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아버지 커피 예찬…키스보다 사랑스럽고 포도주보다 부드러워

입력 2024. 10. 17   16:11
업데이트 2024. 10. 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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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의 마·이·클(마음으로 이어주는 클래식) - 바흐의 ‘커피 칸타타’

항상 커피 마시며 작곡한 ‘커피 마니아’ 
18세기 유럽 커피 열풍 서사로 풀어내
아버지와 딸의 ‘커피 전쟁’ 익살스럽게 표현
세속 칸타타 중 하나…인간적인 면모 돋보여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바흐 동상. 사진=위키백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바흐 동상. 사진=위키백과



“커피 한 잔 할래요?” 달콤한 미성으로 커피를 권하는 폴킴의 목소리를 들으면 오늘 하루 꼭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잠이 덜 깬 아침의 진한 원두향은 하루를 시작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되고, 바쁘고 지친 일상 속의 식사 후 커피 한 잔은 피곤한 하루 일과의 단비와도 같습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그 어떤 영감보다 강하다”는 튀르키예 속담처럼 카페인은 마법과도 같습니다. 

현대인의 여유로운 시간을 채워 주는 커피는 18세기 유럽에서는 지식인들의 모임에 함께했습니다. 그 당시 독일의 카페는 사교 활동과 더불어 열띤 토론이 펼쳐지는 만남의 장소였고, 영국에서 수입된 커피를 마시는 게 대유행이었습니다. 문인, 화가, 철학가, 음악가 등 당대의 지성인은 커피 한 잔을 놓고 서로의 작품과 사상에 관해 끊임없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독일 고전음악을 대표하는 3B, 바흐·베토벤·브람스 역시 커피 마니아였습니다. 베토벤은 “60알의 원두는 60가지 음악의 영감을 준다”는 말과 함께 매일 아침 원두 개수를 세면서 커피를 내렸습니다. 실제로 원두 60알은 약 9g에 해당하는데, 오늘날의 에스프레소 한 잔의 양과 같다고 하죠. 베토벤은 철저한 성격답게 정확하게 60알을 세는 데 집중했다고 합니다. 브람스도 “아무도 내가 내린 진한 커피 향을 따라잡을 수 없다”며 매일 새벽 5시 손수 내린 커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항상 커피를 마시며 작곡을 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는 아예 커피를 소재로 한 작품을 썼습니다. 바로 ‘커피 칸타타’ BWV211입니다. ‘사냥 칸타타’와 더불어 바흐의 가장 유명한 세속 칸타타입니다. 바흐는 당시 커피 열풍을 포착해 재미있는 서사를 풀어 나갔습니다. 바흐 덕분일까요? 우리나라의 유명 커피음료회사는 ‘커피는 칸타타’라는 문구와 함께 국내 최초로 원두 캔커피를 출시하기도 했죠.

라이프치히에는 ‘카페바움’이라는 독일 최초의 카페가 있었는데, 1711년부터 커피를 판매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바흐뿐만 아니라 멘델스존, 슈만, 리스트, 바그너, 말러 등의 음악가가 이곳에서 음악 이야기를 나눴고, 대문호 괴테와 실러도 이 카페를 애용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역시 이곳의 커피를 찾았다고 하니 그 시대 독일에서의 커피 인기가 실로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흐는 당시 콜레기움 무지쿰에서 대학생들로 구성된 연주단체를 지도했는데, 후에 라히프치히의 짐머만하우스라는 카페에서 그들과 함께 ‘커피 칸타타’를 자주 연주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다(cantare)’에서 유래한 ‘칸타타(cantata)’는 바로크시대 성악곡의 한 형태입니다. 소규모 오케스트라 반주와 함께 여러 악장으로 나눠 긴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오페라에서 등장하는 솔리스트가 부르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 중창, 합창 등이 사용됩니다. 칸타타는 예배용으로 만들어진 교회 칸타타와 귀족들의 요청에 의해 작곡된 세속 칸타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회 칸타타는 경건한 분위기를 지닌 간결하고 내면적인 합창이 강조됐고, 세속 칸타타는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아리아·레치타티보가 교대로 나오면서 솔리스트의 기교를 자랑할 수 있는 독창과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창이 돋보입니다.

바흐는 200곡이 넘는 교회 칸타타와 20곡의 세속 칸타타를 남겼습니다. 1732년부터 1735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흐의 ‘커피 칸타타’는 테너가 “조용, 조용하세요! 이제 잡담을 그치고!”라는 내레이터의 레치타티보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커피 칸타타’의 원래 제목인 ‘조용히 입 다물고 떠들지 말아요(Schweit stille, plaudert nicht)’로 시작되는 이 곡은 두 주인공인 아버지와 딸이 커피 때문에 다투고 화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정말 성가신 일이 많지. 내가 타일러도 딸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구나. 얘야, 커피를 끊어라, 제발!” 아버지는 딸에게 커피를 끊으라고 하고, 딸은 아버지에게 커피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합니다. “아버지, 자꾸 화내지 마세요! 하루에 3잔의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말라 죽을 거예요! 커피는 너무 달콤해요! 1000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포도주보다 훨씬 부드러워요! 절대로 커피를 끊을 수 없어요!”

이들의 대화는 보수적인 세대를 대표하는 고지식한 아버지를 베이스가 강조된 바소콘티누오 형태, 세련된 신세대를 대표하는 사랑스러운 딸을 플루트의 발랄한 선율과 함께 대조적으로 표현합니다.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등장인물 모두 “아가씨는 언제나 커피를 좋아합니다. 아버지는 커피를 빌미로 딸의 약혼을 방해하고, 딸은 아버지에게 ‘다시는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한 뒤 혼인계약서를 새로 쓰고 아버지와 화해하면서 곡을 끝맺습니다. 어머니도 커피를 좋아하게 됐죠. 할머니도 커피를 즐기게 됐으니 어느 누가 딸을 탓할 수 있을까요?”라고 노래합니다.

‘커피 칸타타’는 누구보다 커피를 사랑했던 바흐가 커피가 대유행하던 시기에 그 맛과 향을 주제로 익살스러운 내용을 담은 작품입니다.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며 서양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바로크시대의 사상인 완벽한 조화와 균형미를 음악을 통해 전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1000곡이 넘는 그의 음악은 모두 색다릅니다. 단 한 곡도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그가 평생 교회와 궁정에서 일했고, 귀족의 의뢰를 받아 작품을 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더 놀라울 뿐입니다.

특히 ‘커피 칸타타’는 성 토마스 교회에 소속돼 성실하고 진지하게 작품을 쓰며 20여 명의 자식 교육을 위해 묵묵하게 일했던 바흐의 인간적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바흐가 살았던 시대에 TV가 있었다면 ‘커피 칸타타’는 당연히 커피를 권하는 음악, 커피하우스를 홍보하는 광고음악으로 유럽 전역에 널리 퍼졌을 겁니다. 그랬다면 평생 독일을 떠나지 않았던 바흐가 유럽 전역에서 연주 요청을 받는 국제적인 작곡가로 일약 스타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필자 김준희는 연주와 강연으로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다. 저서로 『클래식 음악 수업』 『클래식, 경계를 넘어』가 있으며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필자 김준희는 연주와 강연으로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다. 저서로 『클래식 음악 수업』 『클래식, 경계를 넘어』가 있으며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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