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발한다, 탈북민 구하기 위해 넘어야 할 두 개의 線을 향해…

입력 2024. 08. 21   17:24
업데이트 2024. 08. 22   09:35
0 댓글

길을 묻다 - 17.  다큐 ‘비욘드 유토피아’ 주인공 김성은 갈렙선교회 목사

사선…1만2000㎞ 목숨 건 여정·살해 협박
시선…돈벌이·신앙심 강요 근거 없는 비난

사선
첫 탈출 도운 사람 北 중대장 출신 아내
한국 데려온 모든 길, 탈북 루트 돼
2000년부터 1000여 명 도와
생사 넘나드는 과정 다큐 해외서 주목

시선
7세 아들 잃고 어머니는 中 감옥 생활
목에 쇠못 6개 박고 쓸개까지 제거
수차례 죽을 고비보다 힘든 건 편견
아들 죽음 헛되지 않게 다시 나선다

전선
북한 실상 바로 알기 좌우 논리 불필요
동정하지 말고 진실에 다가가야
선배들이 목숨으로 지킨 조국의 자유
군인들, 영화 통해 다시 한번 느끼길…

 

“오늘도 (북한에서) 출발한다, 탈북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 건 탈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탈북한 이는 100만여 명. 이 중 3만5000여 명만 한국에 살고 있다. 비율로 따지면 3.5%. 90만여 명은 도중에 잡혀 북송됐거나 죽었다. 김성은 갈렙선교회 목사는 2000년부터 탈북을 돕고 있다. 지금까지 24년 동안 1000여 명을 탈북시켰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중국부터 베트남, 라오스, 태국까지 장장 1만2000㎞를 거쳐야 한다. 자유를 위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위법이다. 그만큼 큰 위험이 따른다. 김 목사의 어머니는 중국에서 탈북민(북한이탈주민)을 돕다가 감옥에 갔고, 그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중국에 입국할 수조차 없다. 큰 부상도 입었다. 목에는 쇠못 6개를 박았고, 쓸개가 파열돼 제거수술도 받았다. 일곱 살 된 아들도 잃어야 했다. 웬만한 신념으로는 할 수 없다. 생사를 넘나드는 그의 여정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가 지난해 1월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인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객석은 충격에 빠졌다. 오로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탈북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참했고 참담했다. 영화는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상영되며 극찬받았다.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유력 후보와 제77회 영국 아카데미(BAFTA) 다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의 이목이 그에게 쏠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한국의 관심이 아쉽다고 했다. 글=송시연/사진=양동욱 기자


- 탈북을 돕게 된 계기가 있나.

“24년 전 선교 활동을 하던 중 두만강에서 ‘꽃제비(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에서 떠돌며 구걸하는 북한 아이들을 일컫는 말)’들을 봤다. 7~8세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도저히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할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두만강을 따라 떠내려오는 시체도 부지기수였다. 탈북하다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중국인은 아무렇지 않게 시체들을 바라봤다. 북한 쪽으로 다시 돌아가라며 긴 막대기로 밀기도 했다. 단지 배가 고파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시체가 돼 두만강을 떠돌고 있었다. 중국인은 자국민이 아니라고 북한 쪽으로 시체를 밀었고, 북한은 ‘조국을 배신한 것들은 죽어도 싸다’며 방치했다. 끔찍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도와야 했다.”


- 첫 탈북을 도왔던 사람이 지금의 아내라고 들었다. 

“아내도 탈북민이었다. 북한군 중대장 출신이다. 아내의 아버지는 과학자였다. 독일과 이집트로 유학도 갔다 온 엘리트였다고 한다. 그런 사람도 굶어 죽었다. 그래서 살고자 탈북을 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살 수 있게 돕고 싶었다. 그때 아내를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갔던 모든 길이 탈북 루트가 됐다. 그 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탈북민을 돕고 있다.”


- ‘비욘드 유토피아’의 반응이 뜨겁다. 

“사실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지 몰랐다. 영화에는 2019년 11월 탈북한 한 가족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노씨 부부와 80세 노모, 두 딸은 단지 밥 한 끼를 배부르게 먹고 싶어 북한을 탈출했다. 중국과 베트남, 라오스를 거쳐 태국까지 장장 1만2000㎞의 목숨을 건 여정이었다. 밀림만 12시간을 건넜다. 북한에 남겨 둔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려던 탈북민 이소연 씨의 사연도 보여 준다. 이씨의 아들은 어렵게 북한을 탈출했지만 결국 중국에서 강제 송환당해 모진 고문을 겪었다. 20여 년 전 북한을 탈출한 이현서 씨의 증언도 있다.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란 책을 쓴 그는 영화에서 북한의 실상을 낱낱이 폭로했다.”

 

 



- ‘비욘드 유토피아’를 비롯해 탈북민의 실상을 알리는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제작해 왔다. 총 10편이다. 이유가 있나. 

“탈북민의 인권에 관한 문제다.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을 탈출했다고 끝이 아니다. 여성들은 중국에서 성매매업소에 끌려가거나 농촌에 팔려 가기도 한다. 내가 구출했던 여자아이는 열네 살이었는데, 예순여덟 살 먹은 중국인에게 시집가 아이도 낳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탈북자 신분이어서 하소연도 못 한다. 못된 브로커를 만나 돈만 빼앗기고 중국에서 북송되는 경우도 많다. 북송되면 극악한 고문을 당한다. 탈북민들은 북송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한다.”


- 그렇게 1000여 명을 탈북시켰다. 아들을 잃었고, 어머니는 중국에서 감옥에 가야 했다. 몸도 성한 곳이 없다.

“아들이 일곱 살이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잊으려 애쓰고 있다. 어머니도 중국에서 이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갔다 오셨다. 나는 두만강 얼음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졌다. 목에 쇠못 6개가 박혀 있다. 밀림을 헤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쓸개가 파열돼 제거수술을 받기도 했다. 허리수술은 3번이나 했다. 어렵고 힘든 일이다. 처음 아내를 한국에 데려올 때나 24년이 흐른 지금이나 똑같다. 아니다. 탈북을 원하는 사람은 늘고 있는데, 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탈북도 어렵고 탈북을 도와주는 것도 위험해졌다. 희생이 따르는 법이다. 누군가의 자유 뒤에는 반드시 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른다.”


- 목숨을 위협하는 협박도 숱하게 받았다고 하던데. 

“나는 중국에 못 간다. 12~13년 됐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니 중국 정부에서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북한 보위부라고 하는 곳에서 협박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실제 국정원에서 테러가 의심된다며 상황이 심각하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 두려운 것은 없나. 어떤 것이 가장 힘들게 하나.

“근거 없는 비난이다. 몸을 다치고, 살해 협박을 당하고. 그런 일들은 이제 이골이 났다. 그런데 근거 없는 비난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 탈북민을 이용해 돈벌이한다느니, 탈북민에게 신앙심을 강요한다느니, 다큐멘터리로 탈북 루트가 공개됐다느니. 실상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 내는 공격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 지칠 법도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는 이유는.

“우리 아들은 못난 부모를 만나 먼저 하나님 곁으로 갔다. 아들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면서 약속했다.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많은 탈북민을 살리겠다’고. 그 뒤로 밀림을 걷고, 메콩강을 건너 살고 있다.”


- 우리가 ‘비욘드 유토피아’를 봐야 하는 이유를 말해 달라. 

“정말 동시대를 사는 북한의 모습이 맞는지, 저들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비욘드 유토피아’를 본 사람들이 묻더라. 특히 해외 반응이 적극적이다.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묻는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영화를 봤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북한을 욕하고 넘겨 버린다. 언제라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지만,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듯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히려 좌우진영 논리로 치부하며 무시한다. 많이 봐야 한다. 우리의 문제다. 북한의 실상이 어떤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불쌍하다고만, 이상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북한이 어떻게 해서 저렇게 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진실에 다가가는 일이다.”


- 특히 군인들이 봐야 한다고 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피로 지켜 낸 나라다. 그들의 목숨으로 지켜 낸 자유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없이 저절로 이뤄진 것은 없다. 우리 선배들이 지켜 낸 조국이 북한과 얼마나 다른지 봐야 한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 나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될 수도 있었다. 또 언제라도 나의 가족이 처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안 되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청춘을 그냥 보내는 게 아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은 굉장히 숭고한 일이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 당부의 말이 있나.

“중국에 가면 이소연 씨 같은 사람이 널려 있다. 오늘도 또 다른 노씨 가족이 북한을 탈출한다. 탈북민이 처한 상황은 심각한 인권 문제고, 나아가서는 통일의 문제다. 혼자서 하기는 힘든 일이다. 많은 분의 공감과 도움이 필요하다.”

※ 비욘드 유토피아’는 추석 연휴 KFN TV에서 방송될 예정입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