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춤추는 삶

입력 2024. 10. 15   15:20
업데이트 2024. 10. 1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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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육군7포병여단 대위·목사
김요한 육군7포병여단 대위·목사

 


이맘때쯤이면 내년을 준비하기 위한 트렌드 키워드가 거론된다.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발표한 10가지 키워드 중 눈에 띄는 하나가 있다면 바로 ‘아보하’라는 키워드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줄인 말인데, 넘치는 행복보다 무탈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심리가 엿보인다. 흔히 ‘소확행’이라고 불리는 소소한 삶의 행복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사회경제적 불안은 여전하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아보하’는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본다면 상당히 특별한 경험이다. 문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인류의 역사는 3525년인데, 역사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그중 전쟁이 한 번도 없었던 해는 전체의 고작 8%인 286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92%인 3239년간 인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쟁을 벌였다는 말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날이 새서 전쟁으로 날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는 평화의 시기를 살다가 가끔 전쟁을 한 게 아니라 늘 전쟁의 시기를 살다가 가끔 평화의 순간을 맞이해 왔다. 지금도 우리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장의 참혹성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적 논리이지만 인류 역사의 시각에서 적극적으로 삶을 평가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 순간 충분히 ‘아보하’를 이루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람들은 종교 이야기에서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구절을 찾아 열심히 밑줄을 긋는다. 이와 반대되는 이야기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기독교 경전인 구약성서의 ‘시편’은 아름다운 시적 고백으로 구성돼 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구절이 많아 인생 좌우명으로 삼는 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놓치는 부분은 시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는 찬양도 감사도 아닌 탄원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전쟁의 숱한 역사를 경험한 인류가 잠시 평화를 맛보듯이 시편도 수많은 탄원 속에서 하나님을 의존하며 찬양하는 반전을 노래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구성이 오히려 찬양과 감사의 고백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준다. 대적이 둘러싼 상황 속에서 과거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떠올린다. 억울함 속에서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한다. 분명한 역경이 존재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며 끝까지 걸어간다. 찬양과 감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빛날 수 있지만, 수많은 탄원과 만났을 때 더욱 힘이 실리고 의미가 풍부해진다.

『온 파이어(On Fire)』의 저자 ‘존 오리어리’는 아홉 살에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생존 가능성 0%라는 의사의 소견을 받는다. 그는 수십 번의 이식수술과 고통스러운 재활치료를 악착같이 버텼고, 녹아내린 손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끔찍한 순간에도 꿋꿋이 이겨 냈다. 훗날 그는 수많은 청중 앞에서 다음과 같이 도전한다. “내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된다는 게 무엇인 줄 아는가? 그건 행복만이 아니라 시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시련과 역경을 기꺼이 수용한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눈앞의 시련을 담담하게 껴안아 버리면, 그건 더 이상 삶이 무너지는 비극이 아니라 삶을 바꿔 버리는 전환점이 된다.

‘아보하’를 소망하는 마음은 무탈한 하루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삶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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