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은 왕자

입력 2024. 08. 07   15:46
업데이트 2024. 08. 0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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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식 한국기계연구원 국방기술 연구개발센터장
정일식 한국기계연구원 국방기술 연구개발센터장

 


오스카 와일드의 걸작 동화 『행복한 왕자』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남을 돕는 왕자와 제비의 감동적 이야기를 풍자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겨울이 돼 따뜻한 이집트로 떠나야 하는 제비가 마을 광장의 높은 탑 위에 있는 왕자 동상의 부탁을 받고 동상을 장식한 ‘금’과 칼자루에 박힌 ‘루비’, 심지어 ‘사파이어’로 만든 눈까지 떼어 내 도와준다는 스토리다. 왕자는 제비의 도움으로 아픈 아이가 있는 가난한 재단사, 어머니가 병들어 고민하는 소년, 성냥팔이, 불쌍한 할아버지,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 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국내외적으로 대한민국 무기체계에 쏠린 관심과 기대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새로 획득하는 무기체계 성능의 신뢰와 가성비에 기반한 방산수출, 이른바 ‘K방산’의 약진이 최근 대한민국 군수 분야의 주목받는 ‘수면 위’ 모습이라면 ‘수면 아래’엔 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운용유지에 관한 군수의 중요한 사안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 군이 운용하는 무기체계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에서 도입한 장비·부품이 무기체계의 총수명주기 동안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운용유지 단계의 일반부품 국산화율’을 향상하는 문제다.

최근 정부가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국산화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는 등 부품 국산화를 적극 장려하고 있음에도 각 군에서 추진하는 운용유지 단계의 일반부품 국산화 성공률은 소요 대비 낮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해외 도입 무기체계의 부품 조달이 제한될 경우 즉각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문제가 된 장비의 부품을 다른 장비에서 빼다 사용하는 ‘동류전용(同類轉用)’ 형태로 전비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많아지면 장비 고장률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전비태세 완비에도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게 된다.

운용유지 단계의 일반부품 국산화 비율을 향상하고자 그동안 다각도로 연구·검토가 이뤄져 왔고, 어느 정도 개선된 부분도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정책적인 의사 결정과 지속적인 추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분야가 여전히 답보상태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방산수출과 연계된 체계개발 단계의 부품 국산화가 ‘빙산의 일각(一角)’이라면 운용유지 단계의 일반부품 국산화는 물밑에 있는 ‘빙산의 근간(根幹)’과 같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동화 속 왕자는 자신을 번쩍번쩍 치장하고 있는 금과 루비와 사파이어를 떼어 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주면서 행복해한다. 마침내 주물공장으로 보내져 납덩이 심장만 남았지만, 여전히 행복한 왕자로 존재했다. 그러나 운용 중인 무기체계의 부품을 불가피하게 ‘동류전용’으로 떼어 줘야 하는 운용부대 입장은 ‘행복하지 않은 왕자’일 수밖에 없다.

운용유지 단계의 일반부품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개발을 담당할 업체의 참여를 확대시키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먼저 업체의 경제성 향상을 위한 투자비용 보존과 단가를 보상해야 한다. 또 부품 국산화 품목 기술자료를 제공하고, 개발된 부품의 시험평가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국방부를 비롯해 각 군과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기관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큰 틀에서의 의사 결정과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 협업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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