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지 펄펄 골목 온도 … 365일 36.5도+α

입력 2024. 07. 04   16:11
업데이트 2024. 07. 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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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골목 속으로 ⑪ 베트남 하노이 

복작복작 이웃 만나고
지글지글 더위 피하고
후루룩~쌀국수 먹고

실핏줄처럼 이어진 비좁은 미로
갓 잡은 돼지고기 파는 시장 상인들
플라스틱 의자에서 쌀국수·에그커피 먹는 손님들
길거리서 면도·머리 깎아주는 이발사들
하노이 사람들, 땡볕 피해 골목으로 숨어들어
사는 게 재미없다면 구석구석 걸어 보기를

 

오토바이가 수시로 지나가는 하노이 골목.
오토바이가 수시로 지나가는 하노이 골목.

 

 

베트남 하노이는 올 때마다 후회한다. 너무 덥고 습하다. 걷는 여행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 날씨다. 하지만 하노이에 올 때마다 반한다. 골목에서 길을 잃으면 마침 불어오는 한 줌의 바람이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선 쌀국수나 진한 베트남 커피를 팔고 자전거 가득 꽃이나 바게트를 싣고 가는 상인들을 볼 수 있다. 사람 한 명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골목이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고 맛집과 하노이 사람들의 쉼, 꽃가게와 빨래방이 마구 뒤섞여 있다. 의욕도 없고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은 하노이 골목을 걸어 보자. 2000원도 안 하는 쌀국수를 팔기 위해 체감온도 40도의 더위에 땀 뻘뻘 흘리는 국수 장인들을 만나 보자. 하노이가 언제나 새로운 느낌을 주는 건 전적으로 하노이 사람들의 열정 때문이다.

 


최악의 첫인상, 하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다

2010년 하노이에 처음 왔을 때는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다시는 하노이, 아니 베트남에 오나 봐라 하고 치를 떨었다. 가게에서 잔돈을 받는 것도 일이었다. 그 몇백 원을 내놓으라고 하면 ‘별 거지 같은 놈 다 보겠네’라는 표정으로 던지듯 잔돈을 줬다.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한 국자 국물을 더 퍼주기에 감격했더니 그 국물 값도 얹어 요구했다. 택시기사들은 어떻게든 등쳐 먹을 생각뿐이었다. 관광객과 현지인의 쌀국수 값이 달랐고, 그걸 따지면 ‘어쩌라고? 배 째라’는 식이었다. 방송 촬영차 베트남의 시골 위주로 돈 적이 있는데, 순박한 시골 인심에 깜짝 놀랐다.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불변의 진리가 베트남이라고 비켜 갈 리 없다. 올 때마다 개선되는 베트남을 느낀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 폭이 좁게 지어진 베트남 집들.
세금을 덜 내기 위해 폭이 좁게 지어진 베트남 집들.



지는 법을 모르는 전쟁 최강국, 베트남


베트남은 당대에 가장 강하다는 나라들을 모조리 물리치며 고유의 주권과 문화를 지켰다. 상대한 나라들이 중국·몽골·프랑스·미국이다. 자기 나라 역사는 대부분 미화되지만 베트남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가장 영리하고 강력한 국민성을 지닌 국가다. 나라의 힘을 1인당 국민소득이나 인구수 또는 땅 크기 등으로 평가하곤 하지만, 일대일로 싸울 때 누가 이기는가? 전투력 관점에서 보면 베트남은 최상위권의 나라다.

베트남엔 하노이와 호찌민, 2개의 도시가 있다. 경제 중심지는 단연 호찌민이지만, 수도이자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는 하노이다. 베트남은 10세기 이후 중국에서 독립하면서 리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리 왕조는 1010년 하노이를 수도로 삼는다. 이 도시는 1000년이 넘는 긴 시간 베트남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프랑스풍 건물들로 동양의 파리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쌀국수가게 옆에서 바게트를 파는 동양과 서양의 절묘한 공존이 하노이의 매력이기도 하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지어진 좁은 집들 

이번엔 에어비앤비로 가정집을 예약해 3일간 머물렀다. 베트남의 집들은 정면에서 볼 때 무척이나 좁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주택의 가로길이로 세금을 걷었기 때문이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선 폭이 좁은 집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폭은 좁지만 일단 문을 열면 실내는 동굴처럼 길쭉한 구조를 자랑한다. 사람 사는 최소한의 공간이 나와야 하므로 폭은 좁은 대신 뒤로는 길게, 위로는 높게 짓는다. 높고 좁은 집들이 블록 쌓기처럼 오밀조밀해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한다.

집을 다 짓고 나면 양옆 외벽은 칠도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건물이 들어설 테고, 그 건물은 꼭 붙어 지어질 게 뻔하기에 없어져 버릴 벽 쪽에 돈을 쓰지 않는 것이다. 옆 벽은 같은 이유로 창문도 뚫지 않는다. 앞과 뒤 창문을 최대한 크게 지어 시야를 확보하고, 그 창문으로 통풍을 유도한다. 바깥은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데도 실내가 생각보다 시원해 놀랐다. 방이며 욕실이며 식물로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하노이엔 꽃집과 꽃장수도 유난히 많다. 꽃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전히 바가지에 사기꾼이 적지 않지만, 순진무구한 천사가 훨씬 많이 살고 있음을 믿는다.

 

 

노상 쌀국수가게의 모습.
노상 쌀국수가게의 모습.

 


구불구불 미로의 도시 

하노이는 미로의 도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골목이 계속 이어진다. 좁은 땅에 최대한 집을 짓다 보니 그런 구조가 됐다. 건축물을 세울 때 도로 폭 규제가 딱히 없어 공용공간인 골목은 최대한 적게 남겨 두고 집이나 건물을 올린다. 일단 골목에 들어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스마트폰 시대라 얼마나 다행인가?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없다면 빠져나오기 위해 두세 배는 더 헤맸을 것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하노이엔 명소가 많지만, 최고의 재미는 단연 골목이다. 뜻밖의 풍경이 줄줄이 이어진다. 골목 안쪽으로는 무조건 시장이 있다. 냉장고에 넣지 않은 바로 잡은 신선한 돼지고기와 살아 있는 채로 불안하게 눈을 깜빡이는 닭들, 싱싱한 채소와 김이 펄펄 나는 쌀국수가 골목 여기저기에 진을 치고 있다. 하노이 사람들은 골목에서 먹고, 사람을 만나고,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부채질하며 더위를 식힌다.

하노이의 진짜 모습은 골목 속에 죄다 숨어 있다. 길거리에서 천연덕스럽게 면도하고 머리를 깎는 이발소를 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월세는 단 한 푼도 내지 않는 거리의 이발사들이다. 베트남인들은 생활력이 강하고 솜씨가 남다르기로 유명하다. 예전에 한 번 길거리 이발사에게 머리를 맡겼는데, 꽤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달걀노른자가 들어간 '에그커피'
달걀노른자가 들어간 '에그커피'



생의 에너지가 활화산처럼 들끓는 도시 

베트남은 오토바이의 나라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비좁은 길, 자전거며 오토바이가 수시로 지나가기 때문에 마음 놓고 걷기엔 영 신경 쓰인다.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큼직한 나무가 소음과 매연을 중화해 준다. 덥다 싶으면 아무 카페에나 앉아 커피와 주스를 시키고 더위가 식기를 기다리면 된다.

하노이는 에그커피가 유명하다. 보통의 커피에 생달걀노른자가 들어간다.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생각만으로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것이다. 호기심을 참으면 병이 나는 나 같은 사람은 일단 마시고 본다. 이게 무슨 맛이더라? 맞다. 티라미수케이크 맛이다. 티라미수케이크와 원재료가 거의 일치한다. 커피와 달걀, 우유와 설탕이 주재료니 당연히 비슷한 맛이 날 수밖에. 비린내가 전혀 안 나는 고급스러운 부드러움, 커피 맛의 신세계라고나 할까?

매의 눈으로 골목을 걸어 보자. 운이 좋다면 현지인들과 어울려 맥주 한 캔 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순수한 아이들의 사심 없는 친절한 눈빛도 골목에 있다. 바가지에, 매연에 지쳐 있던 피로가 아이들의 환한 웃음에 씻겨 내려간다. 하노이에선 지글지글 땡볕을 피해 골목으로 숨어야 한다. 유명한 골목을 굳이 찾아갈 필요도 없다. 어느 골목이나 맛집 골목이고 중심상권이다. 없는 게 없는 복작복작한 골목에서 어질어질 더위와 맞서며 후루룩 쌀국수를 즐겨 보자.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필자 박민우는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을 쓴 여행작가다. 방송을 통해 세계 각지의 삶과 문화를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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