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마지막 철수 임무까지 최선 다하며 ‘유종지미’ 거둬

입력 2024. 10. 04   14:56
업데이트 2024. 10. 07   08:31
0 댓글

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24.
2008년 이라크 자이툰부대 철수③


종결식 후에도 경계 임무 긴장 안 늦춰
주둔지 시설·장비 지방 정부에 공여
4년 3개월간 나부끼던 태극기 하기
해발 1000m 고지 호텔서 환송식도
6개월여 파병 생활 마치고 오른 귀국길
부담 벗은 장병들 표정 한결 편해보여

부대 철수를 앞두고 한국어 간판을 철거하는 모습.
부대 철수를 앞두고 한국어 간판을 철거하는 모습.


자이툰부대 영내에는 우리 장병만 있는 게 아니다. 우선 에르빌 지역 재건을 돕기 위해 외교부 산하 지역재건팀(PRT·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이 있다. PRT는 내전과 무력 분쟁 등으로 정국이 불안정한 나라의 안정을 꾀하고, 재건을 지원하는 민·군·경 혼성 조직이다. 아프가니스탄에 처음 설치됐고, 이라크가 뒤를 이었다.

또 은행 업무를 보는 외환은행, 통신을 서비스하는 한국통신, 부대 급식 지원을 위한 우리 기업이 함께 있었다. 자이툰부대와 바그다드에 있는 미군의 연락을 담당하는 연락단도 파견돼 생활을 같이했다.

영내에 설립된 자이툰공원도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다. 공원에는 이라크 지도에 맞춰 각각의 기념물을 세웠다. ‘자이툰’이란 글자 조형물이 있는 곳은 바그다드, ‘평화·재건’이라는 글이 새겨진 탑이 자리한 곳은 에르빌이다.

임무 종결식도 마치고, 웬만한 업무도 끝났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강도를 더 높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경계 임무다. 신속대응군이라 불리는 QRF(Quick Response Force)는 매일 외곽을 순찰하며 혹시라도 있을 사고를 방지했다. 장병들이 망루에서 매의 눈으로 경계를 선 덕분에 나머지 인원은 영내에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10일 영내가 부산스러워졌다. 본격적인 철수가 시작된 것이다. 공군 C-130 수송기를 타고 쿠웨이트로 이동해 미군 기지인 버지니아 캠프에서 정비한 뒤 전세기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하기식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는 장병들.
하기식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는 장병들.



사실 해외 파병부대는 1진과 마지막 진이 가장 힘들다. 1진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하는, 그야말로 ‘맨바닥에 헤딩’을 해야 한다. 반대로 마지막 진은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거둬야 한다. 꾸준히 잘해왔어도 마지막에 실수하면 그동안 좋았던 이미지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자이툰부대가 떠나면 주둔지 시설과 장비는 쿠르드 지방정부가 접수·사용하게 된다. 자이툰부대 장병들은 함께 떠나지 못할 물자는 공여하고, 그들이 읽지 못할 한글 간판은 철거하는 등 마무리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그런 중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원래 계획은 쿠웨이트에서 공군 다이만부대의 C-130 수송기를 타고 귀국하는 코스였다. 쿠웨이트·인도(뭄바이)·태국(우타파오)·필리핀(마닐라)을 거쳐 귀국하는 약 6000㎞ 거리, 순수 비행시간만 23시간에 이르는 4일의 여정이었다. 그런데 수송기에 함께 탈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어서 그렇게 결정한 듯했다.

긴 일정과 시끄러운 비행 소음에 시달리지 않고 하루 만에 편하게 갈 수 있다니. ‘취소’ ‘불허’라는 말이 달콤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감사할 일. 한편으론 아쉬움도 있었다. 그런 희귀한 기회와 경험을 못 하게 됐으니.

11일 오후에는 자이툰부대 환송행사가 칸자르 호텔에서 열렸다. 현지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호텔은 산 정상부에 있다. 이곳에서는 지대가 높을수록 환영받는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궁을 비롯한 주요 인사의 거주지는 해발 1000m 이상 고지에 몰려 있다.

환송행사에는 하찬호 주이라크 대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 석유공사 등 에르빌에 진출한 한국 기업체, 쿠르드 정부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호텔 리셉션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여기저기 그동안 쌓은 도타운 정을 나누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식사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15가지의 음식과 과일이 뷔페로 차려졌지만, 서서 먹는 구조라 편하고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다. 결국 숙소로 돌아와 컵라면을 끓여 허기진 배를 채웠다.

수송기로 옮길 짐을 싸는 자이툰부대 장병들.
수송기로 옮길 짐을 싸는 자이툰부대 장병들.

 

쿠웨이트로 이동하기 위해 C-130 수송기에 오르는 장병들.
쿠웨이트로 이동하기 위해 C-130 수송기에 오르는 장병들.

 

항공기 탑승에 앞서 검문검색은 필수.
항공기 탑승에 앞서 검문검색은 필수.



13일 드디어 쿠웨이트로 향하는 날이 됐다. 박선우 부대장을 비롯한 주요 참모들이 같이 이동했다. 떠나기 전 부대장 주관으로 국기 하기식이 열렸다. 파병 이후 4년 3개월을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태극기가 내려지는 걸 보니 왠지 가슴이 짠했다. 불과 2주밖에 지나지 않은 나도 그러한데, 6개월 이상을 보낸 장병들의 느낌은 더 남달랐으리라. 

박 부대장은 특이한 이력을 보유했다. ‘사단장 3번 역임’이라는 진기록을 가진 것. 2번도 드문데 3번이라니. 그는 육군26사단장으로 있다가 이라크 평화재건사단장(자이툰부대)이 됐다. 귀국해서는 37사단장을 맡았다. 이는 직위 이동이 빈번했던 6·25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인사라고 알려졌다. 그는 후일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대장)을 지냈다.

C-130 수송기에 올라 장병들의 얼굴을 보니 한결 편안해 보였다. 이제는 부담에서 벗어나 정해진 일과에 맞춰 생활하고 개인 정비를 하면서 복귀를 기다리면 된다.

2시간여의 비행을 마치고 쿠웨이트 공항에 내렸다. 다시 차량에 탑승해 30여 분을 달리니 버지니아 캠프가 보였다. 입구는 TCN LANE과 NTV LANE 두 갈래로 나뉘었다. 각각 통행하는 사람이 달랐다. TCN은 캠프 안에서 일하는 노무자들이 이용하는 통로였다. 이곳은 차량 검색은 물론 신체검사까지 했다. NTV는 군인과 군 관계자, 신분증 확인만으로 통과다. 우리는 NTV를 통과해 버지니아 캠프에 입성했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갈 날이 성큼 다가왔다.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