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민의 연구소(연예를 구독하소) - 드라마 ‘감사합니다’
감사팀, 드라마 전개 위한 ‘소품’서 극 중심부로
오피스물·수사물 교차점서 공감보다 통쾌·짜릿
냉철한 팀장 신하균·감성 사원 이정하 이해 과정
비리 색출로 건전한 상호작용 지켜려는 의지…
이성과 감성·일과 일상 사이 ‘균형’ 통찰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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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드라마 속에서 존재했던 ‘감사팀’은 커다란 상자를 들고 갑자기 들이닥쳐 누군가의 컴퓨터와 서류 등을 쓸어담아 빠르게 퇴장하는 역할에 불과했다. 이는 때때로 주인공이 처한 위기 상황을 고조시키거나, 혹은 빌런의 몰락을 표현할 경우 별다른 설명조차 필요 없는 보편적 장치로 활용되곤 했다. 그 모양새가 압수수색을 위해 들이닥치는 ‘검사’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철저히 회사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그 존재가 극명하게 구분됐다. 이처럼 작품 전개를 위한 도구의 일환쯤으로 여겼던 ‘감사팀’이 극의 중심부로 들어와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는 작품이 바로 tvN 토·일드라마 ‘감사합니다’이다. ‘감사’라는 단어의 중의성으로 인해 제목을 듣는 순간 오해를 빚어낼 수도 있는데, 이는 다분히 제작진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 엿보인다. 드라마 타이틀로 사용된 ‘감사’(監査)라는 단어에 우리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자발적으로 확인시킨 후 비로소 작품에 발을 들이게 만든 셈이니깐.
‘감사합니다’ 제작진은 드라마의 공식 수식어로 ‘오피스 클린 활극’이라는 표현을 채택했다. 감사팀장 신차일(신하균)을 비롯한 주인공들의 활동 범위가 JU건설 혹은 협력업체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확실히 ‘오피스 드라마’ 범주에 들어 있긴 하다. 다만 ‘미생’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 오피스물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다’는 형태의 공감대를 형성해 관심을 단기간에 붙드는 것과는 자못 다른 분위기다. 오히려 ‘감사팀’이라는 특수 부서에 속한 이들의 입장과 태도는 여느 장르물에서 흔히 보이는 경찰이나 검찰, 혹은 변호사처럼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역할 쪽에 더 가깝다. 이로 인해 오피스 드라마가 부여하는 특유의 공감대는 감소했지만, 수사물처럼 사건 해결을 통해 얻는 짜릿함과 통쾌함을 시청자에게 안겨줄 수 있게 됐다.
개인의 비리와 횡령을 파헤치고 회사 부정부패를 막아 조직의 정의를 실현하는 듯한 감사팀의 존재는 단연 도드라진다. 하지만 감사팀이 지닌 그 태생적인 한계는 반드시 존재한다. 사회적 ‘옳음’ 혹은 ‘정의’가 ‘회사의 이익’과 상충될 경우다. 구시대적 악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윤을 위해서는 눈을 감고, 공정성에 위배되지만 회사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면 감행해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감사합니다’가 여느 작품과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지점이다. 회사에 고용된 직장인으로서의 ‘감사팀’이 통상적인 상식의 옳고 그름과 회사의 이익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과연 어느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 하는 근본적인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핵심 메시지에 도달하기에 앞서 제작진이 차려놓은 에피타이저는 상당히 풍성하다. 새롭게 부임한 냉철한 이성파 팀장 신차일과 감성파 신입사원 구한수(이정하)를 JU건설 감사팀에서 조우하게 만듦으로써 자연히 생겨나는 불협화음을 먼저 보여주고, 이후 시간을 들여 서로를 이해하고 단계적으로 함께 성장하는 서사로 나아간다. 이미 연기력 면에서 수도 없이 검증된 베테랑 신하균과 디즈니+ 시리즈 ‘무빙’으로 이제 막 라이징스타로 부상한 신예 이정하를 한데 묶어둔 것 역시 이러한 극의 구조와 묘하게 연결된다.
클리셰 같은 성장 스토리에 변주를 주는 것은 Z세대를 대표하는 듯한 윤서진(조아람)의 존재다. 그녀 역시 구한수와 마찬가지로 감사팀의 신입사원이지만, 모든 걸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구한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신차일과 구한수의 갈등이 단순히 세대나 지위가 만들어 낸 1차원적 갈등은 아니라는 부연의 역할을 수행한다. 더욱이 윤서진은 작중 최대 빌런처럼 묘사된 JU건설 부사장 황대웅(진구)의 조카라는 사실을 감추고 있는데, 이 역시 긴장감을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사건을 다루며, 그때마다 새 얼굴을 등장시키는 것이 만들어내는 볼거리도 흡족하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배우 정희태, 정석용, 정인기, 김홍파, 정동환, 이신기, 홍수현, 조한철, 김수진, 신재하, 이중옥 등의 존재는 그 자체로 작품의 밀도와 완성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강조했다.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 횡령과 비리를 색출하고 처단하는 감사팀의 역할은 조직 내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상이다. 감사팀이 부정부패를 제거해 조직 내 신뢰와 효율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야말로 피터 드러커의 경영 철학을 반영하는 행위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원활한 상호작용이 어떻게 조직의 성공에 기여하는지를 보여주며, 건강한 조직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신뢰와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전혀 다른 성향의 감사팀 내 사람들은 내부 갈등을 봉합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그 자체로 건강한 상호작용의 예로써 역할한다. 신차일은 구한수의 감성적 접근을, 구한수는 신차일을 통해 이성적 사고의 중요성을 새긴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는 언제나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
‘감사합니다’는 단순한 오피스 드라마를 넘어 현대사회의 문제를 조명하고 인간관계와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품으로도 확장된다.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업무나 일상에서 얼마나 이성과 감성이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리고 있는가? 이러한 균형은 우리의 일상과 조직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업무와 사회적 상식이 부딪힐 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자문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통해 단순한 재미를 넘어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게 하고, 나아가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감사합니다’는 시청자들에게 충분한 여운을 남기며, 우리 모두에게 균형 잡힌 삶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몫을 수행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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