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S] 기억의 공유·감동의 전이…전우애는 편지를 타고

입력 2024. 08. 02   16:31
업데이트 2024. 08. 02   16:51
0 댓글

TYS (Thank You for your Service) ⑩ 육군9보병사단 독수리여단 불사조대대-6·25전쟁 참전용사 명경섭 옹

장병들, 참전 영웅 존경 담은 손편지
감격한 명경섭 옹, 부대서 특별 강연
시간 초월한 의지·나라사랑 공감대

영화 ‘시월애’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우체통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는 남녀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월드스타 이정재와 전지현의 풋풋한 청춘스타 시절을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훗날 미국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죠. 갑자기 이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과거와 현재가 편지로 연결되는 스토리가 현실에서, 그것도 군부대에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TYS(Thank You for your Service)의 열 번째 주인공은 육군9보병사단 독수리여단 불사조대대 장병들과 6·25전쟁 매봉·한석산전투 참전용사인 명경섭 옹입니다. 

장병들의 마음을 담은 롤링페이퍼 태극기를 명경섭 옹에게 전달하는 모습.
장병들의 마음을 담은 롤링페이퍼 태극기를 명경섭 옹에게 전달하는 모습.


73년의 세월 넘어 편지로 이어진 선후배 

지난달 18일 육군9보병사단 독수리여단 불사조대대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6·25전쟁 매봉·한석산전투 참전용사인 명경섭 옹입니다. 장맛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후배 장병들을 만나려고 친히 부대를 찾은 선배 전우를 향한 우렁찬 경례소리가 부대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번 만남은 대대 장병들의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됐습니다. 장병들은 지난 6월 25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린 제73주년 매봉·한석산전투 전승기념 및 추모행사에 참석한 생존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은 손편지를 작성했습니다. 행사를 함께한 21명과 개별적으로 희망한 33명 등 총 54명의 장병이 5명의 선배 전우에게 감사와 존경의 편지를 쓴 것이죠.

부대의 동의를 받아 병사들의 편지 전문을 일부 공개합니다.

“선배 전우분들께.

백마! 9사단 독수리여단 불사조대대 오규봉중대에서 군수계원으로 복무 중인 병장 최우태입니다. 대한민국이 현재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후방이든 전방이든 모두 하나의 목적, 대한민국 수호를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불철주야 상시 근무를 하면서 군 생활을 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부쩍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군대에서 하는 것이 더 각별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과거에는 환경이 더 열악했을 텐데도 변함없이 근무하셨을 선배 전우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매봉·한석산전투 선배 전우분들께.

백마! 9사단 독수리여단 불사조대대 김종오중대 상병 전종석입니다. 전투 중 겪으셨을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선배님께서는 한순간도 나라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놓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배님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평화롭고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선배님들께서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소중히 여겨 그 뜻을 기리고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마!”

박진철(중령) 대대장은 군단으로부터 행사에 참석하신 생존 참전용사의 명단을 받아 개별 택배로 자택에 장병들의 마음이 담긴 태극기와 편지를 보냈습니다. 명옹은 장병들의 마음에 크게 감동해 대대를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부대 방명록을 작성 중인 명경섭 옹.
부대 방명록을 작성 중인 명경섭 옹.


사실 부대로선 생각지 못했던 전개. 그러나 박 대대장은 장병들이 정신적 대비태세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 방문 때 특별강연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흔쾌히 응한 명옹 덕분에 이날 특별정신전력교육이 성사됐습니다. 

명경섭 옹이 방명록에 남긴 문구.
명경섭 옹이 방명록에 남긴 문구.


73년 전 그날의 기억 공유한 선후배 

매봉·한석산전투는 1951년 4월과 5월에 걸쳐 미 8군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춘천~인제~미시령~속초를 잇는 미주리선을 향해 공세를 펼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당시 국군 9보병사단 30연대가 나흘 밤낮으로 적과 혈전을 벌여 한석산 남쪽 고지였던 매봉과 한석산을 연이어 점령하면서 승리한 대표적인 산악전투 사례로 꼽힙니다. 당시 승전을 이끈 9사단 30연대가 바로 지금 독수리여단의 모체입니다.

이날 강연은 장병들이 수십 년 전 매봉·한석산전투 현장으로 돌아가, 마치 전투원이 된 것 같은 생생한 경험담을 느낄 수 있게 구성됐습니다. 아직도 전장의 모습을 기억하는 명옹이 ‘살아 있는 역사교과서’처럼 그 역할을 다했습니다.

명옹은 강연이 마무리될 즈음,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군의 일원으로서 장병들이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북한은 언제든 기습적으로 도발·침투해 올 수 있다”며 “철저한 대비태세를 갖추고 다시는 동족상잔의 전쟁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73년 전 당시 용감하게 맞서 싸운 9사단 30연대의 뒤를 이은 독수리여단 장병들의 가슴에도 큰 울림이 퍼졌습니다. 강연을 들은 안영권중대 김민수 상병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셨던 선배 전우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선배 전우들께서 이뤄 낸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이제는 저희가 지키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편지로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주선한 박 대대장은 “선배 전우의 생생한 전투 경험을 전해 듣는 좋은 기회를 갖게 해 주신 명옹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장병들의 정신적 대비태세 확립과 복무의욕 고취를 위해 이처럼 살아 있는 정신전력교육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후배 장병들 앞에 서서 강연한 명옹도 뜻깊은 하루였다며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습니다.

“장병들의 편지를 받았을 때 너무나도 감격했습니다. 사실 지금 내 나이에 지팡이를 짚고 겨우 갈 정도로 방문하기 어려운 부대인데…. 그래도 젊었을 때를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방문하니 좋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도 장병들이 도열해 환영해 주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장병들은 마지막으로 태극기에 빼곡하게 쓴 롤링페이퍼를 전달하면서 다시 한번 감동을 안겼습니다. 명옹은 방명록에 이 문구를 남기면서 후배 장병들을 응원했습니다. “불사조대대장, 박진철 대대장 이하 전 장병이 국토 방위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격려합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군복을 입고 나라와 국토·국민을 지키는 마음은 같았던 선후배 장병의 훈훈한 만남이었습니다.   배지열 기자/사진=박인서 중위 제공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