 결국 그의 쌍발엔진 지적이 옳았다.

이시바 총리는 한국에 우호적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라오스에서 이시바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시바 총리가 ‘아시아판 나토’ 창설의지를 공식화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제안한 집단방위조약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되 나라별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밀리터리 마니아’ 이시바 총리의 등장이 한반도 안보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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