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필충조건 지금 충전하라 

입력 2024. 10. 09   13:36
업데이트 2024. 10. 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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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다
20. 정신의학 분야 권위자 이시형 박사 

인생도 과학방정식
문제는 스트레스…‘행복 호르몬’ 높아야 평정심 생겨
햇볕 쬐고 운동하고 북 치다 보면 세로토닌 생성 도움
인생에 실패는 없어
20대에도, 70~80대에도 행동할 수 있다면 실패 아냐
작은 말·흔적이 누군가에 울림 된다면 그것으로 된 것


“이보시오, 노형 참 용케 살아남았구려….”올해 아흔을 맞은 정신의학 분야의 권위자인 이시형 박사가 동시대를 사는 동년배에게 건네고 싶은 인사다. 아마 그 자신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1934년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을 모두 겪은 그는 자신의 말처럼 정말 용케 살아남았다. 한국말을 해도 잡혀가지 않았을 때 광복이 온 걸 알았고, 전쟁통에 열세 식구의 가장으로 살아야 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고작 열여섯. 선택지는 따로 없었다. 그저 눈앞에 놓인 길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이를 악물고 공부해 떠난 미국 유학 시절에는 “유 어 킬링 유어셀프(You are killing yourself)”라는 말을 들었다. 일 중독자처럼 일에만 매달렸다. 즐길 인생은 없었다. 힘들다는 말조차 사치였다. 그때는 그렇게 살았다. 그런 그가 90년 인생에서 느낀 건 무엇일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대답 끝에 그는 “요즘 젊은 친구들은 ‘꼰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며 웃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절로 숙여지는 고개는 어쩔 수 없었다. 글=송시연/사진=양동욱 기자

 

 


- 최근 『이시형의 인생 수업』이라는 책을 내셨다. 어떤 책인가.

“내 나이가 올해 딱 90이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이만큼 먹고 보니 인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더라. 누군가는 내 삶을 반면교사 삼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도 저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책은 제목 그대로,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나온 인생과 사람들에 대해 얘기했다.”


- 군대와 인연이 깊다. 2014년 ‘국군 세로토닌 드럼클럽’을 시작해 꽤 오래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무질서해진다. 격해지고 주먹이 먼저 나가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게 큰 싸움이나 소동이 되는 이유다. 세로토닌은 이런 무질서하고 격한 마음 상태를 바로잡고 적정한 수준의 정신상태를 유지하도록 조절해주는 물질이다. 평정심을 찾게 도와준다. 그래서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린다. 제한된 공간과 장소에 있는 군인들에게 특히나 필요한 물질이다. 세로토닌 생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햇빛이다. 그다음이 리드미컬한 운동이다. 북을 치는 것은 세로토닌 생성에 큰 도움이 된다. 국군 세로토닌 드럼클럽은 북을 두드림으로써 스트레스를 풀고, 건전한 병영 문화에 도움이 되고자 시작해 3년 넘게 운영했다.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아직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건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건강과 행복이다.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 급격한 성장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지만 그만큼 큰 부작용을 남겼다. ‘빨리빨리 문화’는 여유와 낭만을 앗아갔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사회문제가 됐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40년 넘는 연구로 이어졌다. 지금은 세로토닌 연구를 완성하기 위한 연구원 설립을 준비 중이다. 연구원에서는 세로토닌 생성과 생성을 향상하는 물질에 관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건전한 병영 문화 조성을 위해 이시형 박사가 운영한 ‘국군 세로토닌 드럼클럽’에서 장병들이 북을 치고 있다. 국방일보 DB
건전한 병영 문화 조성을 위해 이시형 박사가 운영한 ‘국군 세로토닌 드럼클럽’에서 장병들이 북을 치고 있다. 국방일보 DB

 


- 세로토닌이 박사님의 건강 비결이기도 한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과 차 한잔 마시면 행복하지 않나?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햇볕 쬐면서 산책하거나 북을 치는 것도 방법이고, 명상을 하는 것도 좋다. 세로토닌적인 마음이 되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고, 절로 편한 인생을 살 수 있다.”


- 그래도 세로토닌만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세월을 살아오셨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준 또 다른 힘이 있을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겪었다. 정말 어려운 세월이었다. 동년배 노인들을 지하철에서 만나면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다. ‘이보시오, 노형 참 용케 살아남았구려’라고 인사하고 싶다. 정말 용케 살아남았다. 요즘 아이들은 선택지가 넓지 않나. 우리는 어려운 길, 쉬운 길이라는 게 없었다. 외길이었다. 나는 열세 식구의 가장이었다. 힘들다, 안 힘들다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 일단 들어섰으면 끝장을 봐야 했다. 주어진 여건이 있으면 그거 하나를 위해 정말 사력을 다해 달려야 하는, 그런 세월을 살아왔다. 요즘 젊은이들 생각에서는 참 답답할 것이다. 그래서 ‘꼰대’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때는 방법이 그거 하나였다.”


- 최근 저서에서 ‘요즘 젊은 친구들은 실패라는 말을 너무 쉽게 입에 담는다’고 한 말도 같은 맥락인지.

“인생에 실패는 없다. 내가 테니스 시합을 한다고 치자. 한 게임 졌다고 진 게 아니지 않나. 두 번째 게임이 있고 세 번째 게임이 있다. 이번에 지더라도 다음에 또 하면 된다. 젊은 친구들이 실패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실패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다. 내가 죽음에 임박에서 지난 삶을 돌아봤을 때, 그때 내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모를까. 여전히 시작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다면 실패가 아니다. 끝이 아니지 않나. 20대에 무슨 실패가 있고, 60대에 무슨 실패가 있나. 70~80대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살아갈 일이 많다. 우리는 실패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건전한 병영 문화 조성을 위해 이시형 박사가 운영한 ‘국군 세로토닌 드럼클럽’에서 장병들이 북을 치고 있다. 국방일보 DB
건전한 병영 문화 조성을 위해 이시형 박사가 운영한 ‘국군 세로토닌 드럼클럽’에서 장병들이 북을 치고 있다. 국방일보 DB



- 실질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달라. 

“나는 가끔 대중매체에 나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두렵다. 사람마다 해결하는 방법이 다르다. 내가 했던 방법이 다른 이에게도 똑같이 좋을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운 장면을 만날 때가 있겠지만, 어느 한 사람이 ‘이렇게 풀었다’고 해서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때그때 자기가 보고 적당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다만 실패라는 생각만 하지 않으면 된다.”


- 그럼 90년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앉아 있겠나. 인생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없을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명감’이다. 우리 민족을 위한, 인류 복지를 위한 연구가 나에게는 인생의 목적이다. 나는 지금도 책을 쓰기 위해 밤을 새운다. 어제도 책을 쓰다가 새벽 3시가 넘어 잤다. 나의 작은 말, 작은 흔적들이 누군가에게 울림과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내 인생은 된 것이다.”


-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하셨다.

“통합의료원을 설립하는 일이다.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잔잔한 병이 생긴다. 나도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다. 이도 시원찮고, 눈과 귀도 시원찮고, 허리도 시원찮다. 장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건강 수명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아프면서 오래 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건강한 노년을 위한 통합의료원을 설립하고 싶다. 노인들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우리는 세계가 놀랄 만한 기적을 만든 세대다. 그런 세력은 뒷방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나와 일해야 한다. 실버산업을 생각해 보자. 늙는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이들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계가 있다. 노인들이 기획하고, 제작하고, 기술도 발휘하는 것이다. 앞장서서 끌고 가야 한다. 그렇게 일하고 사회에 공헌할 때 존경받을 수 있다. 노인들이 들으면 섭섭하다고 할지 몰라도 제 생각에는 그렇다.”


- 지면을 보고 있을 국군 장병들을 위한 한 말씀도 부탁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왼편에 서느냐 오른편에 서느냐에 따라 총살당하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국군 장병들이 이 나라를 지켜줬기 때문이다.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나라를 지킨다는 게 자기 목숨을 바치는 일인데 그보다 더 귀중한 일이 어디 있겠나. 모든 국민이 국군 장병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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