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S (Thank You for your Service) ⑨ 육군55보병사단 백혜진 소령
출산과 진급, 행복했던 순간
갑자기 찾아온 위암
든든한 남편 있었기에 이겨내
“아프고 나선 살아 있음에 감사
긴 여정에서 잠시 쉬어간다 생각해
나는 오늘도 여행 중이다”
보통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곤 합니다. 뜻하지 않게 난관을 마주치기도 하고,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귀인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자칫 그 여행을 멈출 뻔했다가 위기를 극복한 육군 간부를 소개합니다. 그런 그의 곁에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여행 메이트로 또 다른 군인이 함께했습니다. 해당 사연은 24-1차 자랑스러운 육군 가족상 수기 공모 입상작 중 육군55보병사단 백혜진 소령의 글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정리=배지열 기자/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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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부대에서 만나 7개월 만에 결혼 골인
백혜진·김윤수 소령 부부는 2009년 6월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2005년 함께 임관한 두 사람은 2008년 11월 육군보병학교 교육과정에서 동기의 소개로 처음 만났습니다.
부부의 사연은 2011년 5월 부부의 날을 맞아 ‘특급전사 부부’로 각종 매체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함께 31보병사단에서 근무하던 두 사람은 백 소령이 신병교육대대, 김 소령이 기동대대 중대장을 맡아 ‘생사를 함께하는 전우이자 선의의 경쟁자’로 소개됐습니다.
육군특수전사령부 황금박쥐부대 출신인 김 소령은 공수교육을 포함한 특수전 교육과정을 최상위 성적으로 통과했고, 백 소령도 개인화기 사격경연대회 우승과 태권도·유도 유단자로 특급체력을 자랑했습니다.
결혼 4년 만에 너무 소중한 쌍둥이가 두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군 생활과 가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었던 백 소령은 본인의 진급 시기와 겹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울함과 불안함에 전역까지 고민하던 그를 붙잡아 준 건 남편 김 소령이었습니다.
덕분에 1년 만에 복직한 백 소령은 진급을 달성하면서 엄마이자 군인으로서 위치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예쁜 셋째 막내딸까지 품에 안으면서 이들 부부는 다섯 가족의 행복이 가득한 가정을 완성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병, 곁에 있어 준 남편
인생이라는 여행에 행복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백 소령이 새로운 근무지인 육군종합행정학교로 복직한 지 2개월쯤 됐을 때였습니다. 아침 회의를 하던 중 평상시 느끼던 속 쓰림의 강도가 그날따라 유난히 심했습니다.
바로 읍내 작은 의원을 찾았지만, 그곳에선 상급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진료의뢰서를 써 줬고 그 길로 곧장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대전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출산 후 복직하면서 건강관리를 잘 못했습니다. 사실 엄청나게 놀라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담담하지도 않았지만 이전부터 조금씩 증상이 있던 터라 소화기관에 질환이 있을 거라고 어림짐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 김 소령이 육군대학에 입교한 지 한 달쯤 됐을 때였습니다. 다행히 병원과 부대가 가까운 곳에 있어 한달음에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추정되는 병명은 ‘위암’이었지만, 누구도 입 밖으로 먼저 꺼내지 못했습니다. 남편 김 소령이 “괜찮을 거야”라고 토닥이며 병실에 누워 불안함에 휩싸인 백 소령의 손을 꼭 잡아 줬습니다.
10년 같은 하루가 지난 다음 날, 결국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종양의 모양과 크기로 어느 정도 진행됐다는 판단이 나왔고, 위뿐만 아니라 전이가 예상되는 장기 두 군데도 같이 제거해야 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깨어났을 때 붉어진 눈시울로 애써 웃어 보이면서 안도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야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는 백 소령.
“남편이 힘들다는 표현을 잘하지 않는 사람인데, 돌이켜 보니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4시간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싶습니다.”
위암 3기 극복한 부부 군인의 힘
수술 결과 근육층을 뚫고 나가는 모양의 5㎝ 크기 암 덩어리를 발견했고, 림프절 전이 9곳이 확인됐습니다. 위암 3기 진단이었습니다. 위암 3기 생존율은 40%로, 재발 우려가 높아 항암치료가 필수입니다. 수술 3개월 후 시작한 항암치료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점차 말라 갔고 성격도 예민해지면서 육체와 정신 모두 피폐해진 탓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모진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말들을 다 받아 내며 말없이 안아 주던 김 소령 덕분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 낫고 나서 남편과 당시 이야기를 할 때 ‘엄청 힘든 과정이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라고 털어놓더라고요. 완치 이후 저도 육군대학을 다녔는데, 남편이 학교생활과 육아에 제 병간호까지 병행하며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게 됐어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김 소령은 교범을 봐도 부족한 시간에 아내를 위한 건강식단과 의료정보 찾기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그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결국 끝이 없을 것 같았던 항암치료를 끝내고, 2023년 2월 백 소령은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돌아보면 김 소령의 역할이 컸습니다. 아내가 아무것도 못 먹을 때 함께 밥을 먹지 않기도 했고, 매일 걷기운동을 해야 회복이 빠르다는 의사의 말에 운동하지 않겠다는 아내를 어르고 달래 함께 속도를 맞춰 걸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눈물짓는 날에는 충북 영동군에서 서울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렇게 아내의 정신적·육체적 회복을 위해 진심을 다했습니다.
극적인 완치,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백 소령도 마음을 새롭게 먹었습니다. 큰 병을 이겨 내는 데는 긍정적인 마음가짐만 한 게 없었습니다. 백 소령은 “그전에는 욕심내면서 살았습니다. 아프고 나서는 욕심을 버리고 하루하루 살아 있는 데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를 보면 그 깨달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지금이 최선이고 굿 타이밍인 것이다. (중략) 인생여행에서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이 생겼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게 살기 위해 재충전하고 새로운 인생여행 계획을 세우는 기회가 되었기에. 2017년 11월에 암이 발견된 것은 내 인생여행에서 ‘굿 타이밍’인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감사한 사람이 참 많았다는 백 소령. “진단 초기 항암치료를 잘 받을 수 있게 돌봐 주신 국군수도병원 의료진, 저와 제 가족을 물심양면으로 챙겨 주신 종합행정학교 손봉기(중령) 목사님과 사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완치 판정을 받고 복귀한 제가 잘 적응하도록 신경 써 주신 전임 55보병사단장이셨던 김진익(소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시 걱정 많던 저를 이끌어 주신 덕분에 다시 군에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 모시게 된 이임수(소장) 사단장님도 잘 챙겨 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남편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 백 소령. 그가 남긴 글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그 마음을 전달합니다.
“내가 건강해진 모습으로 즐거운 군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준 남편 덕분이다. 군 생활과 육아로 힘들 때, 위암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사투를 벌일 때,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의 행복한 시간뿐 아니라 힘든 시간 속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 나의 가족, 자랑스러운 육군이자 육군 가족인 사랑하는 남편 김윤수 소령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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