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 참전…해야 할 일 했을 뿐”

입력 2024. 09. 06   16:50
업데이트 2024. 09. 0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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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재향군인회 여군 창설 74주년 기념행사
6·25 참전 여군 등 230여 명 참석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여군 창설 74주년 기념행사’에서 6·25전쟁 참전 여군 9명(앞줄)이 한기호(뒷줄 왼쪽 넷째) 국회의원과 신상태(뒷줄 오른쪽 넷째) 향군회장 등 주요 참석자들과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여군 창설 74주년 기념행사’에서 6·25전쟁 참전 여군 9명(앞줄)이 한기호(뒷줄 왼쪽 넷째) 국회의원과 신상태(뒷줄 오른쪽 넷째) 향군회장 등 주요 참석자들과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군복을 입고 나가 싸울 겁니다.”


노병들의 입에서는 마치 사전에 짜기라도 한 듯 같은 대답이 나왔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만난 6·25참전 여군 9명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자부심을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은 이날 서울시재향군인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여군 창설 74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여성의 몸으로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한 참전용사는 “조국이 위기에 놓여있는데 남자, 여자가 어디 있냐”고 반문했다. 여러분의 노력 덕분에 여군이 다양한 곳에서 차별 없이 활약하고 있다는 말에는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이들이 걸어온 여정을 살펴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지금의 우리 군을 만든 역사가 된다.

안상정 참전용사는 6·25전쟁 중인 1953년 간호장교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해 전상 환자를 밤낮없이 간호했다. 1964년에는 베트남 파병을 자처해 또 한 번 태극기를 달고 전장에 나갔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화랑무공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다. 1978년 중령으로 퇴역한 후에는 지역 사회에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여군 후배들이 잘하고 있다”며 “당당하게 군인으로서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해달라”고 당부했다.



1953년 여자의용군 3기로 군복을 입은 최선분 참전용사는 1956년 장교로 임관해 안 참전용사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에 파병갔다. 1980년 중령으로 퇴역한 뒤에는 육영재단, 문화부 등에 근무하며 군에서 쌓은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6·25전쟁과 베트남 파병 시절을 언급하면서 “전쟁의 참혹함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을 절대 알 수 없다”며 “그러한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우리 여군 후배들이 최선을 다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들의 노력을 발판 삼아 여군의 위상과 역할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2014년 전 병과 개방 이후 여군의 비율은 계속 높아졌고 올해 6월 말에는 전체 군 장교·부사관 중 여군 비율이 창군 이래 처음으로 10%대를 넘어섰다.

 6·25전쟁,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안상정 참전용사가 대한민국 여군 창설 74주년행사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안 참전용사는 두번의 참전으로 화랑무공훈장을 2번이나 받은 전쟁영웅이다. 이경원 기자
 6·25전쟁,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안상정 참전용사가 대한민국 여군 창설 74주년행사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안 참전용사는 두번의 참전으로 화랑무공훈장을 2번이나 받은 전쟁영웅이다. 이경원 기자



이날 행사는 이러한 여군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신상태 향군회장과 이병무 서울시향군회장, 이서인 향군여성회장,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기호 의원, 구미경·김용호 서울시의회 의원, 류대창 서울시 민방위담당관 등 23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내빈 소개, 국민의례, 6·25전쟁 참전 등 여군 역사를 담은 동영상 시청, 축사, 오찬, 기념 공연 순으로 이뤄졌다. 

이병무 서울시재향군회장은 대회사에서 “여군의 역사는 74년 전 6·25 전쟁 발발로 국운이 위태로울 때 여자의용군 교육대 창설로 시작됐다”며 “(여군들은 전역 후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국민에 큰 신뢰를 줬다”고 말했다.


신상태 향군회장은 축사에서 “국가 안보와 생명을 지키는 일에 남녀 구분은 있을 수 없다”며 “저출산, 고령화로 안보자원이 고갈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여성인력을 최대한 우대하고 활용해 국가발전과 국토방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서인 향군여성회장은 첫 여성 심해잠수사인 문희우 해군 중위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여기에 앉아계신 대다수의 예비역 여군들도 현역 시절에 육·해·공군, 해병대에서, 모든 병과에서, 문 중위와 같은 최초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최초라는 꼬리표를 미래의 이정표로 삼아 대한민국을 지키는 강한 힘, 국방여군의 초석이 됐다”며 “향군여성회는 여군 예비역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되고, 현역 여군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기호 의원은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간부 중 여군의 비율이 10.8%, 1만9200명이 됐다”며 “심해잠수사, 잠수함승조원, KF-21전투기 시험조종사, 육군 저격수까지 여군이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군 비율은 오는 2027년까지 15%로 확대된다”면서 “이제는 남녀 구분 없이 오직 대한민국 군인, 전우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군 창설일은 1950년 6·25전쟁 당시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 예속으로 ‘여자의용군교육대’가 창설된 9월 6일을 기념일로 삼는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발간한 『6·25전쟁 여군참전사』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참전한 여군은 24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임채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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