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이 외친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안 되면!될 때까지! 

입력 2024. 06. 26   17:05
업데이트 2024. 06. 2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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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 기억될 역사, 기억할 영웅

연평도 포격전을 말하다…연극 ‘연평’


2010년 11월 23일 포격전, 그날의 기억 
서울시, 내달 1일까지 연극 무대 상연 
실제 참전용사 이한, 주연 맡아
떨어지는 포탄 속
목숨 내던져 싸운 ‘기훈’
발 벗고 나섰던 주민들
잊어선 안 될 그날의 이야기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기습 발사한 포탄 수십 발이 연평도 곳곳에 날아들었다. 이날 발생한 연평도 포격전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장병과 주민 등이 숨지거나 다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이 기습 발사한 포탄 수십 발이 연평도 곳곳에 날아들었다. 이날 발생한 연평도 포격전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승리로 마무리됐지만, 장병과 주민 등이 숨지거나 다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저는 그날 전우, 선임, 형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꿈을 꾸었다던 사랑하는 동생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제 가족이, 집이, 꿈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켜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계속 전진하며 소중한 오늘과, 찬란한 내일, 우리 모두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안 되면! 될 때까지!”

연극 ‘연평’ 중 ‘기훈’의 마지막 독백이다. 28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서울시민청 바스락홀 무대에 오르는 연극은 연평도 포격전, 그날의 기억을 또렷이 담았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34분경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포탄이 날아들었다. 기습적으로 단행한 북한의 공격이었다. 북한군이 난사한 170여 발의 포탄은 이곳에 주둔한 해병대 연평부대는 물론 민가에까지 큰 피해를 입혔다.

포탄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비오듯 쏟아졌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떨어진 포탄은 평범했던 연평도의 일상을 산산조각 냈다. 확성기에서는 사이렌과 실제상황임을 알리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대피소를 찾아 이곳저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포탄을 피해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내달렸다.

섬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희생자가 속출했고, 집은 뼈대도 남지 않고 박살 났다. 산은 불바다로 변했고, 검은 연기가 한 치 앞도 보지 못할 정도로 온 섬을 뒤덮었다.

해병대 장병들은 목숨을 걸고 적과 맞서 싸웠다. 단 13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대응 사격을 가했다. 총 80여 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1시간30분가량 이어진 포격 끝에 북한군이 먼저 사격을 멈추면서 대한민국 해병대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날 북한군의 포격으로 서정우 하사·문광욱 일병 등 연평부대 장병 2명과 주민 2명이 숨졌고, 장병·주민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각종 시설과 가옥이 파괴되면서 삶의 터전도 앗아갔다.

연평도 포격전은 6·25전쟁 정전협정 이후 북한군이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타격해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국제 사회는 북한을 규탄했으나, 북한은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었으며 전적인 책임은 대한민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연극 ‘연평’을 연습 중인 배우들.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연극 ‘연평’을 연습 중인 배우들.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연극 ‘연평’을 연습 중인 배우들.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연극 ‘연평’을 연습 중인 배우들.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연극 ‘연평’을 연습 중인 배우들.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연습실에서 연극 ‘연평’을 연습 중인 배우들.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가 기획·제작한 연극 ‘연평’은 연평도 포격전을 겪은 ‘사람’에 초점을 맞췄다.

이야기는 2010년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주인공 기훈이 연평도로 자대 배치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기훈은 첫 휴가를 앞두고 일어난 포격전에 자신의 가족과 전우, 주민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인물이다.

연평도에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육지로 떠나 살면서 가족의 의미를 잊고 살던 기훈은 군 복무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과 조우하고 포격전을 겪으면서 성장해 나간다.

연평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도 보여준다. 특히 포격전 당시 부상자 대피를 위해 직접 발벗고 나섰던 주민들을 조명했다.

그렇다고 연평도 이야기만 그린 것은 아니다. 연극은 떨어지는 포탄 속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장병들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군인들의 존재와 우리가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상기시킨다.

또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군인들에 대한 처우와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부분은 연평도 포격전 참전용사인 이한 센터 주임이 직접 기훈 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이 주임은 지난해에도 연평도 포격전 생존 병사들의 고통과 치유를 그려낸 연극 ‘사운드’의 주인공 ‘김원’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번 연극에는 극단 ‘수평선’도 함께한다. 수평선은 정재춘 작가의 연극 ‘조용한 세상’으로 인연을 맺은 연출가 김민혁 씨와 배우 전성열 씨가 공동대표로 2021년 창단한 극단이다.

연극 ‘연평’에서는 김씨가 연출을, 정씨가 극본을 썼다. 예산이 넉넉지 않아 출연료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온 배우가 작품의 취지에 동감하며 기꺼이 동참했다.

전씨는 “저도 만기 전역한 대한민국의 남자이자 청년이다. 이런 뜻깊은 공연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는 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 “행복하게 작업했다. 열심히 준비했으니 기대하셔도 좋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연극 속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사라진 기억으로, 누군가에게는 책에서만 본 이야기로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소중한 것들을 위해 살아가고 삶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모두를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모두를 위해 희생·헌신하는 국군 장병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글=송시연/사진=양동욱 기자


이주은(예비역 해병대 대위)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 실장
이주은(예비역 해병대 대위)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 실장


이주은(예비역 해병대 대위)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 실장
“우리의 자유는 수많은 분의 피와 땀 있었기에 가능한 것”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는 군 복무 중 부상을 입고 제대한 청년부상제대군인의 건강한 삶과 사회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 3월 열었다. 크게 법률·심리·취업 지원으로 이들이 합당한 대우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센터는 군 생활 중 지뢰 폭발로 발목을 잃은 이주은 예비역 해병대 대위가 직접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건의해 개소한 만큼 같은 아픔을 위로하고 나누면서 청년부상제대군인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 센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군 복무 중 상당수의 장병이 질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어 전역한다. 저 또한 군 복무 중 발목을 잃었다. 센터는 저처럼 부상을 당해 전역한 군인들을 돕고 있다. 법률 지원으로 복무 중 발생한 부상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심리 지원으로 트라우마의 심리적 회복을 돕는다. 또 취업 지원을 통해 사회로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지난해부터 연극을 선보이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센터 주임인 이한 예비역 해병대 병장도 연평도 포격전 전상자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연극이라는 매체를 활용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 반응은 어떤가.

“좋다. 연극 ‘사운드’를 지난해 이틀간 총 3회 공연했는데 200여 분이 찾아주셨다. 많은 분이 연극 취지에 공감해 주셨다. 연극이 끝나고 미안하다고 손잡아 주는 분도 계셨다.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만큼 뿌듯했다. 해병대와 서울시, 극단 수평선 등 좋은 뜻에 동참해 주는 분들이 있기에 올해도 연극을 올릴 수 있게 됐다. 3일 동안 총 5회 공연하는데, 전석 매진됐다.”


- 연극을 본 사람들이 어떤 것을 느꼈으면 하는지.

“우리의 자유는 수많은 분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사실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많은 말도 필요 없다. 당신들이 있기에 우리가 잘살고 있다. 고맙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이한(예비역 해병대 병장)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 주임
이한(예비역 해병대 병장)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 주임


이한(예비역 해병대 병장)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 주임 
“14년 전 힘든 기억 떠올라…전상자 세상 밖으로 나오길” 

이한(예비역 해병대 병장)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 주임은 연평도 포격전 참전용사다. 격전에서 안면 2방·사타구니 1방·무릎 관통 1방으로 총 4방의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치료가 끝난 뒤 부대로 복귀해 만기 전역했다. 이제는 센터 주임으로 근무하며 자신과 같은 청년부상제대군인을 돕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연평도 포격전을 그린 연극 무대에 직접 오르며 그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연평도 포격전 현장에 있었다. 연극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지.

“처음에는 많이 두려웠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앓고 있고. 연극 중간중간에 나오는 포격 소리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제가 웅크리고 있으면 이 사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누군가는 외쳐야 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서 용기를 내게 됐다.”


- 지난해 연극 ‘사운드’는 직접 기획했다.

“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저뿐만 아니라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목함지뢰 등 많은 전상자가 PTSD로 힘들어하지만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극이 그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마땅한 예우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 해병대에 가기 전엔 어떤 사람이었나. 혹시 입대를 후회한 적은 없나. 

“연기자를 꿈꾸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경기도 평택에서 연기학원이 있는 서울 강남까지 지하철로 왕복 4시간을 다니며 연기를 배웠다. 큰 부상으로 힘든 치료 과정을 겪었지만, 해병대에 입대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지금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맞서 싸울 것이다.”


- 연극을 보러 올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소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아직도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전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일이 없도록 제 역할을 다할 것이다. 대한민국 군인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꼭 생각하고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글=송시연/사진=양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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