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그들이 온다
중국의 스파이가 된 전직 CIA 요원
FBI, 중 포섭 용의자 일부러 채용
비밀문건 번역 의뢰 후 함정 수사
다른 스파이 색출위해 장기간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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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1일 미국 하와이연방법원은 중국을 위해 스파이 행위를 한 전직 CIA 요원에게 징역 10년 형을 선고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알렉산더 육칭 마는 FBI의 장기 방첩공작에 의해 오랫동안 미국의 비밀정보를 중국에 넘겨온 사실이 밝혀져 2020년 8월 체포돼 재판을 받아 왔다. 그는 1952년 홍콩에서 태어나 하와이로 건너와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하와이대학을 졸업했다. 1982년부터 1989년까지 CIA에서 근무하다 퇴직 후 5년간 중국에서 무역업에 종사했고, 2000년에 다시 하와이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CIA에 근무하면서 1급 비밀취급 인가뿐 아니라 CIA 요원, 해외 정보원 명단과 비밀공작 내용 및 기법까지 알 수 있는 ‘민감정보(SCI·Sensitive Compartmented Information)’ 접근권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진술에 따르면 CIA에서 퇴직 후 10년이 넘은 2001년 초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 상하이 지부 요원들과 만났다. 그들은 오랫동안 CIA에 근무한 그의 친척 형과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지병으로 이미 사망해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그의 형은 1967년부터 1983년까지 CIA에서 근무한 정보요원이었다. 이들은 2001년 3월 24일 함께 홍콩을 방문해 3일 동안 호텔 방에 머물며 중국 정보요원 5명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방대한 분량의 비밀정보를 전달했다.
FBI는 미상 경로를 통해 당시 호텔 방에서 녹음 및 녹화된 자료를 확보했다. CIA와 합동으로 검토한 결과 유출된 정보에는 △CIA 업무와 경험 △CIA 내부 조직도 △CIA의 해외 공작 △비밀통신 방법 △CIA요원 및 해외 현지 정보원 신원정보 △비밀공작 활동 기법 △CIA 기술부서 관련 정보 등으로, 국가안전부가 CIA에 관해 알고자 하는 거의 모든 정보가 망라돼 있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5만 달러를 현금으로 받았는데, 영상녹화 자료에는 마가 돈을 세는 장면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의 죄는 종신형을 받기에 충분했으나 혐의를 인정하고 조사에 협조해 비교적 가벼운 10년 형으로 감형됐다. 하지만 검찰과 협약(플리바게닝) 조건에 따라 평생 정보당국의 디브리핑(설명) 요구 등 협조 요청에 따라야 하며, 형기를 마친 후에도 5년간은 감시를 받게 된다.
감시하기 위해 간첩 혐의자를 채용한 FBI
마는 홍콩에서 중국 요원들과 만난 후인 2002년 12월 FBI 하와이 지부 직원 채용에 지원했다가 나이 때문에 실패하자 2003년 4월 계약직 중국어 전문가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검찰에 따르면 FBI는 당시 그가 중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을 의심하고 있으면서도 가까이에 두고 감시하면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방첩공작의 일환으로 그를 채용했다고 한다. 마는 2004년 8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FBI 외부의 별도 사무실에서 시간제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FBI는 보안 서약서를 받고 비밀문건 반출 및 촬영금지 등 엄격한 보안 교육을 한 후 일부러 민감한 비밀문건 번역을 의뢰하고 근접 감시를 통해 철저하게 동향을 파악했다. 그는 ‘비밀’ 마크가 선명한 서류들을 복사하거나, 디지털카메라를 사무실로 가져와 문서를 촬영했고, 미사일 등 무기체계 기술 연구자료를 CD에 저장해 빼돌리기도 했다. 또한 주기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는데, 입국 시 수천 달러의 현금과 고급 골프채 등을 가지고 돌아오기도 했다. CIA 동향과 대만 외교관들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중국 정보요원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특히 2006년 3월에는 국가안전부가 의뢰한 미국 스파이 의심 중국인 5명의 사진을 친척 형에게 보냈다. 그중 2명을 스파이로 확인해 주기도 했는데, 당시 FBI는 그의 거주지에서 이들 다섯 명의 사진과 이름이 저장된 메모리카드를 발견했다. 그해 5월 부인을 중국에 보내 정보가 담긴 노트북을 중국 요원에게 전달했으며, 중국 요원은 며칠 후 “선물에 감사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2010년 3월 FBI 사무실에서 빼낸 2급 비밀 서류를 소지하고 한국 서울을 방문하고 돌아간 뒤 이메일로 중국 요원에게 홍콩에 개설된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를 전달했다. FBI는 2019년 1월 추가 증거 확보를 위해 중국 요원으로 위장한 직원(Under Cover Employee)을 그의 사무실로 보냈다.
FBI 위장 요원은 중국 정보기관의 감사관이라며 2001년 3월 홍콩 모임 때 녹화된 장면을 보여주면서 신뢰를 확보한 뒤 중국 요원들이 보수를 제대로 지급했는지 등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는 위장 요원을 진짜 중국 정보요원이라고 믿고, 촬영된 영상과 중국 측 참석자가 틀림없으며, 자신은 2001년 이후 계속 비밀자료를 중국에 제공해 왔다면서 중국 요원의 이름도 알려줬다. 2019년 3월 두 번째 만남에서 FBI 위장 요원이 협조해 줘 고맙다며 2000달러를 제공하자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FBI에 근무하는 동안 많은 비밀자료를 중국에 넘긴 사실을 자랑했다. 2020년 8월 위장 요원이 다시 그를 접촉해 상관이 보낸 감사 표시라며 2000달러를 추가로 전달하자 그는 “조국(Motherland)의 번영을 기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첩은 스파이 잡는 스파이 활동
알렉산더 마 사건은 2010~2012년에 이어진 CIA의 중국 내 정보망 붕괴(수십 명의 중국인 정보원이 체포됐고, 그중 여러 명이 처형됐다)에 따른 미국 방첩당국의 대대적인 조사를 통해 체포된 전직 CIA 요원 중 최근의 사례다. 2만5000달러를 받고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그들이 제공한 암호화 휴대전화를 통해 CIA의 정보활동과 중국 내 정보원 신원을 누설한 혐의로 2017년 체포된 전직 CIA 요원 케빈 맬러리는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84만 달러를 받고 CIA의 공작 기법과 중국 내 현지 정보원 명단을 넘긴 혐의로 2018년 체포된 전직 CIA 요원 제리 춘싱 리는 징역 19년 형을 선고받았다.
CIA의 중국 내 정보망 붕괴 시 체포된 중국인 현지 정보원이 이들이 넘긴 명단에 포함돼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번에 재판을 받은 마가 CIA의 중국 정보망 붕괴 이전인 2006년 중국 정보기관에 확인해 준 2명의 중국인 신원은 확실하게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재판기록을 분석해 보면 FBI가 마와 중국 정보기관의 관계를 알면서도 중국의 공작 기법이나 제3의 스파이 색출 등 방첩정보 수집을 위해 장기간 공작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휴대전화와 이메일 감청은 물론이고, 사무실 몰래카메라 설치와 거주지 비밀수색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함정수사를 통해 본인만이 알고 있는 내용까지 파악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불가능한 일들이다. 스파이를 색출하는 방첩 업무는 그 자체가 스파이 활동이며,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
모든 나라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의 핵심적 정보수집 수단인 휴대전화 감청조차 불가능한 우리 통신비밀보호법의 문제점은 시급히 개선돼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미국처럼 비밀 수색영장 제도나 특별한 경우의 함정수사도 인정될 수 있도록 방첩 관련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고 관련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간첩행위보다 더 심각한 범죄행위는 없다”고 일갈한 케빈 맬러리 사건담당 검사의 발언이 큰 울림으로 남는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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