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17. 2005년 중동 3개국 파병 현장을 가다 -이라크 자이툰부대·쿠웨이트 다이만 부대
선글라스·복면에 총 든 군인 은행 출입
외환은행 에르빌 지점서 만난 이색 풍경
쿠웨이트 알리알살렘 공군기지로 이동
2004년 10월부터 다이만부대 전개 주둔
자이툰부대와 동맹군에 운용 물자 수송
무사고 비행으로 이라크 자유작전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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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부대에 와서 가장 힘든 것은 아무래도 기사 송고였다. 한국과는 6시간 차. 숙소로 돌아오면 오후 9시. 씻고 잠깐 쉬다 보면 11시가 훌쩍 넘는다. 한국시간으로는 각각 오전 3시, 5시다. 또 오전 6시에 일어나 준비해야 하니 수면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곳에서는 시간 계산이 쉬웠다. 인도에서는 3시간 30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4시간 30분의 시차가 있었다.
그리고 해외토픽감 하나. 만약 검은 선글라스에 복면을 쓴 사람이 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은행 강도가 쳐들어 왔다며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오히려 환영 인사를 받는다. 있을 수 없을 법한 일이 일어나는 곳은 바로 외환은행 에르빌 지점이다.
에르빌 지점은 장병들의 예금과 부대 운영 비용, 현지 부대 공사나 물품 납품 업체들의 송금, 국제기구와 우리나라의 이라크 원조 자금 등을 위한 금융거래를 위해 2004년 11월 개설됐다. 근무 직원은 지점장과 과장 단 2명뿐. 외환은행 해외지점 중 가장 단출하다.
부대 영내지만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장병들은 총을 항상 소지해야 한다. 모래바람과 뜨거운 햇빛 때문에 선글라스와 복면은 필수다. 그렇기에 에르빌 지점에서 총과 복면을 한 장병을 보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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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다이만부대
12월 29일 오후 2시. 기자단을 실은 C-130 수송기가 에르빌공항을 힘차게 이륙했다. 저고도·고속 전술기동이 시작됐다. 급격한 상승과 기동, 급회전까지…. 그래도 지난 27일 착륙하면서 경험한 덕분인지 참을 만했다. 뱃속도 가볍게 소화될 정도로 채워놨다. 학습의 효과다.
다이만부대가 주둔하는 쿠웨이트 알리알살렘 공군기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격납고였다. 1차 이라크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다. 격납고는 천장이 뻥 뚫린 것이 영 흉물스러웠다. 한 곳만 그런 게 아니다. 단 하나의 격납고만 제외하고 모두 이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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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은 죄수들이 격납고 한 곳에 수용돼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격납고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정밀 폭격해 이 모습을 만들었다.
격납고 건설을 책임졌던 프랑스는 완공 직후 어떤 공중 공격에도 안전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미군은 2000파운드에 달하는 폭탄으로 이를 파괴해 프랑스를 무색하게 했다.
다이만부대는 2004년 10월 12일 이곳에 전개한 뒤 채 보름도 안 돼 작전을 개시했다. 지형과 기상 등을 숙지하기 위해 수개월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던 다른 동맹군에 비해 놀랍도록 빠른 시간이었다. 특히 첫 수송은 감격적이었다고 한다. 운용 물자를 미군의 항공 수송에 의존하던 자이툰부대장 황의돈 육군소장은 우리 수송기가 에르빌에 도착하자 기쁨의 눈물을 보였다는 후문도 있다.
다이만부대는 이후 100회 출격, 전투 임무 수행 2000시간 등 자이툰부대와 동맹군에 대한 수송 지원을 차례차례 해 나가며 무사고 비행기록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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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막에서 항공기 관리를 위해 보호 덮개를 씌웠다. 미군이 1주일에 한 번씩 엔진을 교체하는 것과 달리 다이만부대는 무사고를 자랑함으로써 동맹군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완벽한 준비와 성공적인 임무 수행으로 이라크 자유작전에 이바지한 다이만부대. 우리 공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국위선양·국익증진에 도움이 되겠다는 것이 다이만부대 장병들의 결의였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그 다짐은 이미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처음이 불운이었다면 마지막에라도 행운이 찾아와야 하는 법. 하지만 하늘은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쿠웨이트에서 일행은 둘로 갈라졌다. 일반항공권을 예약한 기자들, 정부항공운송의뢰(GTR·Government Transportation Request)로 표를 끊은 국방부 장교들과 나로. 항공기의 연착·결항 등으로 바뀌는 일정에 따라 GTR 항공권도 변경되다가 끝내는 취소됐다. 결국 GTR 쪽은 쿠웨이트에서 하루 더 머물고 다음 날 인천으로 향하기로 했다. 일반항공권 쪽은 예정대로 태국 방콕으로 가서 하루 휴식을 취한 뒤 귀국했다.
그 뒤 나는 저주에 걸렸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특정 팀이 우승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밤비노의 저주’ ‘염소의 저주’ 같은 징크스에. 이른바 ‘방콕 저주’다. 이후 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쉽게, 가장 많이 찾는 태국에 단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사진=다이만부대 제공
다이만부대는
다이만부대는 베트남전쟁 당시 55항공단(은마부대)과 걸프전쟁 때의 56항공단(비마부대), 9·11 테러 이후 대테러전 수행을 위한 57항공단(청마부대)에 이은 공군의 네 번째 해외 파견부대다. 쿠웨이트에 전개해 자이툰부대와 다국적군에 군수 보급 및 병력을 공수하는 전투근무지원 임무를 담당했다. 4년3개월의 임무 수행 기간 병력 4만4000여 명과 군수물자 4600여 톤을 수송했다. 지구 둘레 86바퀴에 해당하는 340만㎞를 비행하며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 다음 주부터는 2007년 육군사관학교 생도와 함께한 중국 탐방 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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